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증가세 심상치 않은 희귀질환 '폐섬유증'…약 있는데도 못써

폐 점차 굳어지는 특발성·진행성 폐섬유증, 전체 폐섬유증 약 50% 전체 폐섬유증 20~30% '특발성폐섬유증' 2021년 신환만 4,450명 병 진행될수록 잦은 폐렴·기흉 등 합병증으로 의료비 증가 유발해 악화되는 폐섬유증, 조기 치료 필요한데 부작용·비급여로 접근성↓ 송진우 교수 "보험 급여 문제가 가장 큰 이슈…치료 접근성 높여야"

2024-11-08     김경원 기자

희귀질환 '폐섬유증'의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폐섬유증은 원인과 형태에 따라 200여종으로 분류될만큼 각각이 희귀질환이다. 이 가운데 특별한 원인 없이 발병하는 '특발성폐섬유증'이 전체 폐섬유증의 20~30%를 차지하는데, 최근 1년간 신규 특발성폐섬유증 환자가 약 20% 늘어 4,000명을 넘어섰다. 질병관리청 '희귀질환자 통계연보'에 따르면, 특발성폐섬유증 발생자 수는 2020년 3,737명, 2021년 4,450명으로 큰 폭으로 는 것. 200여종의 폐섬유증 가운데 특발성폐섬유증만 늘어난 게 아니다.

특발성폐섬유증 이외에 나머지 200여종의 폐섬유증은 더 희소해 희귀질환자 통계연보에조차 데이터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지만, 국내 폐섬유증 전문 의료진은 이외의 폐섬유증도 늘고 있다고 현실을 짚었다.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송진우 교수는 "특발성폐섬유증 이외에 전체 폐섬유증 환자도 느는 것 같다"며 "가습기 살균제 이슈, 코로나19 등으로 폐섬유화에 대한 인지도가 올라갔고, 우리나라는 건강검진을 통해 발견되는 환자 비율도 높다"는 점을 첫 번째 이유로 짚었다.

폐섬유증 위험요인은 흡연, 화학제 같은 직업환경 유해물질, 류마티스질환·전신경화증 같은 자가면역질환에 더해 표적항암제·면역항암제 같은 약물, 방사선치료 등으로 꼽히며, 특별한 원인 없이 발생하는 특발성폐섬유증은 확실히 '인구 고령화'와 비례하는 것으로 드러났고 '대기오염'과 '비만'도 최근 위험요소로 지목되는 점도 또 다른 이유이다. 폐섬유증 위험요인의 많은 부분에서 국내 노출은 앞으로 더 늘거나 줄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는 까닭에 폐섬유증 요주의가 필요하다. 

송진우 교수는 "특발성폐섬유증은 노화와 관련이 많다. 50세 미만에서는 거의 안 생긴다. 국내 특발성폐섬유증 유병률은 10만명 당 40명 정도로 예상하는데, 65세 이상 인구로 국한하면 500~1,500명 당 1명 정도로 국내 빠른 인구고령화와 맞물려 국내 노인에게는 아주 드문 병이 아니다. 류마티스질환도 폐섬유증과 관련 있는데, 대표적으로 류마티스관절염 환자의 약 1%에 폐섬유증이 생긴다. 이런 종류까지 감안하면 폐섬유증은 국내 드문 병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송진우 교수.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

전체 폐섬유증 환자 절반, 폐 점차 굳어 사망 위험 노출

더 주목할 문제는 약 절반의 폐섬유증 환자에게 폐섬유화가 진행돼 중증 악화로 간다는 것이다. 전체 폐섬유증의 4분의 1에 달하는 '특발성폐섬유증'은 만성기침과 호흡곤란 같은 증상으로 병원을 찾아 진단받는 시점부터 약 절반의 환자가 3~5년 내 사망할만큼 빠르게 폐섬유화가 진행된다. 송 교수는 "특발성폐섬유증 이외의 나머지 폐섬유증의 3분의 1도 결국 특발성폐섬유증과 비슷한 경과로 진행된다"고 했다. 200여종에 달하는 폐섬유증 전체 환자의 절반이 결국 중증으로 악화되는 셈이다.

현재 특발성폐섬유증 외에 특발성폐섬유증과 비슷한 경과를 보이는 모든 종류의 폐섬유증을 '진행성폐섬유증'으로 분류하는데, 이같이 병이 악화일로로 진행되는 양상을 보이는 '특발성폐섬유증'과 '진행성폐섬유증'은 조기 진단과 치료가 환자 예후에 핵심으로 꼽힌다. 더 진행되기 전 치료해 폐섬유화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이 '급성 악화'라고 하는 원인 미상 폐렴에 더해 기흉, 폐고혈압 같은 폐섬유증의 심각한 합병증 발생 빈도를 줄이고, 사망 위험을 낮추는 까닭이다.

더구나 희귀질환이지만 의료비 절감 차원에서도 폐섬유화 진행 양상을 보이는 2종의 폐섬유증의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송진우 교수는 "희귀질환 중 특발성폐섬유증이 가장 많은 사망 환자를 보여줘 질병 부담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며 "폐섬유증 환자들이 나빠지기 전 약물치료로 미리 폐의 섬유화 진행을 제어하는 것이 폐섬유증 환자의 전체 사망률을 줄일 수 있고, 질병 진행을 경험하지 않게 함으로써 급성 악화로 인한 의료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현재 '특발성폐섬유증'과 '진행성폐섬유증'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는 항섬유화제가 있지만, '약 부작용'과 '보험 급여' 이슈로 인해 미충족 의료수요가 큰 상황이다. 이런 까닭에 폐섬유화가 꽤 진행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합병증에 폐섬유증 의료비가 거의 쓰이고 있다. 송 교수는 "급성 악화 같은 심각한 합병증으로 인한 입원과 관련된 비용이 폐섬유증 환자의 의료비용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며 폐섬유증의 의료비용의 쓰임을 조기 치료로 옮겨야 한다고 역설했다.

'급여 약' 부작용 탓 중도포기율 높아…'비급여 약' 한달 약값 300만원

현재 특발성폐섬유증은 '피르페니돈'과 '닌테다닙' 2종의 항섬유화제 치료옵션이 있지만, 환자들이 처한 치료 현실은 밝지만은 않다. 먼저 병으로 인해 폐기능이 정상 이하로 떨어져 있으면 보험 급여로 피르페니돈 투여가 가능할만큼 국내는 급여 폭이 넓어서 대부분의 환자가 한 달에 약 10만원으로 피르페니돈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피르페니돈은 식욕감퇴와 광과민성 같은 부작용이 심해 국내 도입 초기엔 환자 절반이 1년 뒤 투약을 포기할만큼 장기 복약이 힘든 약이다.

약 부작용으로 '식욕감퇴'나 '광과민성'이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송진우 교수는 "식욕감퇴로 인해 환자 체중이 10분의 1 이상 빠지기도 한다. 계속 식사를 못하면 결국 피르페니돈을 끊어야 할 수도 있다"며 "또 피로페니돈을 썼을 때의 광과민성은 해변에서 1시간 썬텐하는 것을 일상에서 10분만에 경험하는 것과 비견할 수 있다. 광과민성이 심한 경우 피부가 벗져지고 두꺼워져서 환자가 사회생활을 지속하기 힘들어한다"고 짚었다.    

다행히 최근에는 피르페니돈을 썼을 때의 부작용 시 약 용량을 줄였다가 다시 늘리는 방식으로 투약해도 효과가 있다는 점이 시판 후 조사 데이터로 확인되면서 의료진이 환자 상태에 따라 하루 약 용량을 3알에서  2알, 1알로 줄인 뒤 다시 늘리고, 광과민성을 선크림을 발라 관리하면서 과거보다 피르페니돈 중도포기율이 많이 줄기는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작용 때문에 최근에도 약을 끊는 사람이 10명 중 약 2명에 이른다는 것이 송 교수의 지적이다. 

이때 특발성폐섬유증 환자는 또 다른 항섬유화제 '닌테다닙'을 시도해볼 수 있다. 하지만 특발성폐섬유증 환자 입장에서 닌테다닙을 쓰기는 사실 녹록지 않다. 현재 닌테다닙이 유일한 약인 '진행성폐섬유증' 환자도 마찬가지이다. 닌테다닙은 지난 2016년 국내 정식 도입됐지만 8년이 넘어선 현재까지 보험 급여가 되지 않아 한 달에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약값이 300만원에 달한다. 한 달에 300만원의 약값을 내고 치료를 시도하는 폐섬유증 환자는 국내 얼마나 될까?

송진우 교수는 "10명 중 1~2명 정도"라며 "현재는 닌테다닙 치료가 불가한 진행성폐섬유증 환자에게 인정비급여제도를 통해 각 병원 별로 신청해 피르페니돈 처방이 이뤄지도 하는데, 진행성폐섬유증과 특발성폐섬유증의 자연경과가 비슷하기 때문에 약효가 거의 같다고 보고 쓰는 것이다. 현재 피르페니돈 오리지널 약값이 80만~90만원 선이고, 제네릭 약값은 그보다 더 저렴해서 피르페니돈을 쓰기도 하고, 그것조차 어려우면 신약 임상연구 참여를 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매달 50만원이 넘는 비급여 피르페니돈 제네릭 약값조차 부담이고, 일부 대학병원에서 이뤄지는 임상연구 참여의 기회마저 얻지 못한 폐섬유증 환자들은 폐가 굳어가는 상황에 속수무책으로 놓여있다. 송 교수는 "폐섬유증에서 보험 급여 문제가 현재 가장 큰 이슈"라며 "급여가 되지 않은 약에 대한 치료 접근성을 정부가 우선 높여줘야 한다. 또 신약 개발이 많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런 약들이 국내 들어와도 결국 급여가 안 되면 '약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정부가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