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날 때 해열제 먹듯 약 쓰는 희귀근육병 '중증근무력증'의 구멍
세브란스병원 신하영 교수, '15% 환자' 기존 약제로 조절 안 돼 보체억제제·신생아Fc수용체억제제 등으로 치료환경 개선 기대
열이 날 때 해열제를 복용하듯이 병으로 인해 힘들 때마다 약을 먹어서 증상을 조절해야 하는 희귀질환이 있다. 바로 아세틸콜린수용체(AChR)·근육특이티로신인산화효소수용체(MuSK) 등과 같은 특정 단백질에 대한 '자가항체'가 생겨서 전신에 뻗어있는 '신경근육접합부'의 어디든 공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인체 모든 근육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는 희귀근육병이자 희귀자가면역질환인 '중증근무력증'이 그것이다.
전체 중증근무력증 환자의 약 80%는 AChR 항체가 확인되는데, 이런 AChR 항체 양성 중증근무력증은 실제 콜린에스터분해효소억제제를 써서 아세틸콜린을 분해하는 효소를 억제시킨다.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신하영 교수는 유튜브 채널 '나는 의사다'에서 "아세틸콜린을 분해하는 효소를 억제시켜 신경근육접합부에 아세틸콜린 양을 일시적으로 늘리고 아세틸콜린수용체에 더 많이 가서 붙게 해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개념의 치료"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하영 교수는 "콜린에스터분해효소억제제는 중증근무력증의 질병 경과를 바꾸지는 못한다. 질병 경과는 그대로 두고, 열이 날 때 해열제 먹으면 열 나는 원인은 그냥 있지만 열은 떨어지는 것처럼, 힘이 약할 때 그 약을 쓰면 그때 힘이 올라온다"며 "약을 복용하고 30분 정도 지나면 효과가 올라오기 시작하고 한 3~4시간 효과가 지속되다가 그 효과가 사라진다. 그래서 하루에 3~6번 약을 먹는다. 힘들 때마다 약을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중증근무력증을 모두 이처럼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콜린에스터분해효소억제제만으로 조절이 안 되면 스테로이드나 면역억제제 등을 더해 치료한다. 더구나 이런 치료를 해도 병을 조절하지 못하는 환자도 적지 않다. 신 교수는 "중증근무력증은 개인 차가 크다. 기존 치료법으로 조절이 안 되는 환자들이 15% 정도 있다"며 "이 병 때문에 일상생활도 안 되고, 직장생활도 안 되는 환자들을 '난치성 중증근무력증'이라고 구분한다"고 설명했다.
또 힘들 때마다 약을 먹어 중증근무력증을 조절하는 약 85%의 환자도 항상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하영 교수는 "85%의 중증근무력증 환자는 약을 먹고 조절하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렇게 잘 지내다가 감염이나 다치는 등의 어떤 특정 상황이 생기고 나서 훅 힘이 빠지는 경우도 올 수 있다. 보통 하루, 하루 일단위로 힘이 빠지는 식으로 나빠진다"며 또 "갑자기 호흡근이 마비되는 중증근무력증 위기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증근무력증의 경과가 나쁠 때, 병의 경과를 바꿀 수 있는 치료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 교수는 "먹는 약으로는 스테로이드가 가장 확실하고 가장 효과도 빠르다. 용량은 낮은 용량부터 시작할 수도 있고, 높일 수도 있고, 높은 용량에서 낮아질 수도 있다"며 "효과가 있는 용량이라고 하면 스테로이드를 썼을 때 2주 정도 지나면 좋아지는 게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스테로이드는 면역을 떨어뜨리는 효과와 염증을 줄이는 효과 2가지로 이 병의 경과를 바꾼다.
이외에 중증근무력증의 질병 경과를 바꿀 수 있는 신약들도 국내 도입돼 있다. 신하영 교수는 "중증근무력증 치료는 결국 염증과 항체를 떨어뜨리려는 것이다. 신경근육접합부에 항체가 있는데, 아세틸콜린수용체에 딱 붙으면 '보체'를 활성화시키고 염증을 활성화시켜서 주변에 염증이 일어나고 신경근육접합부의 구조가 깨진다. 항체가 일으키는 염증을 줄이면 기능을 회복시키고 구조 손상을 막을 수 있다"며 그 이유로 보체억제제가 개발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 교수는 "보체억제제는 중증근무력증 환자 중 기존 치료가 잘 안 되던 난치성 중증근무력증 환자들에서 상당히 좋은 효과가 밝혀졌다"고 덧붙여 말했다. 또 다른 난치성 중증근무력증에 효과를 입증한 신약은 신생아Fc수용체억제제다. 신 교수는 "엄마가 아기를 낳으면 엄마 항체가 아기한테 100일 동안은 있다는 말을 들어봤을 텐데, 태반에 엄마 쪽에 있는 Fc수용체에 항체가 붙어서 아기 쪽으로 넘어가 뿌려주는 것"이고 이것이 신생아Fc수용체라고 말했다.
이어 "신생아Fc수용체가 우리 몸의 혈관 내벽에 많이 분포하고, 그곳에서 피에서 버리고 싶은 쓰레기 단백질들을 먹어서 라이소좀이라는 쓰레기처리장으로 보내 분해시킨다. 그런데 신생아Fc수용체에 항체가 붙으면 쓰레기 처리장으로 안 가고 재활용이 돼 다시 나간다. 자가면역질환 같은 경우에는 항체를 부시고 싶으니까 재활용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래서 못 붙게 신생아Fc수용체억제제를 쓰는 것"이라고 신생아Fc수용체가 이 병에 쓰이는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 신생아Fc수용체억제제의 효과는 중증근무력증에 높은 것으로 입증돼 있다. 신하영 교수는 "신생아Fc수용체억제제를 일정 농도로 써봤더니 전체 항체의 4분의 3이 없어졌다"며 "아세틸콜린수용체 항체, 머스크 항체 같은 자가항체도 떨어지고 증상도 좋아지는 것이 밝혀져 중증근무력증에서 이용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신약들은 모두 국내에서 임상시험 목적으로만 쓰이고 아직 의료현장에서 처방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같은 신약이 국내 도입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보체억제제로 라불리주맙(제품명 울토미리스), 질루코플란(제품명 질브리스큐) 등이 국내 허가돼 있고, 신생아Fc수용체억제제로 로자놀릭시주맙(제품명 리스티고), 에프가티지모드(제품명 비브가트) 등이 도입돼 있지만 아직 약가 협상이 안 돼 쓸 수 없는 것이라고 신 교수는 말했다. 이같은 신약은 난치성 중증근무력증 환자 외에도 기존 치료에 부작용이 심한 환자의 삶의 질을 바꿀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신하영 교수는 "중증근무력증 환자도 보체억제제 등을 쓰면 (부작용 위험이 높은) 스테로이드 등의 용량을 줄일 수 있다"며 1만 명당 1~2명 정도의 유병률을 보이는 중증근무력증은 100년 전쯤에는 예후가 상당히 좋지 않아서 병명에 '중증'이라는 말이 붙었지만 현재는 다양한 치료법의 개발·도입으로 여타의 만성질환처럼 평생 치료·관리를 하며 살아갈 수 있는 희귀자가면역질환이 됐다며 희망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