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병리, 암 정밀의료 진화를 이끈다"

국립암센터 유종우 교수, 디지털 병리 도입 필요성 강조 스캐닝 수가 신설 및 병원 인센티브제 도입 제안도

2024-08-13     김윤미 기자

암 진단과 예후·예측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디지털 병리'의 도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현미경을 통한 전통적인 진단 방법을 넘어,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과 인공지능(AI) 기술이 접목된 디지털 병리는 암의 진행 가능성을 예측하고 데이터 기반의 맞춤형 치료 전략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임상 현장에서의 확산을 위해서는 정부의 추가적인 지원과 표준화된 데이터 인프라 구축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

이에 국립암센터 병리과 유종우 교수를 만나 디지털 병리의 필요성, 국내 병원들의 디지털 병리 도입 현황 및 발전 방향에 대해 들었다.

국립암센터 병리과 유종우 교수

- 최근 병리학의 발전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사실 병리학의 역사는 변사의 사인을 규명하는 부검에서부터 시작됐다. 국내 국과수의 1세대 법의학자들도 대부분 병리학과 출신이다. 1940~50년대부터 '진단' 분야에서 병리학이 도입되기 시작했는데, 암 유병인구가 늘면서 최근 암 진단에 있어서의 병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국립암센터와 같이 암을 전문으로 하는 의료기관에서의 병리 진단은 더욱 정교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 현미경 위주의 병리 기술은 발전의 마지막 단계에까지 왔다고 볼 수 있고, 여기서 더 나아가서 1980~90년대에 단백질을 보는 면역조직화학검사가 활발히 이뤄지기 시작했다. 모든 정상세포는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수행해야 하는 일에 걸맞는 단백질 구조를 갖고 있는데, 암세포는 '증식'과 '전이'에만 집중한다. 따라서 암세포의 단백질 구조는 정상세포에 비해 훨씬 단순하다. 일을 하지 않는 암세포의 세포질은 퇴화되서 정상 세포질에 비해 두드러지게 작고, '증식'에 관여하는 핵은 정상세포에 비해 약 10배 가량은 크고 색깔도 다르다. 그래서 현미경을 통해 육안으로 구분이 가능한 것이다.

이제는 PCR, NGS에서 더 나아가 AI 기술까지 병리학에 접목되고 있다. NGS 데이터를 펼쳐놓으면 3~5 GB까지 용량이 커지기 때문에 AI 기술에 기반한 판독이 필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 그렇다면 데이터와 AI를 포함하는 '디지털 병리'는 현재 어느 정도까지 발전한 상황인가.

기존에는 현미경 슬라이드 이미지를 통해 암 진단에 활용됐다면, 이젠 암세포에 대한 병리 데이터의 축적과 AI 분석을 통해 암이 어떻게 진행될지, 몇 년 내 전이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등 데이터 기반의 경과 예후 예측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진단과 함께 질병에 대한 예후 예측이 동시에 이뤄지는 수준으로 디지털병리 기술은 발전해 나가고 있다.

- 암센터는 2019년부터 디지털병리를 도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병원들의 디지털 병리 도입 현황은 어떠한가.

현재 병리과 의사들이 현미경을 통한 판독을 완전히 버리기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디지털화 작업이야 슬라이드를 스캐너에 넣으면 2~3분 안에 이뤄지지만, 병리과에서는 보통 여러 장의 슬라이드를 몰아서 처리하다 보니 디지털 스캐닝 작업에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슬라이드의 3분의 1 정도는 '선 스캔 후 진단'을 하고, 나머지 3분의 2는 '선 진단 후 스캔'을 하게 된다. 전자의 경우에는 슬라이드 스캔 후 슬라이드를 바로 창고로 보내지 않고, 다시 암종별로 슬라이드를 모아 판독실로 보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도 손이 많이 든다는 번거로움이 있다.

현실이 이렇기 때문에 아직 임상 현장에서 현미경 판독을 전혀 하지 않고 100% 디지털 병리화가 이뤄진 의료기관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병원 운영진이 강력한 리더십을 통해 '디지털 병리'에 대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이뤄질 수 있는 영역인 것 같다.

- 디지털 병리 도입에는 얼마의 비용이 들며, 그 외에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도 궁금하다.

디지털 병리의 도입을 위해서는 슬라이드 스캐닝을 위한 스캐너 비용, 스캔된 데이터를 저장하는 서버 구축 비용 (통상 흉부 엑스레이 한 장 찍으면 10 MB, 전신 CT나 PET을 찍으면 200 MB 정도 용량의 데이터가 나오는데, 유방암이나 난소암 등과 관련된 조직 스캔 데이터는 10~20 GB 정도의 대용량 데이터가 나온다), 디지털 병리 시스템 운영을 위한 인건비, 디지털 판독을 위한 전용 모니터와 그래픽 카드 비용 등 추가로 구축해야 하는 인프라 비용이 필요하다.

정부에서는 데이터 기반의 디지털 병리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2021년부터 보건복지부 산하의 보건산업진흥원에서 성모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주요 Big 5 병원들과 AI 개발 기업 등이 참여하는 디지털병리 컨소시움을 지원해 오고 있다. 국립암센터 역시 삼성서울병원과 같은 컨소시움을 통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오고 있다. 5년간 450억 원의 정부 지원 기금이 들어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암 환자가 많은 Big 5 병원들 위주로 먼저 디지털 병리 인프라가 구축된 점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립암센터는 2021년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병리 AI 데이터 구축사업' 주관 기관으로 선정돼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데, 국가 최초의 대규모 디지털 병리 데이터 구축사업이라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이러한 국가 사업들을 통해 디지털병리의 가치와 유용성이 검증 및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기에, 슬라이드 스캐닝에 대한 '수가 신설'의 필요성에 대해 병리학회에서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병원의 디지털 병리화 수준에 따라 인센티브 수가를 주는 방식도 국가 주도의 디지털 병리의 확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병리에 대한 정부 인센티브는 초기 진입 단계에서의 비용적인 어려움을 겪는 중소병원들의 디지털화도 신속하게 일궈낼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병리의 핵심은 데이터이기에 더 많은 의료기관들이 표준화된 데이터를 구축하고, 이것이 국가 암 관리의 질적인 개선을 일구는 데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수가나 인센티브 형태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디지털병리와 관련된 국내 AI 기업들이 우리 국민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기술을 국내에서 상용화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디지털병리와 관련된 국가적인 보험/검진 정책을 개발하고 있는 점도 벤치마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국내 디지털병리의 이상적인 발전 방향은 무엇인가.

현재까지는 각 의료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스캐너와 소프트웨어, 파일 형식 등이 다르기 때문에 상호연계가 전면적으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국가 주도의 다양한 빅데이터 구축사업에서도 아직까지 암과 관련된 디지털병리 데이터에 대한 구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헬스케어 분야의 민간 기업들의 후원을 통해 50만 명의 암 환자 데이터를 모은 UK바이오뱅크같은 모델은 벤치마킹할 만한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디지털병리의 방향은 국가에서 범용 클라우드를 구축해 의료기관들이 통일된 형식의 디지털병리 데이터를 업로드 하면, 환자가 진단이나 치료를 위해 의료기관을 이동할 때 데이터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국립암센터가 있는 고양시에는 암센터를 포함한 6개의 대학병원이 있고, 서울을 제외하고는 암 진단이나 치료를 위해 빠져나가는 환자보다 유입되는 환자가 많은 유일한 지자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국가적인 디지털병리 인프라 구축이 어렵다면, 고양시 단위에서부터 이러한 디지털병리 인프라를 구현하고 검증해 보는 것이 개인적인 바램이기도 하다.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