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혈우병 치료환경…"관리만 잘하면 얼마든지 일상생활 가능”

열악했던 혈우병 치료환경에 ‘오아시스’ 같았던 ‘한국혈우재단’ 치료환경 발전 지켜본 박상규 이사장, 정년 후 부산의원에 둥지 혈우병 등록환자 중 76% 이상, 서울·부산·광주 부설의원서 진료

2024-07-17     유지영 기자

“요즘 혈우병을 앓고 있는 청소년들은 과거와 달리 지금은 축구도, 농구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20살 미만 청소년들의 관절상태를 보면 혈우병 아닌 친구들과 비교해도 전혀 문제 없이 아주 건강해요.”

한국혈우재단 부설 부산의원에서 만난 박상규 이사장은 과거 혈우병 치료제가 없거나 있어도 건강보험이 되지 않아 혈장 수혈을 통한 혈액응고에 기대할 수밖에 없던 시절을 떠올리며, 지난 10년간 반감기연장제제, 비응고인자제제 등을 비롯해 최근 유전자재조합 제제에 이르기까지 혈우병 치료환경이 개선되고 있는데 대해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지난 1991년 2월 재단설립 후 3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국내 혈우병 환자들의 진료를 도맡아 하며, 각종 의료비지원사업, 혈우병 환자들에 대한 교육 및 지원사업, 연구 및 학술조사사업, 복지사업 등을 시행하고 있는 혈우재단은 변화하는 혈우병 치료환경에 맞춰 국내 혈우병 치료의 간격을 줄여나가겠다는 계획이다. 

한국혈우재단 12대, 13대 이사장으로서 재단을 이끌고 있는 박상규 이사장은 지난 20년 8월 울산대병원을 정년퇴임하고 21년 5월부터 이사장을 맡고 있다. 현재는 재단 부설 부산의원 원장으로 혈우병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한국혈우재단 부설 부산의원에서 혈우병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박상규 이사장.

- 우선 한국혈우재단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지난 1991년 당시 보건사회부로부터 혈우병 환자의 등록 및 관리 업무를 위임받은 혈우병 관련 국내 유일의 사회복지법인이다. 혈우병에 대한 인식과 지원이 부족했던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혈우병 환우들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30여년 혈우재단은 환우들을 위해 의료적·경제적·정서적 지원사업을 전개하며, 서울의원을 개원했고, 현재 광주, 부산에도 재단의원을 설립해 누적 연인원 1만9천명에 가까운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이같은 지원사업들은 소외됐던 국내의 많은 혈우환우가 소중한 일상을 찾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 누적 연인원 1만9천명의 혈우병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고 했는데. 

현재 혈우재단 부설의원에서 진료받고 있는 환자는 누적인원 2023년 기준 서울의원이 1만1,590명, 광주의원이 3,852명, 부산의원이 3,375명 등 총 1만8,817명으로 등록환자 중 76.05%가 혈우재단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돼 있다. 

- 환자들이 혈우재단 부설의원을 이용하는 게 타 병원을 이용하는 것에 비해 다른 점이 있다면. 

환자들은 28일 주기로 약을 처방 받기 위해 내원을 한다. 하지만 혈우병 치료제는 모든 병의원에 있는 게 아니다. 특히 혈우재단은 국가지원을 받지 못한 환자와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의료비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혈우병의 경우 희귀질환으로 지정돼 산정특례제도를 통해 5%의 본인부담금만 내면 된다. 그러나 약값이 워낙 고가다보니 5%의 본인부담금이라 하더라도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일부 소득이 적은 환자들은 전액 면제가 되기도 하지만 국가의 희귀·난치성 질환자 의료비 지원대상에서 제외된 환자들이 있다. 이들에게 본인부담 상한액 중 50%를 지원해주고 있다. 

이같은 운영비는 서울, 광주, 부산 등 3개 부설의원의 의료수입과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 의료비지원사업 이외 혈우병 환자들을 위해 하는 사업은 또 무엇이 있나.

유전자 검사, 폰 빌레브란트 검사 등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검사비도 지원하고 혈우병 환자 중 만성간염이 발생한 환자들에게 치료비, 초음파 검사비를 지원한다.

후천성 혈우병 환자들에게도 본인부담 상한액의 50%를 지원하고 있으며, 수술 환우의 재활을 위해 서울, 대구, 전주에 환우쉼터도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도 환자, 가족의 정서발달, 양육지원을 위한 부모교육, 환자의 고민과 진로설정을 돕는 코칭상담 등 다양한 복지사업도 벌이고 있다.

- 울산대병원에서 정년퇴임 하고도 혈우병 환자들을 보고 있다. 혈우병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서울대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를 하고 전문의를 취득한 게 1987년이다. 3년 뒤 적십자병원에 갔는데 혈우병 환자들이 꽤 있더라. 적십자사가 혈액을 다루니까 환자들 생각에 적십자병원에 가면 혈액제제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는 혈장으로 치료를 받았으니까. 전문의를 취득 후 적십자병원에서 혈우병 환자를 많이 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혈우병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치료제가 없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 그 때와 요즘의 치료환경을 비교한다면?

그 당시는 정말 열악했다. 치료제가 없어 혈장을 투여했는데 혈장에는 8인자가 굉장히 적기 때문에 치료도 충분하지 않았다. 사실 치료제도 없었지만 그나마 혈장치료도 건강보험에서 커버가 안됐었다. 녹십자의 기부로 혈우재단이 설립되면서 환자들에게 보조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혈장에서 8번, 9번 응고인자를 추출한 치료제가 만들어지고 유전자재조합 치료제까지 출시됐다. 또 그 이후 반감기를 길게 한 제재가 나와 적게 맞고도 효과를 볼 수 있게 됐다. 

근래에는 정맥주사가 아닌 피하주사로 맞는 치료제도 개발됐고, 헴제닉스라는 고가의 유전자치료제도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경제수준이 올라가면서 혈우병 뿐만 아니라 희귀질환 치료제들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진 것은 분명하다. 

혈우병의 특징이 관절에 출혈이 생기는 거다. 그런데 옛날에는 출혈이 생겨야 혈액응고제제 주사를 맞았다. 관절에 출혈이 생기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그러다 혈액응고제제를 맞는 시기를 놓치게 되면 관절이 다 망가져 인공관절 수술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예방요법, 유지요법이라고 해서 출혈이 생기기 전 미리 주사를 맞아 관절을 보호한다. 그러다보니 지금 20살이 안 된 청소년들은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한다. 혈우병이 아닌 아이들과 비교해도 관절 손상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즉, 진단을 받은 뒤부터 예방요법으로 출혈을 잘 관리만 한다면 얼마든지 일반인들과 같이 생활할 수 있는 질환이 됐다.

- 재단 이사장으로서 정책이나 제도면에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혈우재단은 환자 진료 외에도 의료비 지원처럼 복지사업은 물론이고 교육 및 연구조사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이 혈우병에 대해 연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거기에 또하나 중요한 게 바로 정책이다. 

예를 들면 혈우병 치료제는 한달에 일률적으로 8회까지만 처방할 수 있게 돼 있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데 일률적으로 처방횟수가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재단에서는 지난 해 정부에 건의를 했다. 반감기 검사를 시행해 환자마다 자신의 반감기에 맞춰 치료제를 처방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단에서만 목소리를 낸 것은 아니다 환자들은 물론 그들을 치료하는 의사, 제약회사까지 서로 힘을 합쳤다. 이해관계가 엉켜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서로 소통을 해서 한목소리를 냈다. 이전에는 일일이 소견서를 써야만 약을 조절할 수 있었는데 규정이 바뀌어 이제는 반감기 검사를 시행하면 그때그때 소견서를 안써도 인정을 해준다. 

또한 이전에는 한달에 한 번에 와서 5일치만 타 갈 수 있었던 것이 10일치로 바뀌었다. 이처럼 정책들이 바뀔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는 것도 재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혈우재단에서 펴낸 백서에 따르면 경증보다 중등증이나 중증 환자들이 많더라.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래도 중증환자들은 증세가 있어 검사를 하기 때문에 빨리 발견되지만 경증은 증세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병원을 잘 안오다 보니 진단되는 환자가 적다.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출처 : 한국혈우재단 백서

- 숨은 환자들이 많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래서 재단에서는 작년에 ‘우리 함께’라는 캠페인을 했다. 중증 환자들이 한 달도 빠짐없이 약을 타가게 하자는 취지였다. 중증 환자들 중에도 병원에 잘 안오는 분들이 있다. 

작년에는 중증 환자들이 빠짐없이 내원하도록 하는 캠페인을 했다면 올해는 중등도 환자들이 꾸준히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독려하는 방안을 추진할 생각이다. 중등도 환자 중에 '나는 중증이 아니니 괜찮겠지' 하고 치료를 소홀히 하는 환자들이 있는데 그런 경우 나이가 들어 뇌출혈 등이 잘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세계혈우연맹은 전세계 혈우환우들이 차별 없이 똑같이 양질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혈우재단 또한 우리나라 혈우병 치료의 간격을 줄일 수 있도록, 우리나라 혈우병 환자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포괄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