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약인데, 성인 환자 '급여' 예외?…집 팔아 치료하는 현실 바뀌어야

[페이션트 스토리] XLH환우회 박순배 회장 인터뷰

2025-02-14     김경원 기자

X-염색체 연관 저인산혈증(XLH, X-linked hypophosphatemia)은 흔히 '구루병'과 혼동되곤 하는데, 저신장, 휜다리 같은 문제를 초래한다는 점에선 구루병과 유사하지만 비타민D 결핍증으로 인한 구루병과 명확히 다른 질환이다. XLH는 X염색체에 위치한 PHEX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섬유모세포 성장인자(FGF23)가 몸 안에 많아지면서 콩팥에서 '인산' 재흡수장애가 초래돼 인체에 '만성적인 저인산혈증'으로 병이 악화되는 유전성희귀질환인 까닭이다. 

FGF23은 우리 몸에 인산이 많아질 것에 대비한 물질로 인산이 많을 때 나와서 인산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데, XLH 환우는 유전자 변이로 인해 'FGF23'이 그냥 올라가 있기 때문에 저인산혈증이 초래된다. 저신장, 휜다리에 더해 잦은 골절, 뼈통증, 치주농양 등 다양한 문제를 초래하는 XLH를 앓는 국내 환우는 15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행히 XLH는 치료제가 없는 다수 희귀질환과 달리 병의 원인인 'FGF23'을 타깃한 표적치료제가 국내 도입돼 있다. 

고가 신약 '부로수맙(제품명 크리스비타)'이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부로수맙 건강보험 급여가 부로수맙 치료가 절실한 모든 연령의 환자에게 열려있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부로수맙 급여는 인산염, 활성 비타민D 유사체 같은 기존 치료제를 6개월 이상 지속 투여해도 병이 조절되지 않는 만 1~12세 이하 소아와 성장판이 열려 있는 18세 미만 청소년 환자에게만 적용된다. 성장판이 닫힌 청소년이나 18세 이상은 부로수맙 치료가 절실해도 급여가 인 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부로수맙 치료를 위해 메디컬푸어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환우 가족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12일 창립한 XLH환우회의 박순배 회장(54세)도 XLH를 앓고 있는 딸 A 양(26세)의 치료를 위해 지난해 집을 팔았다. 생후 18개월 때 XLH 진단을 받은 A 양은 휜다리에 저신장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특별한 문제 없이 20대 초반까지 아무 문제 없이 잘 걸었다. 그런 딸이 아예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기에 박 회장은 매달 1,000만원이 넘는 약값이 드는 부로수맙 치료를 결단할 수밖에 없었다.

XLH환우회 박순배 회장. 사진 제공=박순배 회장

박순배 회장은 "20살이 넘어서까지 잘 걷던 딸이 어느 날부터 자꾸 다리가 아프다고 안 걸으려 하더니, 아예 일어나지 못했다. 병원에서 검사해보니 부갑상선호르몬 수치가 3,000pg/mL(정상 범위 15~65pg/mL)까지 올라가 있었다"고 말했다. XLH환우인 A 양의 부갑상선호르몬 수치가 이처럼 과도하게 상승한 이유는 저인산혈증을 교정하기 위해 오랜기간 인산염을 복용한 탓이었다. 실제 치료 기간이 긴 XLH 환우는 고인산뇨증과 고칼슘뇨증에 더해 부갑상선기능항진증 부작용이 잘 생긴다.

인산을 투여하는 치료로 인해 체내 칼슘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고 우리 몸의 칼슘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인체 작용으로 체내 칼슘 수치를 상승시키는 부갑상선호르몬이 많이 필요해져 부갑상선기능이 항진되는 까닭에 초래된 결과인 것이다. 부갑상선호르몬 수치가 올라가면 우리 몸 속에 과도한 칼슘결정이 생겨서 자잘한 돌들이 곳곳에 생겨나고 통증이 초래되며 심각하게는 콩팥을 망가뜨려 투석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XLH 환우를 내몰기도 한다.

A 양이 통증으로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한 것도 XLH약인 인산염 장기 복약 탓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인산염을 끊을 수도 없다. 인산염을 끊으면 골다공증이 심해져 A 양의 뼈 여기저기가 부러질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쯤 부로수맙이 국내 도입됐다는 이야기를 서울대병원 주치의에게 들었지만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쓰기 어렵다는 이야기에서 그쳤다. 박 회장은 "그 2~3년간 딸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고 고민이 컸다"며 그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고심하다가 결국 병원을 옮겼다고 말했다. 

지난 2023년 11월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이유미 교수로 주치의가 바뀐 뒤, A 양에게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우선 과도하게 상승한 부갑상선호르몬 수치를 잡기 위해 지난해 4월 A 양은 부갑상선절제술로 4개의 부갑상선 중 3개를 떼어내면서 모든 이상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반전이 있었다. 박순배 회장은 "수술 2~3개월만에 다시 또 안 좋았던 수치가 상승했다"며 결국 이유미 교수와 상의 끝에 부로수맙을 비급여로 맞히는 결단을 내렸다고 했다.

지난해 8월부터 매달 한 번 부로수맙 주사치료를 하면서 혼자 일어나지도 못했던  A 양에게 기적이 찾아왔다. 박 회장은 "부로수맙 치료 전에는 침대에서 머리를 받쳐 일으켜 세워야 일어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혼자서도 벌떡벌떡 일어난다. 목발 없이 혼자 조금 걷기도 한다"며 "오늘 외래에서 세브란스병원에 오기 전 뼈 사진과 오늘 찍은 뼈 사진을 비교해봤는데, 안개 낀 것처럼 흐릿했던 뼈 사진 영상이 지금은 선명해졌다. 눈에 보이는 드라마틱한 변화가 많다"고 변화된 상황을 설명했다.

A 양의 부로수맙 치료 효과를 직접 체감한 만큼 박순배 회장은 부로수맙을 끊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이유미 교수의 권유와 딸을 위해 나서야 한다는 마음으로 국내 XLH 치료환경 개선을 위해 환우회 결성을 준비하면서 부로수맙 임상시험에 참여했던 XLH 환우가 임상시험이 끝난 뒤 더는 부로수맙을 못 쓰고 기존 치료제로 돌아간 뒤의 상황을 들을 것도 한 몫 한다. 그 환우는 세브란스병원에 오기 전  A 양의 상태와 다름 없는 상태로 병이 악화됐다. 

또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가능했던 딸이 치료 적기를 놓치면서 등이 굽는 등 사지변형으로 지금은 일상을 살아가는데 제약을 겪는 것과 같은 일이 더는 XLH 환우들에게 없게 하기 위해 박순배 회장은 나이에 상관 없이 모든 XLH 환우들이 부로수맙 치료가 가능하게 XLH 치료환경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비단 박 회장만의 생각이 아니다. XLH환우회가 결성된 뒤 환우와 가족들 모두 부로수맙의 성인 급여화가 시급하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순배 회장은 "XLH환우회 결성 뒤 환우와 가족들이 부로수맙 성인 급여에 중점을 두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과에 릴레이 전화를 했고, 탄원서도 제출했다. XLH 환우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자필로 써서 탄원서에 첨부해 보내기도 했다"며 "이후 'XLH 환우들의 힘든 상황을 공감하지만 정책적 문제이고 여러 관계 부서의 단계를 거쳐야 하며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XLH 환우가 치료를 통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