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진료실 풍경…의사와 환자가 마주하니 최적의 치료법이 나왔다
[환자중심 헬스케어①] 왜 SDM(Shared Decision-Making)인가 치료 선택지 넓어지자 주목받기 시작한 공유의사결정(SDM) 중증아토피 치료에 활용되는 SDM 도구 '진료준비 기록지' 만족도와 치료 순응도 높여…정착 위해 제도적·정책적 지원 必
진료실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의사 주도로 치료방침을 정했던 과거와 달리 최선의 치료법을 찾기 위해 의사와 환자가 마주한다.
환자를 살리고 치료할 수 있는 선택지가 넓어지면서 의사와 환자가 함께 의사결정을 하는 ‘공유의사결정(Shared Decision Making, SDM)'을 도입하는 곳이 늘고 있다.
공유의사결정은 의사가 환자에게 임상적 근거를 토대로 최적의 치료 목표를 설명하고 여러 치료 방법에 대한 양질의 정보를 충분히 제공함으로써 환자가 최선의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환자의 선호도, 부작용 감내도, 질병 부담, 통원 거리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치료 옵션이 정해지는 만큼 만족도를 높이고 치료 순응도를 높일 수 있으며, 의료비 또한 절감이 가능하다.
국내에서는 지난 2020년 대한신장학회가 복막투석과 혈액투석 등 만성콩팥병 환자의 투석방식 결정에 공유의사결정을 적용하면서 본격적으로 임상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서울아산병원 유방외과에서는 젊은 유방암 환자의 임신 결정 등에 공유의사결정을 활용하고 있으며, 중증아토피피부염이나 류마티스관절염과 같은 자가면역질환에서도 공유의사결정을 도입해 최적화된 치료법을 찾기 위한 노력이 활발해지고 있다.
공유의사결정, 언제부터 논의되기 시작했나
공유의사결정 운동은 1950~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됐다. 환자안전 문제가 이슈가 되고 근거기반 의료운동이 시작되면서다.
지난달 26일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와 대한중환자의학회, 대한암환자지지의료연구회가 개최한 ‘2024년 공유의사결정 공동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캐나다 퀘백 라발대학교(University of Laval)의 아닉 지귀에(Anik Giguere) 교수는 청년의사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의사가 모든 결정을 내리는 가부장적인 태도가 문제였다. 의사 주도로 상담을 이끌어가다 보니 환자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의사가 모든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었다"면서 "그러나 미국에서 동일한 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에서 주(州)마다 다른 치료 방법이 적용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의사와 환자 간 소통 방식에 따라 치료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고 전했다.
한양의대 의료인문학교실 유상호 교수도 "3분 진료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환자뿐만이 아니다. 의사들도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공유의사결정에 대한 개념이 2000년대 이후 도입되면서 하나의 돌파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유 교수는 특히 "의료적으로 타당한 선택지가 2개 이상 등장하면서 부각되기 시작한 것 같다"며 "예를 들어 투석을 해야 하는 환자라면 복막투석 또는 혈액투석을 할 수도 있는데 둘 다 성적이 비슷하다면 결국 환자 상황에 따라 결정할 수밖에 없다. 환자에 대한 정보를 대화를 통해 얻음으로써 치료 방향을 선택하게 된다"고 했다.
공유의사결정, 의사만 바뀌면 될까…환자도 바뀌어야
공유의사결정이 정착되려면 일방적으로 치료방향을 정해온 의사들만 바뀌면 되는 걸까.
의사들은 공유의사결정을 진료현장에 도입하는데 거리낌이 없을까. 물론 아니다. 여전히 많은 의사들은 환자들과 함께 치료방향을 결정한다는 그 인식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제한된 시간에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대형병원일수록 더 그렇다.
그러나 반대로 임상적 의사결정에 개입하길 원하지 않는 환자들도 있다. 의사와 의사를 결정하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질환으로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다보니 전문가인 의사가 결정 내려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환자들도 바뀌고 있다. 중증아토피피부염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모임인 중증아토피연합회는 지난 22년 '아토피 환자를 위한 진료준비 기록지'를 만들어 공유한 바 있다.
아토피피부염은 환자마다 증상과 양상이 다른 대표적인 질환이다. 최근 생물학적제제와 JAK억제제 등 효과적인 표적치료제들이 나오면서 환자마다 이질적인 아토피의 최적화된 치료가 가능해졌다. 증상을 직접 경험하는 환자와 아토피피부염 전문가가 환자가 경험하는 여려움과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커뮤니케이션할 때 최적의 치료의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중아연 박조은 대표는 당시 "진료준비 기록지는 환자가 경험하는 다양한 증상과 어려움, 환자가 가장 필요로 하는 치료목표 등을 의료진과 효과적으로 소통해 최적의 치료를 돕는 SDM 도구"라며 "3분 미만 짧은 진료상담을 하는 의료현실에서 최적화된 치료목표와 방법을 의사와 환자가 함께 논의해 결정한다는 것이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효과적인 치료제들을 통해 높은 치료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세상으로 나와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왔고, 그 일환으로 진료준비 기록지를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중아연의 진료준비 기록지는 해외에서도 주목했다.
글로벌 환자 단체가 주관하는 아시아 태평양 자가면역질환 환자단체 대표 서밋에서 중아연의 진료준비 기록지가 다른 나라 환우회에도 공유된 것.
박조은 대표는 "환자와 의료진이 협력하는 치료로 환자와 의료진 간 소통이 개선되고, 치료 순응도와 성과가 개선되며 무엇보다 환자의 만족도가 개선될 수 있다"며 "다행히 이같은 공유의사결정에 관심을 갖는 의료진이 늘고 있고, 아직은 개발된 툴의 적절성을 평가하며, 순차적으로 적용해보는 단계지만 선도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의료진들이 있는 만큼 중아연에서도 SDM 환경조성을 위해 관심을 갖고 돕겠다"고 했다.
아토피피부염 치료에 진료준비 기록지를 활용하고 있는 의정부성모병원 이영복(피부과) 교수는 "새로운 치료제가 늘어나면서 환자에게 설명하고 필요한 부분을 확인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며 "그러나 짧은 시간 탓에 환자의 주관적 고통이나 원하는 치료 우선 순위를 파악하기 어렵고, 이런 이유로 환자 맞춤형 치료를 추천하고 설명시간을 줄일 수 있는 SDM 도구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영복 교수는 "현재 SDM 도구를 시범적으로 활용하면서 환자가 미처 이야기하지 못했던 불편이나 힘든 부분을 사전에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해졌다"면서 "아직 한계는 있지만 이 도두가 널리 사용된다면 환자와 함께 설정한 치료 목표를 달성하고 복약 순응도와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공유의사결정이 정착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러나 의료진들은 SDM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제도적, 재정적 지원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공통된 지적이다.
청년의사와 인터뷰 한 독일 함부르크의대(MSH) 심리진단학 프리드만 가이거(Friedemann Geiger) 교수는 "제도적 지원은 정말 중요하다. 변화가 필요하다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독일에서는 의사와 환자 수준에서만 개입하지 않고 시스템 전체를 바꾸려고 노력한다"며 "예를 들어 공유의사결정을 시행하면 추가 보상을 받는 방식이다. 즉 공유의사결정 자체가 병원에 추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공유의사결정을 통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치료 결정이 이뤄지더라도 보완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또한 "공유의사결정은 단지 한 명의 의사와 환자 사이의 문제가 아니다. 적극 지원해 줄 수 있는 간호사, 환자의 열린 태도,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 등 구조적 변화도 필요하다"며 "한 명의 의사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스템 전체가 필요하다. 이런 경우 시스템 전반에 걸쳐 보상을 지급하는 게 더 합리적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조선대병원 피부과 나찬호 교수는 "SDM 도구를 현장에서 활용하는 데 있어 가장 힘든 부분이 시간적 제약"이라며 "EASI 측정이나 약제, 치료 목표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선 교육에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되는데 EASI 측정에도 교육에 대해서도 수가가 전혀 없다. 이것만 해결된다면 병원 입장에서도 환자들에게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