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션트 스토리] 한국강직척추염협회 김용희 회장 인터뷰
강직척추염은 우여곡절이 많은 병이다. 자가면역질환 중 하나인 강직척추염은 우리 몸에서 외부 유해물질에 대한 보호 반응을 가진 면역세포가 주로 척추관절을 공격하면서 만성 염증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척추관절을 비롯해 우리 몸의 다른 관절들이 굳어질 수 있는 병으로 지난 2003년 예후를 바꿀 수 있는 '생물학적제제'의 국내 도입 전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먼저 생물학적제제 도입 이후 강직척추염에 대해 널리 알려진 까닭에 의료진과 환자들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허리디스크, 류마티스관절염 등 다른 질환으로 진단됐던 강직척추염 환자들이 제대로 된 자신의 병명을 많이 찾게 됐고, 그로 인해 국내 유병인구 2만명 이하의 희귀질환으로 알려진 강직척추염이 '희귀난치질환'이 아닌 '난치질환'인 것으로 확인됐다.
강직척추염은 희귀질환이 아니지만 아직도 진단이 빨리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자가면역 반응으로 염증이 만성화돼 척추관절을 비롯한 다른 관절에 골화가 진행된 이후 치료를 시작하면 이미 골화된 부분은 해결하기 어려워 강직척추염은 조기 진단과 치료가 매우 중요한데, 여전히 허리디스크 등 다른 질환으로 오인돼 진단이 많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강직척추염협회 김용희 회장(52세)도 고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강직척추염 증상이 생겼지만 2008년인 30대 중반에야 류마티스내과에서 이 병을 진단받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 정형외과병원에서 류마티스관절염으로 진단받아 치료를 이어오다 작은 교통사고 탓에 목뼈인 경추가 굳어지는 강직척추염 악화가 시작된 것이 그 계기였다.
강직척추염이 악화돼 김용희 회장의 목이 굳어버리자 정형외과병원 의료진은 그를 류마티스내과가 있는 병원으로 보냈고, 그곳에서 강직척추염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그 사이 엉치뼈와 골반뼈를 연결하는 천장관절에도 문제가 시작됐다. 그러나 강직척추염 진단 뒤에도 3개월 넘게 소염진통제를 써야 했고, 그 사이 병은 더욱 악화됐다.
김 회장에게 엄청난 고통과 함께 목과 엉치 부위의 관절 가동 범위를 크게 줄인 강직척추염의 악화는 생물학적제제인 휴미라(성분명 아달리무맙)를 쓰면서 진화됐다. 휴미라로 치료하면서 강직척추염이 경추와 천장관절을 넘어 다른 곳으로 뻗치지 않게 됐고, 이후 현재까지 휴미라로 치료하면서 강직척추염이 악화되는 일은 더는 생기지 않았다.
강직척추염에 생물학적제제가 도입되면서 사실 이 병의 예후는 극명하게 바뀌었다. 조기 진단돼 적기에 생물학적제제를 쓴 환우는 외관에서 병의 기색을 찾는 게 이젠 어려워졌다. 반면 생물학적제제 도입 이전에 병이 진행된 대부분의 환우는 몸이 굳어 집 밖을 나갈 수 없는 장애를 갖고 있고, 생물학적제제 도입 후에도 다른 방법에 매달린 환우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김용희 회장은 "강직척추염은 이제 조기에 진단받고 치료하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병"이라며 "생물학적제제 도입 전후로 환우들의 삶이 극명하게 갈린 것이 이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강직척추염을 앓는 환우가 한 명이라도 더 빨리 진단되고, 치료를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그간 강직척추염협회는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강직척추염협회 주관으로 매년 강직척추염 전문의료진을 초빙해 강연을 듣고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나 협회 산하 지역모임을 활성화해 환우 간 서로의 다양한 상황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그 하나다. 또 지난 2023년 강직척추염협회장으로 취임한 김 회장은 협회 홈페이지 외에 유튜브, 네이버 밴드, 다양한 SNS 채널을 확대해 왔는데, 그 이유가 있다.
김용희 회장은 "지금도 강직척추염 환우들이 진단받는데 최소 2~3년이 걸린다"며 "한 사람이라도 더 강직척추염에 대해 알아야 환우들이 조금 더 빨리 진단될 수 있다는 생각에 회장으로 취임한 뒤 다양한 소통 채널을 만드는데 주력해 왔고, 이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강직척추염에 대해 알리는 활동을 지금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강직척추염 환우가 우리사회에 방치되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방안도 강직척추염협회는 적극 강구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강직척추염협회가 만들어진 계기이기도 했다. 2000년대 초중반, 20세 전후 강직척추염 환우가 군복무 문제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또 생물학적제제 도입 뒤 치료환경 변화에 힘을 싣기 위해 환우회가 필요해지며 설립된 까닭이다.
현재 강직척추염협회 고문을 맡고 있는 김성수 초대 회장이 개인 홈페이지에 투병이야기를 쓰며 강직척추염 환우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환우들이 처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김성수 초대 회장이 나서 국회, 국방부, 보건복지부 등의 관계자를 만나고 개선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환우회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해 만들어진 것이 현재의 강직척추염협회다.
지난 2005년 여러 차례의 환우 모임을 거쳐 2006년 1월 공식 설립된 강직척추염협회는 2006년 중증 강직척추염 환우들이 전문의료진의 판단 하에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는 문을 열어놓는데 산파 역할을 했고, 강직척추염에 도입된 최초의 생물학적제제인 엔브렐(성분명 에타너셉트)이 2005년 5월부터 강직척추염 환자에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또 2005년 정부가 추진한 저소득층 희귀난치성질환 의료비 지원사업의 대상질환에 강직척추염이 들어간 것도 선제적으로 강직척추염협회가 복지부 질병정책과를 방문해 요구하면서 이뤄졌다. 이를 계기로 희귀난치성질환에 대한 정부의 산정특례정책 시행 후 강직척추염이 자연스럽게 수혜를 받을 수 있게 되면서 환우들은 더 나은 환경에서 치료받을 수 있게 됐다.
김용희 회장은 이같은 치료환경을 더 많은 환우가 누릴 수 있게 사각지대에 방치된 환우를 발굴하고, 이 환우가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통해 치료를 이어갈 수 있는 체계까지 촘촘히 마련할 계획이다. 강직척추염은 치료를 받으면 더는 장애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질환으로 예후가 바뀐 까닭에 이같은 활동을 통해 한 명의 환우라도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게 하겠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강직척추염은 치료하면 일상회복이 가능하다는 '인식 전환'이 매우 중요하다. 아직 집 안에 방치된 강직척추염 환우들이 있다는 것을 최근 알게 됐는데, 이런 환우들이 병 이전의 삶을 되찾을 수 있게 협회 차원에서 나서볼 생각"이라며 "협회 사회복지 자문위원과 임원이 나서서 각 지자체에 도움을 구해 환우가 치료를 이어갈 방법을 찾아보려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선택 아닌 필수 영역의 약인데 '비급여'…치료 포기로 내몰리는 환우들
- '피와 진물 그리고 눈물로 범벅' 된 결절성 양진 환자들의 삶
- 치료 타이밍 놓치는 한국…미국·유럽선 '선투약·후심사'로 골든타임 지켜
- "약이 있는데 약을 쓸 수가 없다"…시신경척수염 환자 가족의 절규
- 희귀간질환 탓 극심한 가려움에 잠 못 자는 아기들…"신약 신속 급여를"
- "폰히펠린다우증후군 유전자는 바꿀 수 없지만 약값은 바꿀 수 있다"
- 중증근무력증 환자 15%, 기존 치료에도 일상 불가…신약 쓸 수 있어야
- 부신백질이영양증 진행 늦추는 ‘로렌조오일’에 정부 지원 필요하다
- 들을 수 없어도 울림은 크다…K팝의 새로운 파도 '빅오션'
- 파브리병 조기 치료, 보험 급여 기준 탓 제한…"조기 치료 가능해져야"
- 국내 희귀질환 치료환경 "감사할 것 많아"…'국가 지원 방식' 변화 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