5~7일 넘는 발열에 해열제마저 잘 안 듣는다?…'희귀면역질환' 의심을
서울아산병원 강성한 교수에게 듣는 '혈구탐식림프조직구증'
나이에 상관 없이 감기에 걸린 것처럼 5~7일 넘게 발열이 나는데, 해열제마저 잘 듣지 않을 때 의심해봐야 하는 희귀면역질환이 있다. 바로 혈구탐식림프조직구증(Hemophagocytic lymphohistiocytosis, HLH)이 그것이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혈액종양과 강성한 교수는 유튜브 채널 '서울아산병원'에서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구성하는 T-림프구, 대식세포 등의 면역체계가 있는데, 이러한 면역체계의 과도한 활성화가 제어되지 않으면서 신체 스스로의 조직이나 세포, 장기들을 공격하는 일련의 현상"을 HLH이라고 설명했다.
HLH은 원인에 의해 크게 2가지로 구분된다. 강성한 교수는 "유전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일차성 HLH와, 감염 또는 자가면역질환, 다른 종류의 암, 악성질환 또는 약물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이차성 HLH로 크게 구별할 수 있다"며 "이차성 HLH의 경우에는 감염 또는 기저질환들, 약물에 의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연령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짚었다.
2차성 HLH이 모든 연령대에 발생할 수 있는 희귀난치성질환이라면, 일차성 HLH의 경우에는 유전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소아에서 발생한다. 강 교수는 "특히 일부 유전자의 경우에는 출생 직후부터 HLH 증상이 발현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HLH의 특징적 증상은 5~7일 이상 지속되는 발열과 더불어, 해열제 같은 약이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성한 교수는 "대부분의 경우 발열이 첫 번째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하지만 발열의 경우 일반적인 증상이고, 소아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감기와 구별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면서도 "HLH에서 나타나는 발열의 경우에는 5~7일 이상 장기간 발열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이 있고 해열제에 대한 반응 등 약물에 대한 반응이 떨어지는 경우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HLH일 때는 간, 비장이 비대해져 복부팽만이나 복통, 황달 등이 나타날 수 있고 혈소판이나 백혈구, 적혈구의 감소로 인한 빈혈, 혈소판감소증이 나타날 수 있어 환자가 창백해지거나 쉽게 피로감을 느끼거나 숨이 가쁘거나, 점상출혈 등과 같은 출혈성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같이 의심증상이 있을 때, 어떻게 HLH를 진단할까? 강 교수는 "HLH의 경우에는 임상적인 증상과 검사 소견을 조합해 진단하게 된다. 크게는 8가지 진단 기준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이 중에서 5가 이상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HLH로 진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8가지 진단 기준은 ▶5~7일 이상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발열 ▶혈구감소증 ▶비장비대 ▶고페리틴혈증 ▶고중성지방혈증 및 저섬유소원혈증 ▶수용성 IL-2의 상승 ▶골수 또는 조직의 혈구 탐식 소견 ▶NK세포의 활성도 감소 등이다.
강성한 교수는 "이같은 진단 기준과 별개로 일차성 HLH의 경우에는 혈액검사 또는 골수검사에서 유전적으로 HLH를 유발할 수 있는 유전자가 확인이 되는 경우에는 그 자체로 HLH로 진단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진행 속도 빠를 땐 진단 하루 만에 사망하기도…빠른 진단·치료 중요
HLH은 치료가 늦어지면 굉장히 치명적인 병이다. 강 교수는 "치료가 늦어지거나 치료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 몸의 조직과 장기를 공격하는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지속적으로 일어나면서 장기기능부전이 발생하면서 환자가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질환"이라고 짚었다.
이어 "특히 일부 유전적으로 발생하는 HLH의 경우에는 진행 속도가 굉장히 빠를 수 있어서 환자가 진단을 받고 하루 만에 사망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고 치료가 늦어지는 경우에는 수일 또는 수주에서 수개월 이내에 점차 진행을 하면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HLH은 난치성질환이지만, 최근에는 치료성적이 상당히 올라갔다. 치료법은 과하게 활성화돼 있는 면역체계를 잠재우고 조절하기 위해 스테로이드제제인 덱사메타손과 항암제 '에토포사이드'를 함께 쓰는 항암화학요법이다.
강성한 교수는 "두 가지 약물의 병합화학요법이 표준치료"라며 "8주간 표준치료가 1차적으로 이뤄지게 되는데, 치료 반응이 좋고 환자가 증상이 다시 한번 재발하지 않는다면 8주간의 표준치료 종료 후 경과를 관찰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치료 중이나 치료 후에 환자의 증상이 재발하거나 일차성 HLH에 해당하는 유전자가 발견된다면 항암화학요법을 사용한 치료 이후에 반드시 완치를 위해 조혈모세포이식을 해야 한다"며 "HLH 자체가 우리 몸의 면역체계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몸에서 과하게 활성화되고 기능이 조절되지 않는 면역체계를 건강한 면역체계로 다시 한번 구성해줄 필요가 있다"고 그 까닭을 말했다.
이상이 생긴 내 몸의 면역체계를 억제하고 건강한 공여자의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아 우리 몸에서 면역체계 구성을 다시 한번 해주는 치료를 더하면 난치성질환인 HLH의 치료성적을 크게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이차성 HLH의 경우에는 기저질환의 치료가 굉장히 중요하다. 강 교수는 "특히 자가면역질환이나 다른 종류의 악성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기저질환을 치료하는 경우에 HLH 증상이 같이 좋아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차성 HLH의 경우에는 증상이 재발을 하거나 이번에 증상이 호전돼 증상이 소실된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과하게 활성화되는 성격을 가진 림프구나 대식세포가 우리 몸에 여전히 기능을 똑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증상이 다시 한번 발생하거나 더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
강성한 교수는 "따라서 이런 경우에 조혈모세포이식을 하는 것인데, 과거에는 이러한 환자들의 생존률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고 절반 정도의 환자만이 표준치료요법을 사용했을 때, 생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엔 조혈모세포이식을 적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완치율이 비약적으로 향상하게 됐고 약 80~90% 이상의 환자들이 장기적으로 생존하는, 완치가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짚었다.
현재 HLH의 예후를 결정하는 것은 빠른 진단과 치료이다. 강 교수는 "HLH 치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빠르게 질환을 의심하고 진단을 위한 검사를 빠르게 해서 진단되면 치료가 늦어지지 않도록 빠르게 적용하는 것"이라며 "과하게 활성화된 면역체계와 면역반응들이 어떤 장기를 어느 시점에 얼마나 파괴시키고 손상시킬지 예측하기 어려울 뿐더러 유전적 특징 또는 환자 상태에 따라서 그런 변화가 굉장히 빠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점은 진단과 치료가 빠르게 이뤄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