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늘어나는 '유전성 혈액암'…어떤 때 유전성 혈액암 의심할 수 있나?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김시현 교수
유전성 유방암-난소암 증후군, 린치증후군, 가족성 선종성 용종증, 코우덴 증후군, 리프라우메니 증후군, 포이츠예거 증후군, 폰히펠린다우증후군 같은 유전성 고형암이 전체 암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최근 늘면서 '유전성 고형암'은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유전성 혈액암'에 대한 것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최근 유전성 혈액암도 늘고 있다는 의료현장의 목소리가 나와 관심이 집중된다.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김시현 교수는 '2025 서울대병원 온드림 희귀질환자와 가족을 위한 온라인 강좌'에서 "최근에 유전성 혈액암에 대한 이해와 함께 진단이 늘어나고 있다"며 "아직 유전성 고형암에 비해 유전성 혈액암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이제껏 일부 환자들한테서만 제한적으로 확인됐었는데, 최근 혈액암에서 적극적으로 암 유전자 패널검사를 하면서 혈액암과 관련 유전자 변이들이 많이 검출되고 있다"고 현실을 짚었다.
유전성 고형암과 관련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100% 모두에게 암이 생기는 것이 아니듯이 유전성 혈액암도 유전자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고 해서 모두에게 암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유전성 혈액암은 어떻게 발생하는 것일까? 김시현 교수는 "다양한 조혈 관련 세포들과 유전자들의 영향으로 암이 생기는 경우가 있고, 거기에 맞는 어떤 다양한 기전에 따라서 암이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먼저 유전성 혈액암의 전사인자(DNA에 결합해 mRNA를 전사하도록 조절하는 다수의 단백질)와 관련된 유전자 RUNX1, CEBPA, GATA2 등에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가 있고, DNA 수선, 유전체 안정성과 관련된 유전자 BRCA1, BRCA2, TP53 등에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도 있다. 김 교수는 "DNA 수선, 유전체 안정성과 관련된 유전자는 사실 고형암으로 많이 알려져 있긴 하지만 고형암을 잘 일으킬 뿐만 아니라 혈액암에도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전성 혈액암의 발병은 '텔로미어(Telomere)'와 연관돼 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의 끝 부분을 보호하는 구조물로, 염색체의 안전성을 담보한다. 김시현 교수는 "텔로미어라는 우리 유전체에서 염색체의 안정성을 담당하는 기관이 있는데, 그런 기관에 관련된 장애를 일으키는 DKC1, TERC, TERT, RTEL1 등 유전자 변이가 있었을 때 유전성 혈액암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알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항암·방사선 치료에 심한 독성 반응일 때도 '유전성 혈액암' 의심
그렇다면 어떤 때에 유전성 혈액암을 의심할 수 있을까? 유전성 고형암처럼 유전성 혈액암도 가족 내 여러 세대에 걸쳐서 여러 다수의 환자들이 비슷한 암이 발생했을 때에 의심해볼 수 있다. 백혈병이나 골수이형성증후군, 골수부전, 원인 불명의 혈구감소증 같은 병력이 환자만이 아니라 가족 여러 명에게 나타나는 경우에도 유전성 혈액암을 의심하고, 유전자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권고된다.
또 특정 혈액암의 일반적인 발병 연령 보다 훨씬 이를 때 발생한 혈액암에 대해서도 유전성 혈액암을 의심할 수 있다. 이외에도 김 교수는 "어떤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를 했을 때 비정상적으로 심한 독성 반응이나 과민성 반응을 보이는 경우에도 이런 것들이 혈액암과 연관될 수 있어서 유전성 혈액암을 의심해 봐야 되는 소견"이라며 이같은 특징을 보이는 환자들에 한해 유전성 혈액암을 의심하고 유전자검사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유전성 혈액암 의심될 때 유전자검사 전 '유전상담' 필요해
유전성 혈액암이 의심돼 유전자검사를 하기 전 가장 중요한 과정이 있다. 바로 '유전상담'이다. 김시현 교수는 "유전성 혈액암이 의심되는 환자나 가족을 만나게 되면 결국은 유전자검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유전자검사를 하기 전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적절한 유전상담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전상담은 혈액암이든, 고형암이든 상관 없이 유전성 암 증후군 진단을 위해 유전자검사 전후로 진행되는데, 이같이 하는 이유가 있다.
김 교수는 "유전자 상담은 가족 병력, 개인 병력 등을 통해 위험도를 조사하고, 그러면 이 환자나 가족이 어떤 유전자검사를 해야 되는지, 또 검사 결과가 나왔을 때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지, 이것이 환자나 가족의 자녀한테 어떻게 유전될 수 있는지 등을 전반적으로 상담하는 것"이라며 유전자검사 전 검사의 방향을 정하고, 이후 민감한 검사 결과에 대한 의미를 이해시켜줄 수 있는 유전상담이 유전자검사와 함께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전성 혈액암이 확인되면 가족검사도 중요하다. 김시현 교수는 "가족도 유전상담과 생식세포검사, 유전자검사를 진행하게 되고 만약에 유전성 혈액암 관련 유전자 변이가 확인되면 주기적으로 적혈구, 혈소판, 백혈구 수치를 확인할 수 있는 말초혈액검사를 통해 우리 몸의 조혈모세포를 통해 나오는 여러 가지 혈구 세포들이 적절하게 잘 나오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주기적으로 추적관찰하는 동안에 만약에 혈구감소증이 발생하면 그때는 골수검사를 빨리 진행해 골수 안에 어떤 병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고, 실제 어떤 병이 있을 때는 빨리 치료하고 필요할 경우에는 조기 조혈모세포이식평가까지 진행해서 조기에 이식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며 조혈모세포이식을 할 때도 똑같은 병적 변이를 가진 가족 구성원에게 골수를 받는 것은 제외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치료 단계에서 유전성 혈액암의 원인 유전자 변이를 알고 있는 게 조혈모세포이식을 할 때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김시현 교수는 "일부 어떤 생식세포 유전자 변이에 대해서는 환자의 치료 강도를 조절하거나 아니면 치료 약제를 조절해야 될 필요도 있다"며 "DNA 수선 경로와 관련된 유전자들한테 변이가 있었을 때는 DNA 손상을 유발하는 항암화학요법은 좀 피하는 것이 권장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