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희귀하지만 치명적일 수 있는 '부갑상선암'·'비정형부갑상선종양'
[내분비희귀질환, 그 숨겨진 이야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박혜선 교수
현재 알려진 희귀질환의 종류는 8,000종 이상이다. 하지만 치료제가 있는 질환은 전체 희귀질환의 5%에 불과하다. 더욱이 희귀질환은 의사들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환자들은 진단방랑을 겪기 일쑤다. 대한내분비학회 산하 내분비희귀질환연구회가 연재하는 <내분비희귀질환, 그 숨겨진 이야기>는 우리가 몰랐던 내분비희귀질환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환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하는 코너로 희귀질환 극복에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편집자주>
칼슘은 심장 박동, 근육 수축, 신경전달 등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무기질로, 특히 근골격계 건강, 즉 성장기에는 뼈의 형성과 발달에, 노년기에는 골소실 예방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혈중 칼슘 수치가 높은 것이 건강에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칼슘 수치가 정상보다 높다면 칼슘 대사와 관련된 질환을 의심해야 한다.
우리 몸은 혈중 칼슘 농도를 매우 정밀하게 조절한다. 칼슘 섭취가 많아지면 흡수는 줄이고 소변 배출은 늘리며, 반대로 칼슘이 부족해지면 뼈에서 칼슘을 녹여 혈액 내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이 과정을 조절하는 핵심 호르몬이 바로 부갑상선호르몬(parathyroid hormone, PTH)이다.
부갑상선은 갑상선 뒷면에 위치한 약 5mm 크기의 내분비샘으로, 일반적으로 4개가 존재한다. 이 작은 기관은 혈중 칼슘 농도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PTH를 분비함으로써 칼슘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혈액검사에서 칼슘 수치 이상이 확인될 경우 가장 먼저 부갑상선 기능 이상을 의심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부갑상선은 생소한 기관이지만, 이 곳에 암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부갑상선암은 전체 암 중 유병률이 0.005%에 불과한 극히 드문 암이다. 그러나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고 고칼슘혈증으로 인한 합병증이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어 임상적으로 매우 중요한 종양이다. 수술로 종양을 완전히 절제한 경우에는 5년 생존율이 80% 이상이지만, 전이가 진행됐거나 수술 후 재발이 반복되는 경우에는 예후가 나쁘다.
초기 부갑상선암은 대부분 무증상이다. 혈액검사에서 우연히 고칼슘혈증이 발견되어 추가 검사를 통해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 혈중 칼슘 수치가 높은데도 부갑상선호르몬이 억제되지 않고 정상 또는 상승된 상태라면 일차성 부갑상선기능항진증을 의심한다. 초음파, CT, Sestamibi 스캔 등의 영상검사를 통해 병변의 위치를 확인하고, 수술적 절제를 시행한다. 병리조직학적 검사에서 종양이 주변 조직이나 혈관을 침범하거나 세포 분열이 활발하고 비정형적인 세포 양상이 관찰될 경우 부갑상선암으로 최종 진단된다. 이 암은 종양 자체보다는 고칼슘혈증으로 인한 대사 이상에서 비롯된 증상이 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초기에는 증상이 없지만, 병이 진행되면 구역, 구토, 변비, 다뇨, 탈수, 근력 약화, 혼동 등의 비특이적인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증상은 단순한 소화불량이나 피로감으로 오인되기 쉬워 진단이 지연되는 경우도 많다.
부갑상선암의 예후는 종양의 크기, 주변 조직 침습 여부, 전이 여부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에는 유전자 변이와 면역세포 반응 등 분자 수준의 생물학적 인자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CDC73 유전자 돌연변이는 부갑상선암의 발병 및 재발과 연관이 있다는 보고가 있으며, 면역세포 침윤 양상이 예후 예측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전자 지표들은 아직 임상 진단에 널리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치료는 외과적 절제가 유일하게 입증된 근본적인 치료법이다.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는 제한적인 효과만을 보이며, 생존율 개선에 뚜렷한 기여를 하지 못한다. 따라서 첫 수술에서 종양을 완전히 절제하는 것이 예후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최근에는 부갑상선암과 양성 종양 사이에 위치한 중간적 성격의 종양인 비정형부갑상선종양(atypical parathyroid tumor, APT)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종양은 전형적인 악성 종양의 명확한 특징은 없지만, 조직 내에서 두꺼운 섬유화 밴드, 높은 세포분열지수 등 선종과 암의 중간 형태에 해당하는 병리학적 특성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비정형부갑상선종양은 여전히 명확한 진단 기준과 치료 지침이 부족하기 때문에, 치료 방침이나 추적 관찰 계획을 수립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2022년 WHO 내분비 종양 분류체계에서는 비정형부갑상선종양이 확인될 경우 parafibromin 면역화학염색을 시행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parafibromin 염색 소실이 있는 경우에는 선종에 비해 종양 재발 가능성이 높으므로 CDC73 유전자 시퀀싱을 고려하도록 했다. 그러나 parafibromin 염색은 민감도에 변동이 크고 해석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일상 진료에서 위험도 평가 지표로 활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외에도 PGP9.5, Ki-67 등 다양한 염색 표지자들이 부갑상선암의 진단 보조 수단으로 연구되어 왔지만, 각각의 민감도와 특이도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단일 염색 마커보다는 복합적인 마커의 조합이 더 효과적일 수 있으며, 비정형부갑상선종양에서의 면역화학염색의 임상적 활용도는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이다. 최근에는 WT1 등 새로운 염색 마커에 대한 탐색도 이루어지고 있어 향후 연구 결과가 기대된다.
전사체 분석을 활용하여 부갑상선암의 유전자 발현 양상을 정밀하게 파악하고, 이를 양성 선종과 구분하려는 연구들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연구에서는 차등 유전자 발현 분석 및 클러스터링 기법을 통해, 부갑상선암과 선종 간에 분자 생물학적 수준에서 뚜렷한 발현 패턴 차이가 존재함을 보여줬다. 부갑상선암에서 특이적으로 과발현되거나 억제되는 유전자 집단이 확인됐으며, 이들 유전자는 세포 증식, 세포 외기질 재구성, 면역 반응 등 악성 종양의 생물학적 특성과 관련된 경로에 관여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러한 전사체 기반 분석은 단순히 부갑상선암과 선종을 구별하는데 그치지 않고, 향후 비정형부갑상선종양의 발생 기전을 이해하고 위험군을 세분화하는 데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즉, 이러한 분석을 통해 비정형부갑상선종양 내에서도 잠재적으로 악성화 위험이 높은 군을 조기에 식별할 수 있는 분자 마커를 도출하고, 향후 추적 관찰의 빈도나 수술 후 관리 전략을 결정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부갑상선암과 비정형부갑상선종양은 모두 매우 드문 종양이지만, 진단이 늦어지거나 추적관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매우 불량한 예후를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임상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젊은 연령, 남성, 큰 종양 크기, 조절되지 않는 고칼슘혈증 등이 동반된 경우에는 단순한 양성 선종이 아닌 악성 종양의 가능성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추후 분자 유전학적 연구 등을 통한 부갑상선 종양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정밀한 진단과 개인 맞춤형 치료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며, 이는 결국 환자의 삶의 질과 생존율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연세대 원주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전공의와 임상강사를 수련했다. 현재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에서 임상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골다공증, 부갑상선 질환 등 골대사 분야의 연구와 진료를 하고 있다. 대한내분비학회 수련위원, 대한골대사학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