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막투석, 글로벌서 활성화…국내 시범사업에도 점유율 5% 밑으로 추락
태국 복막투석활성화정책으로 복막투석 점유율 5.5→30.7%로 개선 韓시범사업 중 점유율 2019년 6.8%→2021년 5.4%→2023년 4.5% 신장학회, 복막투석 수가 0원 문제…복막투석 수가·병원 인센티브를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늘고 있는 '말기콩팥병'의 치료법인 2종류의 투석 중 복막투석은 혈액투석만큼 효과적이면서 경제적 부담이 적고 심지어 일과 병행해 치료받을 수 있는 장점 덕분에 글로벌 각국에서 복막투석 활성화 정책을 펴고 있다. 이같은 정책으로 미국의 복막투석 환자 점유율은 2012년 8.3%에서 2022년 14.0%로 늘었고, 태국은 2008년 9.5%에서 2016년 30.7%로 개선된 바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그 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19년부터 복막투석 환자가 집에서 자가관리를 할 수 있도록 재택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복막투석 환자 재택관리 시범사업'을 펼쳐오고 있지만, 국내 복막투석 점유율은 2019년 6.8%에서 2021년 5.4%, 2023년 4.5%로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시범사업이 종료되는 올해 말 이후 본사업이 예견되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본사업을 진행했을 때의 실효성에 대해 벌써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문제에 대한 인식으로 대한신장학회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은 지난 7일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말기콩팥병 환자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복막투석 활성화 방안' 정책토론회를 열고 국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말기콩팥병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의료비 절감 효과를 배가하면서 국내 생산가능인구를 늘릴 수 있는 '복막투석'의 국내 활성화를 막는 요인들을 짚고, 그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우선 말기콩팥병 환자 입장에서 혈액투석을 복막투석보다 선호하는 이유는 혈액투석은 병원에서 하지만, 복막투석은 집에서 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이날 한림대성심병원 신장내과 김좌경 교수는 "가장 큰 복막투석 허들은 약간의 불안함"이라며 "'내가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런 까닭에 국내 복막투석 환자 재택관리 시범사업은 복막투석 환자가 잘 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 피드백하면서 복막투석을 환자가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복막투석 환자 재택관리 시범사업'으로 국내 복막투석 환자 비율은 오히려 줄었다. 그간 시범사업을 통해 복막투석 등록 환자의 사망 위험이 미등록 복막투석 환자의 사망 위험보다 낮고, 혈액투석 전환 환자가 더 적으며, 복막염이나 도관감염 합병증 발생 위험이 낮고, 응급실 방문 건수나 입원 일수가 줄며, 총의료비마저 감소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국가 정책을 통해 복막투석 환자를 등록해 관리하면 효과가 더 크다는 사실이 확인됐는데 이상한 일이 생긴 것이다.
현재 시범사업에서는 의사가 15분 이상 전문적·심층적 교육·상담을 했을 때 4만2,480원을 받는 교육상담료Ⅰ(연간 2회로 제한, 단 첫해만 4회 인정)과, 의사 또는 간호사가 20분 이상 질환·건강 관리에 대한 교육·상담을 했을 때 2만6,770원을 받는 교육상담료Ⅱ(연간 4회로 제한, 단 첫해만 6회 인정), 주기적 환자 모니터링·관리를 위한 비대면상담을 했을 때 2만8,710만원을 받는 환자관리료(월 1회로 제한)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시범사업으로 이같은 수가를 받을 수 있게 됐는데도 의료진이 혈액투석 대신 복막투석을 환자에게 적극 권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김 교수는 "복막투석을 하려면 복막염 등 염증 조절이 돼야 되기 때문에 독립된 공간이 있어야 되는데, 병원 내 공간이 없고, 의사가 복막투석 환자에게 확인해야 하는 것을 알려면 팀 접근이 필요한데 전담간호사도 없다"며 이런 까닭에 "실제 말기콩팥병 환자들이 투석 옵션으로 복막투석이 있는 것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짚었다.
신장학회 양재원 보험법제이사(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신장내과 교수)에 따르면, 혈액투석의 1인당 총 진료비는 복막투석의 약 1.4배로, 복막투석을 할 때 환자 개인 부담에 더해 건강보험 재정 부담도 더 준다. 더구나 혈액투석을 하면 매주 3회 병원에서 4시간씩 투석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말기콩팥병 환자가 혈액투석을 하면 직장을 다니기 어렵게 되고, 이는 한 가정의 경제를 흔들리게 만든다. 이런 여러 요인 떄문에 각국에서 복막투석 활성화 정책을 펴는 것이다.
그렇다면 각국에서는 복막투석 활성화를 위해 어떻게 하고 있을까? 양재원 보험법제이사에 따르면, 대만의 경우에는 복막투석 환자가 새롭게 발생했을 때 정부에서 복막투석 센터에 약 2,600만원의 비용을 지급한다. 의사·간호사의 교육비, 시설비 등 복막투석 시작에 소요되는 비용을 국가에서 부담하는 것이다. 또한 복막투석 신환의 투석 지속에 따른 비용도 약 310만원(6개월 지속 시), 약 88만원(12개월 지속 시) 책정돼 있다.
더불어 복막투석 환자의 관리비용으로 매월 약 45만원을 지원하고, 치료 목표 달성 시에는 최대 66만원까지 지급 비용이 올라간다. 홍콩은 복막투석 우선 정책을 펼치며 복막투석 점유율이 75%를 넘어섰다. 양재원 보험법제이사는 "의료적 이유로 복막투석을 할 수 없는 환자에 한해 혈액투석에 급여를 적용하면서 투석 환자의 75% 이상이 복막투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미국은 혈액투석과 복막투석의 수가를 동일하게 설정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시범사업에서 교육상담료와 환자관리료를 받는 것 외에 현재 복막투석 수가는 '제로', 즉 0원이다. 우리나라는 의료진의 의료 행위에 따라 수가를 주는 '행위별수가제'를 택하고 있어서 병원에서 혈액투석을 하면 저수가이기는 하지만, 수가를 어느 정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복막투석은 환자가 집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료진의 의료 행위가 없다고 판단해 수가를 별도로 책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까닭에 복막투석 치료에 대한 의사의 동기부여가 부족한 상황인 것이다.
김좌경 교수는 "실제 복막투석에 대한 의사의 동기부여 부족으로, 의사가 환자에게 복막투석에 대해 설명을 열심히 안 했을 가능성이 크고, 의사가 병원에 공간을 달라고 얘기하지 않았을 가능성, 의사가 병원에 복막투석 전담 간호사가 필요하다고 얘기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까닭에 (복막투석 환자 비율을 늘리기 위해) 정책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장학회가 현재 요구하는 것은 복막투석에 대한 의료진의 동기부여를 강화할 수 있는 현실적 지원이다.
김 교수는 "의료진이 복막투석 환자를 끌어갈 수 있는 동기부여를 주려면 최소한 하는 의료 행위에 대한 적절한 수가가 필요하다. 지금은 단 한 푼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의료진에게 어떤 동기부여도 되지 않는다. 또 교육이나 여러 가지 시설, 간호사 등이 필요하지만 병원 입장에서 복막투석 환자가 늘면 병원에 어떤 긍정적인 이득이 없기 때문에 해줄 의지가 없다. 의사와 병원을 독려시킬 수 있는 긍정적인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현재 신장학회는 혈액투석 수가의 20~25% 정도의 수가가 복막투석에 책정돼야 한다고 요구한다. 김좌경 교수는 "혈액투석은 1회당 12만원이 책정돼 있고, 월수금 해서 한 달에 13번 정도 혈액투석을 한다. 복막투석에 혈액투석의 일주일 분, 36만원이라도 수가가 만들어져야 된다"며 "또 복막투석을 하려면 병원에 독립된 공간이 필요하고 전담 간호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결국 복막투석 환자가 늘어나는 것이 대해 병원에도 인센티브를 줘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신장학회의 요구대로 했을 때,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더 늘어날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금보다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현재 추세대로 투석 환자가 늘면 2033년 말기콩팥병 환자의 총 진료비는 5조7,000억원 정도가 된다. 그런데 복막투석 환자 점유율을 매년 1% 늘려서 2033년 16% 정도로 만들면 2033년 말기콩팥병 환자의 총 진료비는 5조,4000억원 정도로 3,000억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김좌경 교수는 "복막투석 수가와 병원 인센티브를 다 제하면 약 1500억원 정도의 절감이 있는 것으로 경제적 분석 결과에서 나왔다"며 "일상생활을 하면서 투석을 할 수 있는 툴로 복막투석이 있다는 것을 조금 더 말기콩팥병 환자에게 권할 수 있게 하려면 복막투석 수가와 병원 인센티브, 복막투석 전담 간호사 등의 전문인력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올해 말 시범사업이 끝나고 본사업에 들어가기 전에 어느 정도 반영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지불제도개발실 김현아 지불제도개발부장은 "복막투석 활성화를 위해 신장학회와 앞으로 상반기에 간담회를 실시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겠다. 또 하반기에는 시범사업의 본사업 전환 여부를 검토하는데, 복막투석 국내 활성화를 위해 시범사업 결과 등을 고려해 추가 개선 필요성을 심도 있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 정성훈 과장은 "건강보험 제도에서 보상 방식은 의료진의 행위가 있어야만 보상하기 때문에 복막투석에 대한 보상은 제한점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미국은 특정 질환군에 대해 동일한 보상을 하거나 의료진이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해 환자의 결과가 잘 나오면 보상할 수 있게 일종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데, 국내도 참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시범사업에 교육이나 주기적인 모니터링, 관리와 관련된 수가에 대한 보상 수준을 높이고 항목을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시범사업 개선 과정에서 그런 부분을 좀 더 살펴봐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남인순 의원은 "복막투석에 대한 현재의 수가로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말기콩팥병 환자가 투석 방법으로 복막투석을 선택해 치료와 일상생활을 병행하고 환자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공정한 보상을 추진해야 한다"며 "해외 정책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수가를 개선해 재택 투석이 가능한 복막투석을 국내서 활성화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