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중증희귀질환 악화 늦출 약있는데…'희망회로' 못 돌리는 현실
[페이션트 스토리] 희귀피부근염·진행성폐섬유증 환우 이동욱 씨 폐 굳는 폐섬유증 악화 늦추는 약 있으면 당연히 쓰리라 여겼는데… 건보 적용 안 되는 '비급여 약제', 적극 처방 못 하는 의료현실 몰라 "중증의 소수 우선 배려한 의료정책을…돈 없어 죽는 상황 없기를"
외국계 중소기업 임원인 이동욱 씨(55세)는 2021년 봄 느닷없이 희귀질환이 발병하며 생의 많은 것이 달라졌다. 첫 시작은 별스럽지 않았다. 이 씨는 "처음엔 목이 쉬더니 일주일 뒤엔 아예 목소리가 안 나왔다"며 "차차 목소리는 돌아왔지만 얼마 뒤 퇴근길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데 갑자기 숨이 찼다. 1층을 오르기 위해 층계 중간에서 2~3분 쉬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며 곧 반전된 상황을 설명했다.
2주 뒤엔 또 다른 증상이 이동욱 씨에게 찾아왔다. 집 욕실을 청소하고 나왔는데 손끝이 빨갰고 냉장고를 열 때의 냉기에 빨개진 손끝에 통증이 느껴졌다. 평소 병원을 잘 가지 않던 이 씨였지만, 손끝 통증으로 괴로움이 컸기에 결국 그는 피부과의원을 찾았다. 의사는 뻘건 손끝을 보며 주부습진이라 진단했고, 바르는 약을 처방했다. 하지만 이동욱 씨는 주부습진은 아니라 여겼기에 약을 바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에도 이 씨 몸에는 계속 변화가 찾아왔다. 냉장고를 열 때만 생겼던 손끝 통증이 일상에서 공간을 넓혀가며 침투한데다 관절을 타고 올라오기까지 했다. 손 전체로 퍼져나간 통증 때문에 이동욱 씨는 주변의 여러 의원에 더해 한의원까지 전전했다. 하지만 통증은 사그라지지 않고 위로 계속 퍼져나가며 악화되기만 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의 호흡곤란도 쭉 이어졌다.
이동욱 씨는 "여러 병원에 갈 때마다 모든 이상 증상을 이야기했지만 어느 병원에서도 흉부 X-ray나 폐기능검사를 해보자는 곳이 없었다"며 "큰 병원 진료를 권하는 병원조차 없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뚜렷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대부분 약국에서 산 타이레놀로 통증 조절을 하며 지냈다. 반전의 계기는 그해 연말 그의 본가가 있는 김해의 한 이비인후과에서 스테로이드제 치료를 시작하며 찾아왔다.
그의 모든 증상을 들은 김해의 의사가 스테로이드제를 처방하면서 "대학병원 진료를 보라"고 권한 것이다. 거의 같은 시기 그의 회사가 있던 충주의 한 의원에서 손 통증 완화를 위해 처방한 파라핀욕(45~54도의 파라핀액에 손을 담그는 온열치료)이 오히려 그에게 더 큰 통증을 초래하는 것을 알게 된 의사가 대학병원 류마티스내과 진료를 권하며, 진료의뢰서를 써줬다.
목이 쉬는 첫 증상이 나타나고 7~8개월만에 대학병원 진료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을 연달아 듣게 된 이동욱 씨는 충북대병원 류마티스내과에 진료 예약을 했고, 얼마 뒤 진료의뢰서를 들고 충북대병원을 찾아갔다. 그쯤 그에게는 또 다른 증상이 더해져 있었다. 손의 붉어진 피부에 딱지가 조금씩 생기다 떨어져 나가며 피부에 구멍이 뻥뻥 뚫리는 증상까지 더해진 것이었다.
충북대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이같은 증상을 모두 듣고 두 눈으로 본 뒤 호흡기내과와 피부과에 협진 의뢰를 했고, CT 검사 등 온갖 검사를 진행했다. 피부과에서는 조직검사도 했다. 모든 검사와 진료 결과를 종합해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피부근염이 의심된다"는 결론을 내며 김해 이비인후과의원에서 시작한 스테로이드제 치료가 다행히 그에게 그간 도움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피부근염은 근력 약화와 피부 발진이 특징인 '자가면역질환'으로 세계적으로 인구 10만 명 당 약 5~10명에게 발병하는 희귀질환인데, 주로 스테로이드제로 염증을 조절하는 까닭이다. 피부근염은 근력과 피부에만 문제가 나타나는 게 아니라 폐‧심혈관‧위장관 등에 심한 염증이 나타날 수 있고, 루푸스 같은 다른 자가면역질환이 동반되기도 한다. 충북대병원 진료 뒤 이동욱 씨는 계속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했다.
그러나 스테로이드제 치료에도 그의 몸에 나타난 증상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피부과에서 조직검사를 한 손 부위 상처마저 덧나 그는 피부이식을 받아야 했고, 그 결과가 좋지 않아 계속 손의 통증과 상처로 고생하다가 삼성서울병원에서 다시 피부이식도 받았다. 2022년 5월쯤 새로운 병명이 드러났다. 피부근염 확진이 나오지 않은 상태로, 또 다른 자가면역질환 '쇼그렌 증후군' 진단이 나온 것이다.
쇼그렌 증후군도 피부와 폐에 병적 증상을 초래할 수 있는 자가면역질환이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의 호흡곤란의 진짜 원인질환이 쇼그렌 증후군·피부근염이 아니라, 폐가 점차 굳어지는 희귀질환인 '진행성 폐섬유증'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2023년 초였다. 2022년 말 느닷없이 찾아온 '기흉(폐에 생긴 구멍으로 인해 늑막강 내 공기·가스가 고이게 되는 현상)'이 진실에 도달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이동욱 씨는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데, 갑자기 숨이 안 쉬어졌다"며 "참아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결국 회사 사람의 도움을 받아 건국대충주병원 응급실로 갔다. 의사는 늑막강 내 공기가 너무 차서 심장을 압박하기 시작하는 응급상황이라며 바로 가슴에 튜브를 꽂아 공기를 빼는 치료를 했고, 그날 입원해 3주간 치료를 하다가 삼성서울병원으로 구급차를 타고 전원했다"고 말했다.
딱지가 앉고 구멍이 뚫린 그의 손 상태를 본 건국대충주병원 의료진이 구멍 난 폐를 막는 기흉수술을 하고 가슴에 꽂은 튜브를 빼는 치료를 했을 때 그에게 나타날 수 있는 자가면역질환 합병증 관리가 어려울지 모른다는 판단에 그를 전원한 것이다. 삼성서울병원 전원 뒤 중환자실에 입원한 이 씨는 상태가 더 악화돼 가슴에 튜브 하나를 더 넣어야 했고 2주 뒤 기흉수술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폐섬유화가 확인됐다.
1년 전 충북대병원에서 폐기능검사를 했을 때만 해도 그의 폐기능은 70% 정도 남아있었는데, 그 사이 '진행성 폐섬유증'이 악화돼 폐기능은 30% 정도로 크게 줄어있었다고 한다. 이후 진행성 폐섬유증 합병증으로 그에게 기흉이 3번 더 찾아왔고, 그는 기흉이 올 때마다 2~3주간 직장에 병가를 내며 치료해야 했다. 올해 초엔 폐기능이 20% 정도로 떨어진 게 확인되면서 2월부터 새로운 치료가 시작됐다.
폐섬유화 진행을 늦춰주는 '오페브(성분명 닌테다닙)'를 복용하게 된 것인데, 오페브 치료를 계기로 이동욱 씨는 한국의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먼저 이 씨는 "진단 초기 약이 있다는 설명을 들었는데, 그때 정확히 안 물어본 게 후회된다"며 "진행성 폐섬유증은 계속 악화되는 병이다. 병의 진행을 늦추는 약이 있다면 의사가 당연히 쓰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진행성 폐섬유증 진단 초기 의료진이 이동욱 씨에게 오페브를 처방하지 않은 이유는 건강보험 급여가 이뤄지지 않아 그가 매달 300만원을 부담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한 번 쓰기 시작하면 계속 써야 하기 때문에 '상태가 정말 나빠졌을 때부터 오페브를 쓴다'는 것을 이동욱 씨는 뒤늦게 안 것이다. 급여냐, 비급여냐에 따라 어떻게 환자에게 약이 처방되는지 알지 못해 절실한 치료 기회를 놓쳤다고도 했다.
이동욱 씨는 "만약 진단 초기 진행성 폐섬유증의 진행을 늦출 수 있는 약이 있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했다면 매달 300만원을 내고서라도 썼을 것"이라며 "그때만 해도 직장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컨디션이었기 때문에 300만원이라는 치료비가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더구나 이 씨는 약 부작용으로 두 달만에 오페브 용량을 절반으로 줄이면서 한달 치료비 부담도 150만원으로 줄었다.
한 달 약값 150만~300만원은 외국계 중소기업 임원인 그에게 큰 부담이 아니었지만, 그의 건강상태가 악화돼 직장생활을 못하게 됐을 땐 다른 말이 된다. 그의 악화된 몸 상태를 배려한 회사 덕에 그는 올해 7월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10월부터 유급휴직 상태여서 현재는 약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진행성 폐섬유증'이 점차 악화되는 병인 까닭에 그는 회사 복직이 사실상 어렵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퇴직 후 언제까지 매달 150만원을 들여 약을 먹을 수 있을지, 그는 벌써부터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오페브가 급여가 되지 않는 한 아무리 '희망회로'를 돌려보려 해도 절망적인 상황밖에 그려지지 않는다는 말도 더했다. 그간 직장생활을 하며 매달 꼬박꼬박 수십만원의 건강보험료를 내온 이 씨는 한국의료의 급여, 비급여가 "참 이상하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동욱 씨는 "1인실이 비급여인 것은 이해된다. 하지만 중한 병이고 의사가 치료에 써야 한다고 하는 약이 국내 도입 8년이 될 때까지 비급여인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약을 쓰지 않으면 더 빨리 죽는다는데, 당연히 급여가 돼있어 하는 것 아닌가"라며 "오페브가 급여 약이어서 진단 초기에 써서 병의 악화가 늦춰져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지속할 수 있었다면 조금 더 우리사회에 보탬이 됐을 텐데…"라는 아쉬움도 전했다.
올해 중순 이 씨에게 더 나쁜 소식이 더해졌다. 의료진이 의심해왔던 피부근염이 삼성서울병원에서 외국에 검체를 보내 진행한 검사를 통해 최종 확인된 것이다. '항-MDA5 항체 양성 피부근염'이 그것인데, 이는 희귀질환 '피부근염' 중에서도 더 희소한 것으로 알려진다. 더구나 항-MDA5 항체 양성일 때는 폐섬유증 예후도 좋지 않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4년 가까이 국내 열악한 희귀난치질환 진단·치료 환경을 마주해온 이동욱 씨는 요즘 '민주적인 의료', '평등한 의료'는 무엇일지 생각한다고 했다. 이 씨는 "경증의 다수가 아닌 중증의 소수를 배려하는 것이 민주적이고 평등한 의료"라며 "중증의 소수 목소리를 우선하는 게 전체적 해결책 같은데, 지금은 중증의 소수에게 돈 없으면 죽으라고 한다"며 국내 희귀난치질환의 보험 급여 정책에 변화를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