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리병 조기 치료, 보험 급여 기준 탓 제한…"조기 치료 가능해져야"

[페이션트 스토리] 파브리코리아 장동기 회장

2025-06-13     김경원 기자

파브리병은 X염색체의 GLA 유전자 돌연변이로 몸 안에 알파갈락토시데이즈A 효소가 결핍돼 '글로보트리아실세라마이드'라는 어려운 이름의 물질이 분해되지 못하고 계속 세포 내에 쌓여 신경, 신장(콩팥), 심장, 눈 등에 이상을 초래하는 유전성희귀질환이다. 특이하게 파브리병은 카멜레온 같이 나이에 따라 다른 형태의 증상을 보인다. 또 남녀에 따른 증상 정도나 질병 경과 차이도 뚜렷하다. 

파브리병 남성 환자는 조금 더 어린 나이에 증상이 나타나고 더 심하게 진행하는데 비해 여성 환자는 상대적으로 조금 늦게 증상이 나타나고 천천히 진행한다. 파브리병이 환자에게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남성에서는 대체로 소아 때다. 남자 파브리병 환자는 보통 6~7세쯤 증상을 처음 경험한다. 여자 환자도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쯤이면 증상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처음 파브리병 환자들이 겪는 증상은 손발 통증, 땀분비 이상 등이다. 우리 몸에 글로보트리아실세라마이드가 축적되면 자율신경계에 문제가 생기는데, 이로 인해 땀 분비가 크게 감소해 체온 조절이 쉽지 않다. 또 손발이 굉장히 발작적으로 따갑고 아픈 형태의 통증이 흔한데, 보통의 병원 검사로는 이때 파브리병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흔히 '꾀병'이라 오해받는다. 시간이 지나면 이 병은 명확한 신체 이상을 초래한다.

신장에 문제가 생겨 단백뇨가 나오거나 심장이 비대해지고 기능이 점차 떨어져 심근비대, 심근경색, 부정맥 등의 문제가 더해지는 병이 파브리병인 것이다. 파브리병은 되돌릴 수 없는 장기 손상이 나타나고, 그 이유를 찾아나가는 긴 터널을 지난 뒤 진단되는 희귀질환의 전형에 가까운 병이다. 파브리병환우회인 파브리코리아 장동기 회장(59세)이 2017년쯤 이 병을 진단받기까지 40여년이 걸린 이유다.

파브리코리아 장동기 회장

알파갈락토시데이즈A 효소 결핍이 심하지 않은 축에 속한 파브리병 환자인 장 회장에게 이 병이 존재를 드러낸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쯤이었다. 장 회장은 "손저림이 굉장히 심했다. 바람만 스쳐도 칼에 손이 베인 것 같은 통증이 생기기도 했는데, 진짜 통증이 심할 때는 죽고 싶었다. 그런데 겉으로 아무 티도 나지 않아 다들 '꾀병'으로 여겼다"고 회상했다. 그를 힘들 게 한 또 다른 증상은 땀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장동기 회장은 "남들은 여름에 땀을 주르륵 흘리는데, 나는 땀 하나 흘리지 않는데 얼굴이 빨개지고 열이 올라 늘상 굉장히 더워했고, 열이 엄청 많아 겨울에도 찬물로 샤워를 하곤 했다"고 말했다. 또 2004년쯤 그는 건강검진에서 '심장비대' 진단을 받고, 거주지인 인천의료원을 거쳐 인하대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지만 특별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는 어머니도 심장비대가 있어 유전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파브리병을 진단받은 2017년, 그에게는 커다란 이벤트가 있었다. 수원에서 골프를 치던 중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이다. 아주대병원으로 실려간 그는 의식을 되찾았고, 그런 그에게 의료진은 심전도검사에 심근비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가 있지만 그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장 회장은 더는 몸에 나타나는 고통스러운 문제의 원인을 간과할 수 없었기에 세브란스병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부정맥 진단 뒤 시술을 연달아 받아야 했다.

첫 부정맥 시술도 그에게 효과가 없었지만, 두 번째 시술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심장내과 교수는 같은 과의 파브리병 전문 의료진인 홍그루 교수에게 보냈다. 홍 교수는 그의 병력을 살핀 뒤 피를 뽑아 외국으로 유전자검사를 보낸다고 설명하면서 검사 결과는 빠르면 45일, 늦어도 60일 내에 나온다고 말했다. 장동기 회장에게 세브란스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45일 뒤였다. 

목요일에 전화를 받았지만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장 회장이 가장 빠르게 병원 진료에 시간을 내는 게 가능한 때는 그 다음주인 화요일이었다. 그날 아침 첫 진료 환자였던 그에게 홍그루 교수는 파브리병 진단을 내렸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를 때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괴롭힌 원인을 50세가 넘어 드디어 찾은 것이다. 진단 뒤 그는 이틀에 한 번 약을 복용하는 치료를 시작했고, 그를 괴롭혔던 것들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게 됐다. 

장동기 회장은 "효소(글로보트리아실세라마이드)가 웬만큼 유지돼 효소를 유지시켜주는 약을 먹는데, 치료 성과가 굉장히 좋다. 운동을 좋아하는데, 치료 전에는 탁구 같은 운동이 숨이 너무 차서 못 했었다. 지금은 탁구를 칠 만큼 컨디션이 좋다. 또 이제는 땀도 약간 나온다.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심한 통증이 없어졌다는 것"이라며 제대로 병을 진단받고 치료받으면서 그의 삶의 질이 크게 달라졌다고 했다. 

경험을 통해 파브리병의 조기 진단과 치료의 중요성을 알기에 그는 집안 환자부터 찾았고, 이를 통해 10명 가까운 환자를 찾았다. 또 2023년 4월 파브리병환우회장을 맡게 된 뒤, 장 회장이 가장 집중한 것도 환자 발굴이었다. 유전질환이기에 한 환자를 찾으면 고구마를 캐듯 가족 내에서 많은 환자들을 찾을 수 있는데, 집안의 거센 저항이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기에 환우회 내 가족검사지원시스템을 만든 것. 이를 통해 지난해에만 9명의 환자를 찾았다고 한다. 

파브리병 진단 환경도 그간 많이 바뀌었다. 지난해 1월부터 파브리병이 신생아선별검사항목에 포함되면서 국가시스템 안에서 파브리병의 조기 진단이 가능해졌고, 환우회를 비롯해 의료진, 제약사 등에서 파브리병을 열심히 알리는 활동을 하면서 확실히 과거보다 파브리병에 대한 인지도도 높아졌다. 진단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파브리병에서 더 큰 문제로 부각되는 것이 있다. 바로 조기 진단이 이뤄져도 파브리병의 '조기 치료'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은 파브리병 치료제에 대한 국내 건강보험 급여 기준 때문인데, 현재는 파브리병으로 문제가 나타났다고 해서 바로 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파브리병으로 인한 심근비대의 경우에도 좌심실 두께(정상 7~8㎜)가 12㎜ 초과돼야만 치료제의 10%만 환자 부담으로 내는 '급여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 파브리병 진단 당시 이미 심근비대로 좌심실 두께가 10㎜일 때, 치료하려면 약값의 100%를 모두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파브리병 치료제는 비싸고 평생 써야하기 때문에 사실 급여가 적용되지 않으면 환자·가족의 입장에서 치료를 시작하는 게 쉽지 않다. 더구나 해외에서는 파브리병으로 인해 문제가 발견되면 바로 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 국내는 그렇지 못한 까닭에 실제 파브리병 전문 의료진도 이 부분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의 파브리병 약제 급여제도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보는 파브리병 환우들도 마찬가지다. 

장동기 회장은 "파브리병 전문 의료진의 판단으로 효소를 주입하는 치료를 시작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 하다. 조기 치료를 하면 파브리병의 진행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 파브리병 환자의 삶의 질이 달라진다"며 "올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파브리병에 조기 치료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달라는 안건을 보냈고,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낼 생각이다. 이를 통해 파브리병이 조기 치료가 가능한 환경으로 변회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