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욱의 희귀질환 톺아보기] 머리가 유독 작은 희귀질환
차의과대학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유한욱 교수
어린이가 건강 하려면 신체 성장의 여러 지표들, 즉 체중, 키, 머리둘레(두위) 등이 정상적으로 자라야 한다. 이차 성징(사춘기 신체소견)도 적절한 시기에 발현해야 한다.
기능적으로는 인지, 언어, 운동능력들이 정상적인 발달지표(developmental milestones)에 적합하게 발달해 가야 한다. 즉, 성장과 발달이 조화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환경적이거나 유전적 요인들 때문에 이 조화로움이 깨지고 만다. 지난 수회에 걸쳐서는 키와 몸무게의 이상을 초래하는 희귀질환을 이야기했다. 이번 컬럼에서는 머리의 크기(두위)가 작은 희귀질환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람의 머리크기는 여러 신체 지표 중 제일 빠르게 성장한다. 개인적인 차이는 있지만 정상 신생아의 평균 머리둘레는 38cm 정도이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쯤 되면 58cm 정도가 되는데 이는 성인인 선생님의 두위와 별 차이가 없다. 대부분의 어린이는 소위 ‘얼큰이’다. 키, 몸무게에 비해 머리가 상대적으로 커서 얼굴이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
인체의 가장 중요한 기관인 중추신경계는 양적으로는 매우 빠르게 소아기에 증가하고 성숙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머리의 크기는 개인적인 차이가 커서 얼굴이 작은 사람, 큰 사람 매우 다양하다.
발달에 문제가 있을 때 간과하지 않고 꼭 챙겨야 하는 것
머리가 작은 것을 의학적으로 소뇌증(microcephaly)이라 하는데 머리둘레 3백분위수 미만을 이야기한다. 또한 상대적 소뇌증이라는 용어도 있는데 다른 신체 성장지표에 비해 머리 둘레만 유난히 작은 경우를 말한다. 머리가 작아도 인지나 모든 발달이 정상이면 문제가 없다. 사람들은 작은 얼굴을 선호한다. 그래서 카메라에서부터 멀리 떨어져서 얼굴사진을 찍고 싶어한다.
발달에 문제가 있어서 진료실에 오는 경우 필자는 먼저 아이와 부모의 얼굴모양, 신체 조건을 빠르게 눈 여겨서 본다. 특히 아이의 성장 지표들이 부모의 그것 들과 다를 때 긴장하고 주의 깊게 진료를 한다. 의료진들이 진료실에서 흔히 간과하기 쉬운 것이 머리둘레를 측정하는 것이다. 발달이 늦다고 고가의 유전자검사, 뇌 MRI 등은 쉽게 처방하면서 머리둘레를 재는 것을 잊는 것은 넌센스이다.
병적인 소뇌증은 여러가지 원인에 의해서 발생하는데 많은 환경적인 요인도 관여한다. 임신 중의 바이러스감염(루벨라, 지카 바이러스 등)과 지나친 음주(태아알콜증후군), 출생 전후의 난산 등으로 인한 저산소증의 노출 등이다.
많은 유전적인 희귀질환들이 머리 크기가 작다. 염색체 이상 중에는 5번 염색체 단완에 미세결실이 있는 묘성증후군을 예로 들 수 있고, 유전성 대사질환 중에도 고암모니아혈증에 뇌가 손상되면 후천적으로 뇌가 자라지 않는다. 또한 두개골이 빠르게 융합 되어도 머리가 작을 수 있다.
발달지연, 경련 등의 원인이 되는 유전적 소뇌증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수십 종 이상이다. 차세대 염기서열분석법으로 유전자 진단을 시도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진료실에서 주의 깊게 진찰만 해도 비교적 쉽게 진단할 수 있는 질환이 있다. 대표적인 질환이 레트증후군(Rett syndrome)과 앤젤만증후군(Angelman syndrome)이다.
주로 여아에서 발병하는 '레트증후군'…자폐 등과 혼선
레트증후군(Rett Syndrome)은 1966년 안드레아스 레트(Andreas Rett)에 의해 처음으로 보고된 신경 발달장애 질환이다. 레트증후군은 몇 단계의 점진적인 발달의 퇴행을 보인다. 생후 첫 6개월까지는 연령에 적절한 운동 발달, 정상 머리 둘레를 보인다. 생후 6개월~18개월에 서서히 발달이 지연되고 머리 크기도 잘 자라지 않는다. 그 이후에 급격하게 습득했던 인지 및 언어, 운동 능력을 잃어 가며 퇴행한다.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손동작을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손을 입으로 가져가는 동작, 손바닥을 마주치는 동작, 손목을 비틀며 손을 씻는 듯한 동작이 시작된다. 이러한 손놀림은 깨어 있는 동안 계속되다가 잠을 자는 동안에는 사라진다. 불규칙한 호흡패턴을 보이기도 한다.
4~8세경은 가성적인 안정기이다. 퇴행이 일시적으로 진행하지 않는 듯하며, 자폐 행동이 감소하고 사회적 관계가 개선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8세 이후부터 머리는 몸의 크기에 비해 너무 작은 것이 뚜렷하다. 진행성 운동장애, 척추측만증, 근육기능의 약화, 경련 등이 동반된다. 말초 혈액 순환이 잘 안 되어 발이 붓고, 차가우며 피부가 푸른빛으로 보인다. 운동감소로 변비가 동반된다. 그러나 인지 능력, 사회적 관계, 눈 맞추기, 주의 집중력 등은 일부 향상되기도 한다.
특징적으로. 주로 여아에게서 발생하며, 가족력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 발생 빈도는 여아 1만~2만명 중 1명으로 아주 드물지 않다. 레트증후군은 흔히 자폐나 뇌성마비, 원인이 불분명한 발달지연으로 오진되기도 한다.
진단방법은 여러가지 임상증상 진단기준과 유전자(MECP2 유전자 등)검사결과에 근거하여 진단한다. 여러 다양한 비정형성 레트증후군이 알려지고 있어 감별을 필요로 한다. 불행히도 효과적인 치료방법은 없다. 증상에 따른 맞춤 관리가 필요하다.
15번 염색체 이상 질환 '엔젤만증후군'…근본적 치료법 없어
엔젤만증후군은 1965년에 지적장애, 꼭두각시 인형같이 뒤뚱거리는 걸음걸이 같은 모습, 발작적 웃음을 특징으로 하는 환아를 학계에 보고한 엔젤만(Harry Angelman)에 의해 처음으로 명명된 질환이다. 프라더-윌리증후군과 마찬가지로 15번 염색체 이상 질환이지만, 임상 양상은 전혀 다르다. 발생 빈도는 프라더-윌리후군보다 약간 낮아서 약 2만명당 1명의 빈도로 발생한다.
머리크기가 작으며 뒷머리가 납작하다. 턱이 상대적으로 크다. 피부, 모발, 홍채의 색조가 옅다. 운동발달은 매우 지연되나 늦게라도 보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걸음걸이가 뒤뚱거리며 불안정하다. 기분은 늘 좋은 상태이고 특히 물 놀이를 좋아한다. 수용언어는 어느 정도 증가하나 불행하게도 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환아의 부모님들은 간혹 절망하기도 한다. 사시, 척추측만증, 경련 등이 동반된다.
진단은 특징적인 임상증상과 유전자검사로 한다. 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은 15번 염색체 장완이 미세결실(75%)되었는지, 15번 염색체를 모두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경우(2%)인지, 또는 15번 염색체 장완에 존재하는 UBE3A 유전자에 돌연변이(20%)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유전자검사 단계가 복잡하다. 엔젤만증후군도 레트증후군과 마찬가지로 임상효과가 객관적으로 인정된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매년 적지 않은 숫자의 레트증후군과 앤젤만증후군 환자들이 새롭게 진단되고 있다. 진단만 하고 의사로서 완치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어서 환자와 부모님께 매우 미안하기도하고 무력감마저 느낄 때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근본적 치료방법을 찾기 위한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특효약이나 완치법이 개발되지는 않았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자폐증의 증상과 관련해서 현재보다는 발전된 치료법이 개발되리라 전망한다. 이들 질환은 여러 전문분야(소아신경과, 임상유전학과, 소아재활의학과, 소아안과, 정형외과, 치과 등)의 의료진들과 환우회 자조모임이 팀을 이루어 다학제적 접근으로 관리돼야만 한다.
유한욱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 마운트 시나이병원 유태인 유전학센터에서 연수한 뒤 미국의학유전학전문의를 취득했다.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클리닉 소장을 거쳐 소아청소년병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대한소아내분비학회장, 대한의학유전학회 이사장, 복지부 선천성기형 및 유전질환 유전체연구센터장, 진흥원 희귀난치병정복사업 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