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 HIV 신규 감염 예방 '노출 전 예방요법 활성화 시범사업' 시동
노출 전 예방요법 급여권 밖 사용자 약제비 지원·치료 연계 진행 유정희 과장, "국내 PrEP 필요 인구 수 파악에도 참고 기대"
HIV 신규 감염 예방을 위한 '노출 전 예방요법(PrEP) 활성화' 방안을 두고 최근 민관학이 모여 머리를 맞댄 가운데, 질병관리청(이하 질병청)이 올 4분기부터 PrEP 약제비의 본인부담률을 조정하는 시범사업을 시행하겠다고 밝혀 주목된다.
질병청 에이즈관리과 유정희 과장은 이달 7일 사단법인 신나는센터가 개최한 '프라이드 엑스포 PrEP 포럼'에서 이같은 계획을 공개했다.
해당 포럼에는 질병청 외에도 순천향대서울병원 감염내과 김태형 교수, 한국에이즈퇴치연맹 성소수자 에이즈예방센터 김현구 소장 등이 참여해 'PrEP 확산을 위해 필요한 정부와 민간 그리고 의료계의 움직임'을 주제로 심도 깊은 논의를 진행했다.
정부는 지난 2019년부터 'HIV 감염인의 성관계 파트너'를 대상으로 PrEP에 대한 보험급여를 적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급여 신청자는 PrEP 약제 비용의 30~60%만 본인이 부담하면 되는 상황.
그러나 대한에이즈학회 등 의료 전문가들은 현행 보험급여 적용 기준을 학회 권고사항(국내 HIV 노출 전 예방요법 권고안, 2017)에 맞춰 감염 취약군인 'MSM'(men who have sex with men)까지 확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미검출 상태에서는 전파가 불가능하다'라는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 개념에 따르면, 진단 후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는 감염인의 파트너는 사실상 감염 취약군과는 거리가 멀어 현재의 PrEP 급여 기준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실제 이같은 제한적인 보험급여 기준과 낮은 접근성으로 인해 PrEP의 연간 사용량은 급여 이전과 이후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PrEP에 대한 국내 수요가 없지 않다는 점이다. 이날 포럼에서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상당한 사람들이 사전검사와 의료진 처방을 거치지 않고 '해외 직구', '인터넷 구매', '개인 간 거래' 등 불법적인 경로를 통한 PrEP을 사용 중이다.
김태형 교수는 "PrEP을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관에서 HIV, HBV, HCV, STI 검사 등을 통해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신기능 등을 평가 받은 후 처방받아야 한다"며 "예를 들어 HIV 감염자가 PrEP 약물을 사용할 경우 내성균이 생길 위험이 있다"고 안전성 문제를 지적했다.
이날 MSM 커뮤니티에서 꼽는 PrEP 사용의 걸림돌은 크게 '비용'과 '접근성' 두 가지였다. 이에 따라 PrEP 활성화를 위해 사용자의 비용 부담을 낮추고, 처방 접근성을 제고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에 유정희 과장은 질병청이 올해 9월이나 10월 PrEP 약제비의 본인부담률을 조정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해 내년 상반기까지 진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는 지난 3월 질병청이 발표한 '제2차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관리대책(2024-2028)'의 일환으로, 정부는 신규 감염 예방을 위한 세부 과제로 PrEP 활성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유 과장은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현재 PrEP 급여권 밖에 있는 실수요자를 파악하고, 이를 역추산해 궁극적으로는 국내 PrEP 필요 인구 수 파악에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질병청은 2030년까지 2023년 대비 국내 신규 HIV 감염인을 50% 감소시키겠다는 목표다. 현재 국내에서 연평균 약 1,000명의 신규 감염인이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2030년까지 이를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것.
이를 위해 질병청은 2024년 550명을 시작으로 2028년까지 연간 PrEP 사용자를 1,500명까지 늘리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질병청의 이같은 계획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낮은' 목표이며, 또 목표 설정 근거가 없다는 문제 제기도 나오고 있다. 실효성 있는 예방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PrEP 필요 인구 수', 즉 실제 HIV 감염 고위험군에 대한 예상치가 필요하다는 것.
일례로 미국의 경우에는 PrEP 필요 인구 수를 121만6,210명으로 설정해 예방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와 같은 구체적인 수치가 없이는 실질적 예방 효과를 내기 위한 예산 투입이 불투명할 수밖에 없기 때문.
정부의 예방관리대책 발표 이전 국내 PrEP 필요 인구 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정책 용역 연구가 선행돼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가 이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시범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정부의 기대대로 국내 PrEP 필요 인구 수를 파악하는 데 마중물이 될 수 있는 데이터를 생산해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