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션트 스토리] 알라질증후군환우모임 김나영 대표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담즙이 지나가는 길 '담도'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아이의 조그만 간이 망가지는 희귀간질환이 있다. JAG1 유전자 변이가 약 90%, NCTCH2 유전자 변이가 약 5%의 유발 원인으로 알려진 '알라질증후군(Alagille Syndrome)'이 그것인데, 사실 이 병은 간에만 문제를 초래하는 게 아니다. 이들 유전자 변이가 간을 비롯해 심장, 척추, 신장, 눈 등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증후군'으로 묶인 유전성희귀질환이 알라질증후군인 것이다.
알라질증후군에서 중대한 질병 상황은 심장과 간 문제다. 특히 간에는 담도저형성증으로 담도가 간 내 충분히 깔리지 않게 되는데, 이로 인해 음식물의 소화·흡수에 간여하는 '담즙'이 장간순환을 잘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담즙은 간에서 만들어져 '담도'를 통해 장으로 이동하고 재흡수 과정을 거쳐 다시 간으로 돌아오는데, 담도가 제대로 안 깔려있어 담즙이 장으로 못 내려가고 간 안에 정체돼 담즙이 간을 망가뜨리면서 평균 2.8세 아기들이 궁여지책으로 간이식을 한다.
물론 다른 유전성희귀질환처럼 알라질증후군도 환자마다 질병스펙트럼이 아주 넓다. 3만~5만 명 중 1명 꼴의 발생 빈도를 보이는 알라질증후군 환자 중에는 담도가 거의 만들어지지 않아 담즙이 간에 심각하게 정체돼 간경화, 간암으로 진행되거나 혈액에까지 과도하게 담즙이 스며들어 전신에 극심한 가려움을 초래해 심각한 수면장애, 성장부전 등을 초래해 아주 어릴 때 간이식수술을 해야 하는 아이는 있지만, 많지 않다. 물론 그런 아이도 현실에 있는 게 사실이다.
그 아이 중 한 명이 알라질증후군환우모임 김나영 대표(41세)의 생후 16개월된 아들이다. 태어난 지 겨우 53일, 갑자기 A군에게 고열이 났고 패혈증 진단 뒤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해 항생제를 썼는데, 바로 황달이 올라오고 간수치가 상승한 것이 A군의 알라질증후군 시발이었다. 그날 이후 김 대표는 예상치 못한 '가혹한 현실'에 들어섰다. 담즙이 쌓여 A군의 간이 망가지고 황달이 지속되면서 아이가 온몸을 가려워 하며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탓이다.
가려움증은 사실 개인차가 크지만, 알라질증후군을 앓는 아이 중 일부는 극심한 가려움증으로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고, 울다 지쳐 고작 1~2시간짜리 쪽잠 밖에 자지 못하면서 심각한 성장부전을 겪는다. 안타깝게도 A군도 극심한 가려움증으로 심각한 성장부전 상태에 놓여있다. 3.4kg으로 태어난 A군은 알라질증후군 진단 전 체중이 50퍼센타일(100명 중 50번째의 키)이 넘었지만, 이후 쭉 떨어지면서 현재는 10퍼센타일(100명 중 하위 10번째의 키) 아래에 있다.
사실 알라질증후군 환아가 몸무게 성장에서 3퍼센타일 아래로 떨어지면 간이식수술을 해야 할만큼 심각한 상황인데, 간이식수술이 거론된 적도 있을만큼 A군은 극심한 식이장애, 수면장애 상태로 심각한 성장부전을 겪고 있다. 김나영 대표는 "끝없는 가려움의 고통 때문에 분유도 한 번에 10mL를 겨우 먹는다. 하루에 다 해서 200mL도 못 먹기도 한다. 또 잠은 낮이든, 밤이든 길어야 1시간 30분을 넘기지 못하고, 극심한 가려움 때문에 자다 울며 깬다"고 말했다.
도대체 얼마나 가려우면 아이가 먹지도, 자지도 못할까? 사실 대부분의 아기들은 모기에만 물려도 잠을 못 이루고 울며 떼를 쓰곤 하는데, A군은 모기가 물린 곳은 긁지조차 않는다고 한다. 김 대표도 모기가 물린 곳이 가려워 고통스러운데, 아이는 모기 물린 곳이 뚜렷히 보이는데도 그곳은 차치하고 알라질증후군으로 인해 유발된 가려운 귀, 등, 무릎 등을 손싸개, 바디슈트 등의 단단한 방해막을 어떻게든 뚫고 피가 날 때까지 긁는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 2월부터 A군은 더 극심한 가려움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담즙 구성요소 중 하나인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가면서 지방종(황색종)이 생기는 알라질증후군 환아가 4명 중 1명 꼴로 있는데, A군의 온몸에 이때를 기점으로 지방종이 생겼고 지방종 부위를 더욱 자주, 더욱 심하게 긁어 심각한 피부 손상이 되풀이 되고 있다고 김나영 대표는 말한다.
이런 까닭에 김 대표는 희귀질환을 앓는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더는 가만히 있기 어려워 지난 6월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글을 올렸다. 극심한 가려움에 고통받는 아이를 위해 국내 허가된 알라질증후군 신약 '리브말리액(성분명 마라릭시뱃)'의 신속한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요청한 것이다.
간 내 담즙 정체를 해소할 수 있는 기전의 '회장담즙산수용체억제제' 리브말리액은 지난 2023년 국내 허가됐지만, 아직까지 급여가 되지 않아 의료현장에서 처방이 안 된다. 그러나 김나영 대표의 청원은 2,743명의 동의에 그쳐 결국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로 넘어가지 못하고 폐기됐다. 국회 소관 상임위로 청원이 넘어가기 위해서는 5만명의 동의가 필요하다.
김 대표는 여기서 그칠 수 없어 지난 7월 11일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과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가 공동 주최한 '소아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강화를 위한 국회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알라질증후군 환아와 가족의 고통을 짚으며 리브말리액의 빠른 급여를 촉구했다. 이 토론회는 희귀간질환인 알라질증후군과 진행성가족성간내답즙정체증(Progressive Familial Intrahepatic Cholestasis, PFIC)의 치료 현실을 짚고,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후 이달 7일 리브말리액이 드디어 급여 첫 관문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문턱을 넘었다. 이를 계기로 이달 22일 김나영 대표는 알라질증후군 환우 가족이 모인 카카오톡방을 매개로 알라질증후군환우모임을 만들었다. 김 대표는 "리브말리액이 첫 급여 관문을 통과한 뒤 환아들이 하루라도 더 빨리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알라질증후군환우모임을 만들었다"며 "리브말리액이 신속히 아픈 환아들에게 쓰일 수 있도록 활동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먼저 이달 오픈한 네이버밴드 '알라질증후군환우모임'을 통해 환우·가족들의 의견을 모으고, 앞으로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에 가입해 우리사회에 리브말리액의 급여 시급성에 대해 더 큰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다. 김나영 대표가 국회 국민동의 청원을 하고 정책토론회에 청중으로 참여해 목소리를 내고 환우회를 설립하며 적극 나서는 이유가 있다. 김 대표는 "현재 알라질증후군 환아 중에 리브말리액이 가장 절실한 아이가 우리 아이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실 A군처럼 심각한 상황에 있는 국내 몇 안 되는 알라질증후군 환아는 리브말리액의 급여, 또 다른 회장담즙산수용체억제제 '빌베이(성분명 오데빅시바트)'의 국내 허가·급여를 기다리다 못해 결국 간이식수술을 받았다. 물론 간이식수술 뒤 극심한 간지러움의 고통에서 벗어난 환아들은 이전 보다 잘 먹고, 잘 잘고, 잘 웃는 삶을 산다. 그러나 알라질증후군 환아도, 가족도, 이 병을 치료하는 전문의료진도 간이식수술이 이 병의 우선적 치료법이 돼선 안 된다고 말한다.
간이식 뒤 필연적으로 면역억제제를 평생 쓰기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지는 새 질병으로 들어서는 것인 까닭이다. 더구나 알라질증후군은 간이식이 필요한 다른 희귀간질환에 비해 간이식 성공률도 낮다. 담도폐쇄증 같은 다른 희귀간질환과 달리 알라질증후군은 심장 등 다른 장기에도 문제가 있는 탓인데, 한 연구에선 간이식 1년 생존율이 담도폐쇄증 95%, 알라질증후군 86%였다. 더구나 일부 환자는 심장 문제로 간이식이 필요한데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사용 가능한 모든 치료법을 써도 효과가 없을 때, 알라질증후군에서 최후의 치료법으로 간이식수술을 하는 것이 맞다는 게 글로벌 상식이다. 김나영 대표는 "알라질증후군은 치료제가 없는 병이 아니다. 치료제가 있는데도 간이식수술을 해야 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다"며 "우리 아이처럼 알라질증후군으로 심한 간질환을 겪는 아이들이 신약을 쓸 수 있게 돼 지금 보다 편히 자고, 편히 먹을 수 있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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