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제약사 모두 거부하는 한국 약가제도…피해는 고스란히 환자 몫

수면연구학회, 세계수면의 날 기념 수면장애 치료 현실 조명 효과적 치료제 있지만 코리아 패싱 만연…국내 환자들 그림의 떡 출시된 치료제조차 가격문제로 한국 철수…길 잃은 기면병 환자들

2025-03-05     유지영 기자

기면증, 불면증, 하지불안증후군, 렘수면행동장애 등 수면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들이 국내 약가제도로 인해 효율적인 치료 기회를 잃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 허가를 신청조차 않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늘고 있고, 건강보험까지 적용되던 약제가 가격문제로 시장에서 철수하는 등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글로벌 제약사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SK바이오팜 등 국내 제약사도 기면병에 효과적인 치료제를 개발했지만 국내 출시 계획을 전혀 세우지 않고 글로벌에서만 판매하고 있다. 

대한수면연구학회는 지난 4일 세계수면의 날 기념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우리나라 수면장애 치료 현실과 개선 필요성에 대해 지적했다. 

대한수면연구학회는 지난 4일 세계수면의 날 기념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우리나라 수면장애 치료 현실과 개선 필요성에 대해 지적했다. 

수면연구학회 홍보이사인 강남성심병원 신경과 전진선 교수는 "수면장애는 단순 생활 불편을 넘어 심혈관계 질환, 대사질환, 치매, 정신건강 문제 등 다양한 건강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상태"라며 "그러나 국내에서는 여전히 수면장애의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으며, 치료제의 보험 적용 문제와 글로벌 제약사의 코리아 패싱 현상으로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했다. 

전진선 교수는 "최근 몇년간 우리나라의 경우 혁신적인 신약의 도입이 지연되거나 기존 치료제조차 보험적용을 받지 못해 환자들의 부담이 커지고, 이미 출시된 치료제조차 가격문제로 퇴출되는 현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면서 "급기야 한국 시장의 낮은 의약품 가격을 이유로 공급을 중단하는 곳이 생겼다"고 전했다. 

전진숙 교수에 따르면 수면장애 중 불면증의 경우 주로 벤조디아제핀 및 비벤조디아제핀 계열 수면제에 의존한다. 하지만 이 약물은 의존성, 기억력 저하, 주간졸음 등의 부작용 때문에 장기 사용이 어렵다. 

때문에 국제적으로는 의존성이 적고 보다 정상적인 수면 구조를 회복시킨다는 점에서 수보렉산트, 렘보렉산트, 다리도렉산토 등의 DORA 계열 신약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보험은 커녕 허가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7% 정도가 앓고 있는 하지불안증후군의 경우 2016년 치료 가이드라인에서는 장기사용 시 증상 악화 가능성이 있는 도파민효현제 대신 알파2 델타리간드 제제인 프레가발린과 가바펜틴을 1차 치료제로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프레가발린과 가바펜틴 두 약제 모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들은 매달 수십만원의 약값을 부담하고 있다. 

희귀질환 기면병 치료제인 와킥스(Wakix, 피톨리산트)는 지난해 9월 16일부로 제약사가 자진 허가를 취소하면서 국내 공급이 중단됐다. 와킥스의 경우 기존의 각성제 기반 치료제들과는 달리 히스타민 H3 수용체를 조절하여 각성을 유도하는 약물이다. 다른 약들에서 효과가 없고 주간졸음증과 탈력 발작 두가지 동시에 효과가 있는 유일한 약이며, 다른 약제에 부작용이 있는 경우 처방돼 왔다. 

하지만 국내 의약품 가격이 글로벌 시장 대비 지나치게 낮다는 이유로 제약사가 공급을 포기했다. 비교적 낮은 가격으로 공급되는 프랑스에서는 1만원 이상으로 책정돼 있지만 건강보험에서는 2,500원 수준에 불과하다.  

문제는 기면병 환자들의 경우 대체할 수 있는 동일 성분의 약물이 없어 치료 공백이 불가피하다. 한국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 개별적으로 수입해 사용할 수 있지만 이 때는 환자들의 부담이 몇배 올라갈 수밖에 없다. 

렘수면행동장애의 경우 치료제로는 클로나제팜과 멜라토닌이 있는데 클로나제팜의 경우 낙상, 인지기능 저하, 의존성 등의 부작용 위험이 높아 고령 환자에서는 주의가 요구된다. 렘수면행동장애의 경우 고령층에서 발병하는 질환이므로 멜라토닌 제제가 클로나제팜보다 안전한 대체 치료제로 권장되지만 비급여 약제로 돼 있어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게는 높은 비용 부담이 발생하게 된다는 게 전진선 교수의 지적이다. 

수면장애 환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치료제만은 아니다. 

전 교수는 "수면무호흡증 및 과다수면 진단을 위해 지난 2018년 7월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된 수면다원검사의 경우 최근 폐쇄수면무호흡 환자에게도 건강보험이 적용돼 치료효과가 개선됐지만 심부전, 뇌졸중, 만성신부전 등의 중증질환에서 동반되는 중추수면무호흡의 경우 생존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도 급여대상에서 제외돼 진단과 치료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전 교수는 "다양한 수면질환에서 치료제 접근성이 제한된 상황"이라며 "수면장애 치료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는 치료제에 대한 보험적용을 확대하고 환자들이 치료를 중단하지 않도록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한수면연구학회 신원철(경희대병원 신경과) 회장은 "국내 제약사인 SK바이오팜의 기면병 치료제 솔리암페톨은 유럽과 미국에 출시돼 있지만 한국에 들어오면 약가도 제대로 못받을 것 같아 글로벌 시장에 집중하느라 한국에서는 출시할 계획이 없다고 한다"며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보장성을 강화해야 할 약이 철수되는 사태를 정말 심각하게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이게 바로 대한민국 수면장애 의료정책의 현주소"라며 "앞으로 정부와 의료계가 협력하여 수면장애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실질적인 정책개선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