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의 골육(骨肉)종 이야기] 암 환자인데 진단까지 서너 달이라고?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 박종훈 교수
왼쪽 사타구니에 주먹만 한 단단한 혹이 만져지고 종양이 있는 쪽 다리 전체가 퉁퉁 부은 고령의 남자 환자가 휠체어를 타고 자녀들과 함께 진료실에 들어왔다.
“ 언제부터 이렇게 다리가 붓고 사타구니에 만져지는 혹이 있으셨나요?”
“ 혹이 만져진 것은 몇 달 됐고요, 다리가 붓기 시작한 것은 얼마 안 됐어요”
“ 그러면 지금까지 병원을 가보시지는 않았고요?"
자제분이 답하기를.
”네. 그게요. XX 대학병원에 진료 예약을 하고 한 달 만에 어렵게 진료는 봤는데요, MRI 검사는 한 달 뒤에 잡혔고요, 그리고 MRI 검사 3주 뒤에 다시 진료를 보기로 했습니다.“
전공자가 보면, 아니 전공자가 아니라 누가 봐도 심각한 수준인데, 이런 환자를 첫 진료하고 거의 2개월 뒤에 다시 보기로 했다고?
”아니, MRI 검사하고 다시 진료 보려면 거의 2개월인데, 그렇게 예약을 했다고요?“
”네, 그렇게 말하던데요! 심각한 건가요?“
돌아버리겠네. 소위 말하는 빅5 병원이란 곳에서 벌어진 일이다. 환자는 밀려들고, 전공의 사직으로 인해 제때 해결은 안되고, 감당이 안 되니 결국 이런 일이 벌어지나 보다. 그렇기는 해도 이렇게 영혼 없는 진료가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든 MRI 검사를 빨리 진행하고, 그 뒤에 조직검사 바로 이어서 해야 진단을 빨리 내릴 수 있고 그래야 치료 계획을 세울 텐데,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으니.
”걱정이 안 되세요? 그렇게 천천히 검사가 진행돼도 괜찮으시겠어요?"
“걱정되지요. 그런데 병원에서 그렇게 밖에 안 된다고 하니, 저희는 그러려니 한 거죠.”
딱 보니 림프종이다. 림프종이기 때문에 하지에서 올라가는 임파액이 막혀서 다리가 퉁퉁 부은 것일 것이다. 일반적인 종양이 혈관을 눌러서 다리가 붓는 그런 양상은 분명 아니라고 봤다. 만일 림프종이라고 한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항암치료 들어가면 순식간에 좋아질 수도 있는데, 검사 하나 하고 기다렸다가 진료 보고, 다시 또 다음 검사를 내고, 또 기다리다가 다음 진료하고. 기다리다가 죽을 판인데, 그래도 환자는 거대 병원을 믿고 기다린다고 한다.
안되겠다.
서둘러서 MRI 검사하고 – 취소된 자리에 밀고 들어가고 – MRI 결과 보니, 역시나 림프종 같아서 바늘로 조직을 떼서 검사를 내고, 결국 2주 만에 림프종이라는 진단을 얻었다.
진료 예약일 전에 간호사에게 연락해서 가족을 미리 오시라 해서 설명하고, 미리 혈액종양내과 교수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해서 순식간에 입원 조치했다.
전공의 사직 이후 병원은 혼돈 그 자체다. 진료 역량은 대폭 줄었는데, 의료진은 변화된 상황에 대처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학병원은 경증 환자는 일반 병원으로 돌리고, 중증 질환 중심으로 재편해야 하는데, 환자들은 여전히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런 식의 진료 현상은 더욱더 심해졌다. 소위 말하는 그동안 문제가 되던 진료 전달 체계의 붕괴가 현 상황에서도 여전하니 진료 상황은 더욱더 난감해 지고 있다.
우리 의료가 왜 이렇게 됐을까?
지역의 실력 있는 병원은 환자가 없는데, 수도권의 일부 대형병원에는 대기 환자만 해도 엄청나다. 그렇게 오랜 시간 대기할 일도 아니고 매우 위험한 방식인데도 마다치 않고 기다리고 있는 중환자들이 많다. 기다리다가 일 나지 싶다.
박종훈 교수는 1989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7년 정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세부 전공은 근골격계 종양학으로 원자력병원 정형외과장을 거쳐 2007년부터 현재까지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에서 근골격계 종양환자 진료를 하고 있다. 2011년 일본 국립암센터에서 연수 했으며, 근골격계 종양의 최소수혈 또는 무수혈 치료에 관심을 갖고 있다. 고대안암병원장과 한국원자력의학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