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의 골육(骨肉)종 이야기] 골절로 드러난 뼈암이 더 심각한 이유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 박종훈 교수
젊은 성인 남자가 대퇴골 골절로 응급실로 왔다. X-Ray 상으로도 골절 이외에 특이 소견은 없었다. 넘어진 뒤에 골절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수술도 다 끝나고 퇴원해서 외래로 다니던 중에 뼈가 붙지 않고 골절 부위에 이상한 음영이 보여 최초 외상 당시의 기록을 다시한번 살펴보니 간과한 것이 있었다.
심한 충격 때문에 넘어져서 골절이 생긴 것이 아니라 골절이 생겨서 넘어진 것처럼, 아주 경미한 외상에 의해 골절이 생긴 것이다. 또 당시의 골절 부위를 촬영한 CT 검사를 보니 일반적인 골절과는 달리 골절 부위에 무언가가 있어 보였다. 아마도 초기에는 이 모든 현상이 외상에 의한 골절이라는 의사의 판단 때문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워낙 드문 일이라 종양 전문가가 봤어도 놓칠만한 일이다. 환자의 병명은 연골육종이라는 뼈에 발생하는 악성 종양이었다.
대개 뼈에 발생하는 악성 종양 환자는 참을 수 없는 통증 때문에 병원을 방문한다. 진통제에도 반응이 없고 특히 심야 시간대에 심해지는 통증이 특징인데, 가까운 개인 병원을 방문한 뒤 X-Ray나 MRI 등의 검사 후에 이상이 발견돼서 전문가를 찾아오는 것이 통상적인데, 아주 드물게는 뼈에 있던 종양으로 인해 뼈가 부서져서 병원으로 오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얌전히 발견된 종양에 비해서 예후가 좋지 않다.
골육종의 경우 골절이 돼서 발견돼도 항암치료에 잘 반응하면 그럭저럭 치료 결과가 좋을 수도 있지만, 앞에서 언급한 연골육종 같은 항암에 잘 반응하지 않는 종양의 경우는 아주 곤란해진다.
우선 골절로 인해 뼈 안에 갇혀 있던 종양세포들이 터져 나와서 주위를 온통 오염시키기 때문에 추후 광범위하게 절제를 해도 곳곳에서 민란이 일 듯 자라나는 종양들 때문에 반복적인 수술을 하게 되고 결국 전이까지 이어진다. 게다가 병적 골절은 일으키는 종양은 대개 굉장히 공격적인 성향을 갖는다.
환자는 병적 골절이 있고 나중에 연골육종에 의한 골절이었음이 확인된 후 종양 전문가에게 전원됐다. 일단 골절 수술은 앞선 외상 전문의가 해 놓았는데–수술 과정에서 또 어쩔 수 없이 종양세포들이 여러 곳으로 번진다–골절 부위를 포함한 뼈의 상당 부분을 제거하고 종양대체물이라는 기구를 삽입하고 나왔다. 그렇게 하고 난 뒤 내게 다시 전원 됐다.
일단 종양 전문가의 관점에서 볼 때 할 것은 다 한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 환자는 수술 부위를 포함해서 이하 부위의 통증과 이상 감각으로 힘들다고는 하는데, 나의 관점은 당장은 할 것이 없고, 운이 좋게 재발이 없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최종 수술 받은 지 불과 서너 달 만에 뼈의 안쪽 근육에 주먹만 한 종양이 만져졌다.
종양대체물이라고 하는 기구가 삽입되면 그 주위를 보기 위한 MRI나 CT 영상이 제대로 촬영되지 않아서 검사의 제한이 있다. 정확한 종양의 위치와 크기, 주변 조직과의 관계를 파악하지도 못한 채 수술실에 들어가서 확인하고 결정해야 하는데 아주 큰 대퇴근육의 한 파트를 모조리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보행을 위해서 필요한 대퇴 근육은 중요한 것이 3~4개인데 그 중의 하나가 완전히 제거된 것이다.
앞서 시행한 종양 수술에서 일부 근육이 떼어져서 환자의 다리는 그야말로 새 다리가 됐는데, 그래도 보행은 그럭저럭 가능하기는 하다. 그렇게 또 한 서너 달이 지나고, 통증을 조절해 주는 약을 먹던 어느 날, 허벅지 바깥에서 콩알만 한 것이 만져진다면서 다시 외래로 방문했다.
검사를 위해 잠시 영상의학과로 보낸 뒤 한숨을 쉬는 내게 간호사는 “왜요? 교수님”이라고 묻는다.
“아, 그냥 저 환자의 미래가 어떨까 해서. 지금은 아니지만, 왠지 언젠가는 절단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 같은데, 받아들일까?”
검사를 하고 다시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에게 암의 재발임을 설명하고 바로 수술 일자를 잡고 수술 동의서도 받았다. 그렇게 진료를 다 마친 뒤, 환자가 물었다.
“교수님, 결국 절단하겠지요?”
‘헉, 내가 한 말을 들었나?’
“왜요? 그런 생각이 들어요? 골절로 발견된 연골육종의 경우는 치료가 잘 안 되는 것이 통상적이라 그럴 가능성이 있지요. 당장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렇기는 해도 하는데 까지는 해 봐야지요”
“네, 교수님. 끝까지 포기하지는 말아주세요”라면서 환자는 씨익 웃는다.
속이 타들어 갈 텐데, 주치의에게 응원의 미소를 짓는다.
또 당분간 편히 자기는 틀렸다. 이렇게 치료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 예상되는 환자가 생기면 오랫동안 늘 마음이 편치 않다. 낫건 안 낫건 간에 말이다.
어딘가가 아프다고 해서 각종 검사를 하는 것은 과잉진료다. 그러한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은데 종종 골절된 뒤에야 암이 밝혀지는 환자를 보면 때로는 과잉진료가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골절되기 전인 초기에 잘했으면 결과가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서다. 그것도 다 운명이지만 말이다. 이번 수술이 마지막이기를.
박종훈 교수는 1989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7년 정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세부 전공은 근골격계 종양학으로 원자력병원 정형외과장을 거쳐 2007년부터 현재까지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에서 근골격계 종양환자 진료를 하고 있다. 2011년 일본 국립암센터에서 연수 했으며, 근골격계 종양의 최소수혈 또는 무수혈 치료에 관심을 갖고 있다. 고대안암병원장과 한국원자력의학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