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동맥 고혈압, 일반 혈압계로 측정 시 정상
진단 뒤 '5년 생존율' 70%에도 아직 못 미쳐

고혈압은 고혈압인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혈압은 높지 않으면서 암보다 낮은 5년 생존율을 보이는 고혈압이 있다. 

바로 급사 위험이 상당히 높은 희귀난치질환 '폐동맥 고혈압'이 그것이다. 

폐동맥 고혈압은 심장에서 온몸으로 뿜어져 나올 때의 혈관 압력(혈압)이 높은 것이 아니다. 심장에서 폐로 들어가 산소 샤워를 할 때의 혈관 압력이 높은 것이다. 

폐동맥 고혈압의 5년 생존율은 국내 전체 암 생존율(2015~2019년 기준 70.7%) 보다 낮다. 과거 46%에 불과했으나 최근 거의 70% 정도까지 끌어올렸는데도 여전히 국내 암 생존율에도 미치지 못하며, 미국·일본의 폐동맥 고혈압 치료 성적보다도 한참 낮다. 

또 국내 폐동맥 고혈압 환자는 4,500~6,000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지만, 실제 폐동맥 고혈압으로 치료받는 사람은 1,500~2,000명에 불과하다. 국내 폐동맥 고혈압 치료 성적이 낮고, 치료 받는 사람이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을 지난 9일 인하대병원 희귀질환 경기서북부권 거점센터가 연  '유전성 심질환 및 희귀질환의 이해' 주제 제6회 희귀질환 경기서북부권 거점센터 심포지엄에서 이 병원 심장내과 신성희 교수의 강연에서 찾아봤다.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국내 병합치료율, 미국·일본 보다 낮았던 탓…올해 2월 기준 바뀌어

폐동맥 고혈압의 치료 성적이 낮은 것은 두 가지 이상의 약제를 쓰는 병합치료 비율이 낮았기 때문이다. 

신성희 교수는 "한국과 미국, 일본의 폐동맥 고혈압 병합치료 비율이 각각 18.4%(2008~2016년), 52.4%(2006~2014년), 79.2%(1992~2012년)였을 때 폐동맥 고혈압 환자의 3년 생존율은 각각 54%(2008~2016년), 68%(2006~2014년), 92%(1992~2012년)였다"며 "폐동맥 고혈압 환자의 생존율은 병합치료 비율과 비례했다"고 설명했다. 

폐동맥 고혈압은 세계보건기구(WHO) 기능분류 기준으로 크게 4 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폐동맥 고혈압이 있으나 신체적 활동에는 제한이 없는 상태다. 2단계는 폐동맥 고혈압으로 인해 신체적 활동에 약간 제한이 있으나 휴식을 취하면 편안해지는 상태다. 3단계는 폐동맥 고혈압으로 인해 신체적 활동에 많은 제한이 있으나 휴식을 취하면 편안한 상태다. 4단계는 폐동맥 고혈압에 시달리는 단계로 휴식 시에도 호흡곤란과 피로가 나타날 수 있는 상태다. 

올해 2월까지 국내에서는 가장 심각한 4단계에서만 병용요법이 급여가 됐다. 하지만 폐동맥 고혈압 전문 의료진의 목소리와 바뀐 국내 폐동맥 고혈압 진료지침을 통해 올해 2월 병용요법 급여 기준이 3단계까지 내려왔다. 

폐동맥 고혈압 치료 성적이 좋은 일본에서는 초기부터 세 가지 약제의 병용치료가 가능하다. 올해 8월 유럽심장학회에서 발표된 유럽 폐동맥 고혈압 진료지침에서는 저·중위험군 환자에게도 병합요법을 시작할 수 있게 했다. 국내 폐동맥 고혈압 치료 여건이 올해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글로벌 수준에는 미치지 않는 셈이다.   

숨 차고 가슴 답답한데도 폐동맥 고혈압 진단까지 1년 반 소요 

폐동맥 고혈압은 치료제가 나와 있다. 때문에 빨리 진단해 치료제를 쓰면 치료 성적을 보다 올릴 수 있다. 대한폐고혈압학회에 따르면, 프랑스·미국·우리나라에서 진행된 연구에서 조기 진단 환자는 생존율이 약 3배 증가한다는 보고가 나온 바 있다. 폐동맥 고혈압을 조기 발견해 전문적 치료를 하면 10년 이상 생존 가능하다. 

신 교수는 "초기 치료가 늦어지면 아무래도 생존율이나 예후에도 좋지 않기 때문에 폐동맥 고혈압은 빨리 진단을 해서 빨리 치료를 시작하고, 주기적 모니터링을 통해 빠르게 적극적인 치료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폐동맥 고혈압은 적극적인 초기 병용요법도 다른 나라에 비해 늦지만, 진단되기까지도 오래 걸린다.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의 환자가 와도 일선 의료진조차 희귀난치질환인 폐동맥 고혈압을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실제 국내 폐동맥 고혈압 진단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1년 반 정도다.  

신성희 교수는 "폐동맥 고혈압 환자들은 '숨이 좀 찬데요' '좀 피곤해요' '자꾸 잠이 오는데요' '가슴도 답답하고 좀 붓는 것 같은데요' 같은 증상을 호소한다"며 "증상이 모호하고 특징적이지 않기 때문에 조기 진단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때문에 폐동맥 고혈압 위험 인자인 결합조직질환·루푸스 같은 질환이 있는지, HIV 감염이 있었는지, 선천성 심장병 병력이 있는지, 폐동맥 고혈압을 유도할 약물에 노출된 적은 없는지 등을 확인하고, 이런 환자들에게 숨이 찬 증상이 있다면 반드시 폐동맥 고혈압을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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