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션트 스토리] 한국파킨슨희망연대 김금윤 대표 인터뷰
파킨슨병 '진단방랑' 평균 2~3년…30~40대 젊은 환자도 有
국내 미도입 약제 많아…미도파 등 다양한 치료 옵션 필요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파킨슨병'은 우리사회의 사각지대에 선 질환 중 하나다. 파킨슨병에 대해 그나마 알려진 지식은 '느리게 움직인다'는 증상적 특징인 서동증이고, 파킨슨병 환자 '일부'에게 발생하는 파킨슨병성치매로 인해 '파킨슨병=치매'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파킨슨병은 대체 어떤 병일까?
지난 2005년 파킨슨병이 발병한 한국파킨슨희망연대 김금윤 대표(70세)는 "파킨슨병은 뇌의 문제로 도파민이 안 나와 근육을 못 쓰는 뇌병변"이라며 "심할 때는 갑자기 몸이 오프되는 것처럼 전혀 움직일 수 없어 버스 정류장에서 못 내리는데, 말도 안 나와 옆 사람에게 도움도 요청하지 못해 종점까지 갈 수밖에 없게 내모는 병"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까닭에 많은 파킨슨병 환자들이 세상을 등지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기도 하고, 거꾸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파킨슨병으로 진단된 뒤 직장을 잃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뇌의 도파민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인체 운동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신경계 세포에 오작동이 초래되는 '파킨슨병' 환우들이 흔히 우울해하는 이유이다.
또한 파킨슨병 환우들은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김금윤 대표는 "지난해 내가 아는 파킨슨병을 앓는 사람 중 4명이 자살을 했다"며 "인지기능은 정상인데 몸이 생각한대로 안 움직이니 '살아서 뭐하나'라는 좌절감을 느끼고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고 현실을 짚었다.
또 파킨슨병은 병이 진행될수록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지고 언어장애가 동반되는 까닭에 파킨슨병성치매가 아닌데도 치매로 오해받기도 한다. 김 대표는 "파킨슨병성치매로 인한 오해와, 병 때문에 걸음걸이가 이상하고 언어장애가 와 치매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파킨슨병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파킨슨병의 인식 개선이 요구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서동증으로 흔히 알려진 파킨슨병에서 수많은 환자들이 '진단방랑'을 겪는 까닭이다. 실제 김금윤 대표도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5년만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그녀에게 나타난 파킨슨병 초기 증상은 서동증이 아니었다.
김 대표는 "발이 쫙 펴지지 않아 휘적휘적 걷고 목이 뻣뻣해지고 등이 굳어 심할 때는 옆을 못 볼 정도였고 통증도 심했는데 유명하다는 정형외과 의사나 신경과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러 수원, 인천 가리지 않고 다 다녔는데도 제대로 된 진단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5년간 병원을 전전한 끝에 나온 진단은 목디스크와 허리디스크였다.
그러나 목디스크, 허리디스크로 그녀에게 나타난 증상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었기에 그녀는 '숨어있는 병'이 있다고 확신했고, 그 병의 이름을 알 수 없어 속이 터질 듯 답답했다. 이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그녀는 정형외과와 신경과를 같이 보는 동네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의사에게 "하라는 모든 것을 할테니, 내 병을 찾아달라"고 청했다.
이후 3개월 간 그녀는 의사가 제시한 온갖 검사를 다 했다. 하지만 결과는 허무했다. 의사는 "이상한 건 없다. 오랜된 목디스크와 허리디스크를 하루아침에 고칠 생각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 말에 결국 그녀는 의사 앞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의사는 한참 눈을 감고 있다가 눈을 뜨곤 그녀에게 걸어볼 것과 손을 내밀어볼 것을 요구했다.
그녀는 의사 말대로 했다. 휘적이는 걸음에 손의 미세한 떨림, 온갖 검사 결과와 가장 힘든 증상이 몸이 안 움직이는 것과 통증이라고 말한 것을 조합한 의사는 그제야 '파킨슨병' 가능성을 내놨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의사가 소개한 서울아산병원에 가서야 그녀는 '파킨슨병' 확진을 받게 됐고, 약을 먹은 뒤 증상이 좋아지는 경험도 했다.
김 대표는 "지금도 파킨슨병 진단을 받기까지 평균 2~3년은 걸린다"고 현실을 짚었다. 파킨슨병에 대한 또 다른 오해도 있다. 바로 파킨슨병이 노인에게 걸리는 병이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김금윤 대표는 "파킨슨병을 노인성질환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30~40대 파킨슨병 환자들도 많다"고 짚었다.
이런 까닭에 그녀는 '파킨슨병 바로 알기'가 필요하고, 파킨슨병 진단·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세상과의 '연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난 2021년 대한파킨슨병협회 6대 회장 임기를 마친 김금윤 대표가 지난해 4월 한국파킨슨시낭송예술협회를 창립한 뒤, 5개월만에 한국파킨슨희망연대로 이름을 바꾼데는 이유가 있다.
처음 시낭송예술협회를 만들었을 때 그녀는 '우울감'을 달고 사는 파킨슨병 환우의 메마른 가슴을 시가 촉촉히 적셔줄 것이라고 여겼고, 그 반응은 예상대로 였다. 김 대표는 "시낭송회는 굉장히 반응이 좋았다. 지금도 매주 수요일 시낭송회를 열고 있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파킨슨병 환우들은 유튜브로 실시간 참여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금윤 대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파킨슨병 환자들이 집 안에서 혼자 웅크려 있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파란불이 점멸하기 전 서동증으로 신호등을 다 건너지 못한 파킨슨병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회를, 파킨슨병 환자 한 명이라도 증상 조절을 잘 할 수 있는 치료환경을, 파킨슨병 때문에 직장을 잃는 일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했다. 모두 세상 밖으로 파킨슨병을 알리지 않는 한 불가한 것이기에 올해 2월 파킨슨희망연대는 전국 6곳에서 파킨슨병을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파킨슨병 연관 키워드'와 '파킨슨병 환자들에게 절실한 국내 미도입 약제'가 쓰여진 조끼를 파킨슨희망연대 회원들이 입고, 국민들에게 파킨슨병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리는 '파킨슨병 바로 알기' 캠페인을 진행한 것이다. 이번 캠페인 조끼에 마도파, 라이타리, 드비, 인브리자, 누리안즈, 킨모비, 고코브리, 오스몰렉스 이알, 라루로피 테이프 같은 약제 이름을 넣은 이유가 있다.
김금윤 대표는 "이런 약들이 국내 들어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파킨슨병 환자들이 많은데, 국내 도입이 안 되고 있다"며 "파킨슨병 치료 옵션이 다양해지면 지금 약으로 조절이 안 되는 환자들에게 대안이 생기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외국에서 쓰이는 약들은 국내에서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지난 2022년 국내에서 철수한 한국로슈의 '미도파'가 다시 도입될 수 있게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도 했다. 김 대표는 "미도파는 복용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는데, 국내 제네릭 약제인 명도파가 도입되면서 철수했다. 명도파가 안 맞는 파킨슨병 환자가 있는데, 이런 환자들이 미도파를 다시 복용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파킨슨희망연대는 파킨슨병 바로 알기 캠페인, 시낭송프로그램 외에 환우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활동도 펼치고 있다. 올해 3월 21~23일 '함께하며 세상 속으로'라는 부제로 연 '파킨슨 희망걷기' 도 그 중 하나다. 지난해 11월에 이어 올해 2번째 기획된 걷기 행사는 환우들이 자신을 사회에 드러내고 파킨슨병에 대한 인식을 스스로 바꿔 나가는 기회의 창으로 기획한 행사다.
또 파킨슨희망연대는 파킨슨병 환우가 국립정신건강센터 등을 통해 정식으로 상담사 자격을 획득하고, 이를 통해 같은 파킨슨병 환우에게 상담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김금윤 대표는 "파킨슨병 상담사가 배출되면 환우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상담사인 파킨슨병 환우나 상담을 받는 파킨슨병 환우 모두에게 새로운 세상의 통로가 되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파킨슨희망연대는 파킨슨병 환우와 세상의 연결을 위해 올해 또 다른 한 걸음을 내딛었다. 바로 한국환자단체연합회에 가입한 것이다. 환자단체연합회는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암시민연대,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한국건선협회,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한국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 한국PROS환자단체가 참여하는 환자단체연대체다.
김 대표는 "우리 단체 혼자만으로는 변화를 이루기 어렵다고 본다"며 "고립된 파킨슨병 환우들과 함께 세상 속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른 환우회와 연대하고, 의학회와도 소통하면서 파킨슨병을 앓는 환우들이 세상 속에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려 한다. 여러 사람, 여러 단체와의 '연결'로 파킨슨병 환우들의 삶이 바뀌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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