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전공의들, 근무시간 주 80→64시간으로 '전공의법' 개정 요구
박단 “근로기준법 기본으로 예외적으로 전공의법 적용해야”
사직 전공의들이 주 80시간인 법적 근무시간을 최대 64시간으로 단축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연속근무시간도 36시간에서 24시간으로 줄여야 한다고 했다.
10일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회입법조사처가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주제로 개최한 ‘의료현장 정상화를 위한 정책 대화’에서 사직 전공의들은 전공의법 제정 이후에도 수련환경은 개선되지 않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경기도 소재 병원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김은식 사직 전공의는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수련 당시 겪은 부당한 일들을 토로했다. 그는 세브란스병원 전공의협의회장을 지냈다. 그는 “임신한 전공의도 다른 전공의들과 마찬가지로 야간 당직 근무가 강제됐다”며 산부인과 전공의 시절 임신한 채 야간 당직 근무를 서야 했던 A씨 사례를 이야기했다. 그는 "A씨가 속한 의국은 임신한 전공의가 당직과 야간시간 근무를 할당 받는 것이 법에는 저촉되지만 의국 역사상 임신한 전공의가 당직 등 근무를 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며 암묵적으로 당직 근무를 강요했다”고 했다. 근로기준법 제70조 제2항과 제74조 제5항에 따라 임산부는 명시적으로 요청하지 않는 한 야간 근로와 초과 근로가 금지된다.
그는 “다른 전공의 B씨도 임신 초기부터 당직 근무를 섰으며 어느 날 퇴근 후 자택에서 복통을 느껴 응급실을 거쳐 다음 날 새벽 응급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며 “세브란스병원 다른 과들에서도 산부인과 등 (다른 전공의) 사례를 참고해 임신한 전공의들에게 출산 직전까지 당직을 서도록 해 문제가 된 바 있다”고 했다.
주 80시간으로 제한된 전공의 수련시간도 악용되고 있다고 했다. 전공의법 제7조에 따르면 전공의 근무시간은 4주 평균 주당 80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응급상황이 아니면 연속 36시간 이상 근무할 수 없다. 그러나 지난 2022년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소아청소년과에 파견 근무 중 부당한 근무 요구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파견 근무 중 코로나19에 확진돼 일주일 간 격리가 필요했고, 해제 이후 근무를 시작했지만 일산병원 측은 파견 일정 4주 동안 평균 80시간에 맞춰 코로나19로 격리됐던 일주일을 벌충하도록 요구했다”며 “코로나19 후유증에 시달리는 와중에 4주 평균 80시간에 맞게 근무를 벌충하도록 강제해 주당 110시간, 120시간의 고된 근무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공의법을 위반해도 처벌 조항이 없어나 그 수준이 경미한 탓에 전공의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사용자인 병원은 법의 허점을 악용해 지속적으로 전공의를 착취하며 횡포를 부리고 있다. 전공의법 허점을 보완하고 현실에 맞게 개선해 전공의들이 법적 보호를 받으며 양질의 수련을 받을 수 있도록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주 100시간이 넘게 근무하지만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내과 수련을 받았던 김준형 전 순천향대병원 전공의협의회장은 “주 120시간 이상 근무했지만 실질적으로 전문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경험은 채우지 못했다”며 “환자와 의사가 가장 많이 만나는 상황은 외래 진료다. 하지만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 실제 독립적으로 외래 진료 기회를 주는 진료과목은 손에 꼽는다. 내과를 수련했는데 독립적으로 외래 진료를 본 적인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수련병원과 전문과목마다 교육 체계가 다르다. 업무에 대해 제대로 된 매뉴얼을 갖추지 않은 전문과목이 대부분이며 전공의는 몇 장짜리 인계장과 상급년차 전공의 조언, 교과서, 인터넷 검색에 의존해야 한다”면서 “지도 전문의 제도가 있지만 실질적 역할을 유명무실하다. 이런 난장판 수련에도 지난 10년간 전문의 2만7,000명이 배출됐다”고 했다.
대전협 박단 비대위원장, 전공의 근무시간 최대 주 64시간 제한 요구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비상대책위원장은 전공의 근무시간을 근로기준법에 맞춰 주 40시간으로 제한하고 교육적 목적을 위해 주 24시간 한도로 연장하도록 전공의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연속근무도 24시간으로 제한하는 대신 응급상황 발생을 고려해 4시간을 추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휴게시간을 수련시간으로 인정하고 최저시급의 임금 수준과 교육 부재, 법적 분쟁 위험 등도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전공의법이 오히려 특별법이라는 지위 때문에 악용당하고 있다”며 “다른 법률에 우선해 적용한다는 문구 때문에 병원에서는 주 80시간 이상 연장 근무를 하고 있지만 임금 가산은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며 “기본적으로는 일반 국민이 적용 받는 법을 적용하되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전공의법을 적용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전공의 실태조사에서 전공의 평균 급여는 397만원이다. 이를 시급으로 환산하면 시간당 1만1,700원 수준에 불과하다. 사실상 최저 시급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전공의법에는 가산 규정이 명확히 포함돼 있지 않아 병원별 내규에 따라 임금을 책정하고 있어 전공의들은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박 위원장은 “(전공의법에는) 벌칙조항도 없다. 과태료 500만원이 전부”라며 “근로기준법만 놓고 보더라도 법정 근로시간 초과, 휴가 시간 미 보장의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며 가산 임금 규정 위반 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근로기준법에 있는 대로만 벌칙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했다.
박 위원장은 “더 이상 전공의를 값싼 노동력으로 취급해선 안 된다. 정부는 지난 1년간 전공의 공백으로 인해 3조3,000억원의 추가 비용을 지출했다. 이는 전공의 노동력 착취를 통해 병원이 부당 이익을 챙겨왔다는 사실을 반증한다”면서 “제대로 된 전공의 교육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