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마지막 다리' 대법원에 "증원 확정 전 막아 달라" 호소
정부 발표 전 법원에서 증원 집행정지 인용 결정 나와야 "의대생·전공의 복귀 유일한 길…기각하면 돌이킬 수 없어"
의대 정원 증원 확정을 앞두고 의료계가 법원에 관련 재판 결정을 조속히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사회 혼란을 이유로 증원을 막아달라는 의료계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오늘(24일) 의대 증원이 반영된 2025학년도 대학 입학전형 시행계획 변경사항을 심의한다. 대교협이 시행계획을 승인하고 대학이 여기 맞춰 입시 모집요강을 공개하면 증원이 확정되는 셈이다. 교육부 이주호 장관은 오는 30일 시행계획과 모집요강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증원 절차를 변경하지 않겠다고 한 만큼 의료계로서는 그 전에 법원이 제동을 걸길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의대 정원 관련 소송을 담당하는 법무법인 찬종 이병철 변호사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법원에 절자 진행에 관한 긴급요청서와 재항고 이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의대 정원 집행정지 대법원 재항고 사건과 대입전형 변경금지 항고 사건 등이 포함됐다. 둘 중 하나라도 인용되면 정부는 증원 절차를 멈춰야 한다.
이 변호사는 대법원이 빠른 결정이 어렵다면 교육부에 최종 결정 전까지 증원 절차를 보류하게 해달라고 했다. 이 변호사는 "교육부 장관이 30일 시행계획 승인을 발표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29일까지 법원의 최종 결정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이날까지 결정이 어렵다면 교육부 장관에게 최종 결정 전까지는 시행계획과 입시 모집요강 발표를 보류하라고 소송지휘권을 발동해 달라"고 요청했다.
만일 법원이 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하면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다"며 "전공의와 의대생이 병원과 학교로 돌아올 유일한 방법은 사법부가 2,000명 증원을 정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의료계에서 가장 먼저 의대 증원 행정소송을 시작한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이날 오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에 집행정지 인용을 촉구할 예정이다. 전의교협 측은 소송 시작부터 "법원이 의대생과 전공의가 돌아올 수 있도록 정부 의대 정원 정책을 막아달라"고 호소해 왔다.
전의교협 "의대 증원·배정 과정 모두 위법"
의대 정원 증원과 배정 절차는 "명백하게 위법하다"면서 대법원이 그 적법성 여부를 반드시 가려야 한다는 게 전의교협 주장이다.
전의교협은 "지난 24년간 보건복지부는 5년마다 수립해야 하는 보건의료발전계획을 단 한 차례도 수립하지 않았다"며 "헌법이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데도 (대학의 증원 결정에) 필요한 학칙 개정 없이 정원을 확정하라는 공문을 보내 절차 위반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고등교육법을 위반해 교육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증원 인원을 배정했고 "배정 결정 과정에서 공정성을 잃었다"고 했다.
전의교협은 "의대 정원을 증원하는 32개 대학 가운데 18개 대학은 아예 실사를 하지 않았고 14개 대학은 비전문가로 구성해 형식적인 실사에 그쳤다"며 "배정위원회 회의에 특정 지자체 공무원이 참석했다. 이 사실 자체만으로도 (배정이) 매우 불공정하게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법원이 정부의 대학별 의학교육점검보고서와 배정위원회 회의록, 제출 서류 등을 살펴 "정부가 주장하는 의대 정원 배정 과정의 적법성을 반드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복리'를 들어 증원 집행정지 처분을 기각한 원심(2심) 결정은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고 했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이번 증원으로 의대생이 손해를 입으나 필수·지역의료 회복이라는 '공공복리'를 들어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고법 재판부가 의대 증원이 필수·지역의료 회복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전의교협은 "의료개혁은 증원 없이도 충분히 할 수 있다"면서 "의대 증원은 10년 후에 효과가 나타난다. 현재 시급한 문제를 대처할 수 없다"고 했다.
의료 공공복리를 앞세운 정부 정책은 "재정 위기를 대비하지 않아 재정 파탄으로 인한 공동체 위기를 조장한다"고도 했다. 정부가 말하는 '시급한 의료개혁'은 "의대 증원 없이도 문제 없이 할 수 있다"며 "의사 증원만으로 해결하려는 게 오히려 공공복리에 심대한 위해를 가져온다"고 했다.
의학 교육 현장이 늘어나는 인원을 감당할 수 없는 점도 다시 강조했다. 정원이 4배 이상 뛰는 충북의대를 예로 들어 단기간에 필요한 인프라를 확충하기 어렵다며 내년까지 "의대를 신설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전의교협은 "충북의대는 모든 교육기본시설과 교육지원시설이 (현재 정원인) 49명에 맞춰져 있다. 151명 증원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지금도 부족한 교수 인력이 갑자기 늘어날 수 없다. 충북 지역 인구로는 의대생 200명을 교육할 대규모 교육병원 유지도 못한다"고 했다.
증원을 강행하면 충북의대는 교육과 실습 질 저하를 피할 수 없고 지난 2018년 폐교한 서남의대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했다.
전의교협은 "의평원은 10% 증원도 심각한 증원으로 판단한다. (증원율 300%가 넘는 충북의대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기준을 도저히 맞출 수 없다"며 "의평원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졸업생은 의사 국가고시 응시가 불가능하고 의대는 폐과 절차를 밟게 된다. 지난 2018년 최종 폐교 처리된 서남의대에서 실제 발생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미 여러 정부에서 수 차례 무더기 증원이 이뤄졌다. 잘못 세운 서남의대의 폐교 사례를 잊어선 안 된다"며 "전공의 사직과 의대생 휴학이 석 달에 이르렀다.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이 사태 해결의 단초가 되리라 확신한다"고 했다.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