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션트 스토리]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환우회 유복순 회장
병명조차 길고 어려운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atypical Hemolytic Uremic Syndrome, aHUS)'은 국내 환자가 200명 이하로 추정되는 극희귀난치질환으로 우리사회의 관심에서 소외돼 있다.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은 고가 신약으로 통하는 솔리리스(성분명 에쿨리주맙)와 울토미리스(성분명 라불리주맙)가 국내 도입돼 있고 이들 약제에 건강보험 급여까지 적용되는데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사실 의료현장에서 제때 신약을 쓸 수 있는 환자는 많지 않다.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은 면역체계인 '보체'를 조절하는 보체계 조절 인자가 지속적으로 활성화되면서 전신에 극심한 혈전성미세혈관병증을 유발할 수 있는 희귀난치질환으로,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46% 환자가 한 달 내 말기신장병으로 악화하거나 사망하는 경과를 보인다. 그런데 이 병은 진단조차 쉽지 않다. 유사한 증상을 나타내는 혈전성혈소판감소성자반증, 용혈성요독증후군, 루프스, 악성감염, 악성고혈압, 혈관염 등 감별해야 할 질환만 해도 상당하다.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으로 빠르게 진단 됐어도 신약을 제때 쓰기도 쉽지 않다. 신약 급여 절차로 사전심사제도를 통과해야 하는 까닭이다. 사실 이 병의 치료 골든타임은 '48시간 이내'이지만, 사전심사제도의 '심사'에만 평균 14일이 소요되는 상황이다. 더구나 실제 심사를 통과하는 환자 비율도 낮다. 지난해 8월 기준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에서 솔리리스 승인율은 18%에 그쳤는데, 이는 같은 제도 아래 놓인 다른 치료제의 평균 승인율 60%에 비하면 매우 낮다.
이런 까닭에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을 진단받고 제때 신약을 쓰는 환자는 행운아로 통한다. 올해 7월 8일 출범한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환우회(aHUS환우회) 유복순 회장(61세)도 2020년 4월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 진단 뒤 너무 늦지 않게 신약을 쓸 수 있었고, 약을 끊은 뒤 병이 재발했을 때도 다시 신약을 쓰게 된 행운아 중 한 명이다. 유 회장은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을 정확히 진단받고 치료까지 이어지는 것은 환자 입장에서 ‘행운’에 가깝다"고 짚었다.
이같은 행운을 누리지 못한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 환우는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유복순 회장은 "현재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 치료제는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만, 사용 전 반드시 ‘사전승인’이라는 별도의 행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환우회에 소속된 대부분은 다행히 이 과정을 통과해 약제를 투여받고 상태가 안정됐지만, 이 외 많은 환자들은 진단조차 받지 못하거나 신장질환으로 투석을 받거나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렀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까닭에 지금처럼 행운에 기대라고 하는 것은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 환우·가족에게 너무도 가혹한 처사다. 이같은 현실을 환우 스스로가 바꿔보고자 만들어진 게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환우회다. 유 회장은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환우회 설립이 "환우 간 정보를 공유하고 같이 목소리를 내고 함께 연대하는 시작점"이라며 "앞으로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 환우 모두가 진단과 치료 기회를 동등히 갖는 환경을 만들고자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전했다.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 환우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 우리사회에 바라는 것은 '상식'이다. 극희귀질환이어도 의료기관에 갔을 때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고, 치료제가 있으면 병의 경과가 나빠지기 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유복순 회장은 "각종 암에 대해서는 비교적 널리 알려진 상식과 인식이 있지만,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거의 전무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뭔데'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사실 이 병은 너무 어려워 환우조차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앓는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을 설명하는 게 쉽지 않다. 유 회장은 "심지어 일부 의료진조차 생소한 병명과 증상으로 인해 질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앞으로 환우회 활동의 하나로 건강토크쇼, 1대 1 상담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환우와 의료진이 함께 정보를 나누며 병명이 낯설어 환우 스스로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에 대한 인식을 높여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환우회 영역 밖인 치료환경 개선은 우리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 유복순 회장은 "많은 전문가가 치료 ‘골든타임’을 발병 후 48시간 이내로 강조하지만 현재 신약을 쓰려면 사전승인제도를 거쳐 급여 투약 가능 여부를 심사받아야 한다. 이 심사에만 평균 14일이 소요돼, 사실 상 적절한 타이밍의 치료 기회를 놓치고 있다"며 "미국과 유럽 등에선 의료진의 판단 하에 선투약, 후심사 방식으로 환자들의 골든 타임을 지키고 있다"며 환자 중심의 시스템 개선을 촉구했다.
무엇보다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 환우들이 우리사회에 간절히 바라는 것은 치료제가 의학적으로 필요한 환자 모두의 손에 닿는 치료환경이다. 유 회장은 "가장 간절한 바람은, 약제가 절박한 환자들이 골든타임 안에 신속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것"이라며 "울토미리스도 약 50명의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 환자가 신청했지만, 13명만이 승인을 받아 치료받고 있다. 행정 절차가 생명을 가로막는 지금의 구조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사전심사에서 일반심사로 급여 절차가 바뀐 발작성야간혈색소뇨증(Paroxysmal Nocturnal Hemoglobinuria, PNH)처럼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도 일반심사로 전환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유복순 회장은 "발작성야간혈색소뇨증 등 일부 희귀질환에선 사전승인제도가 폐지돼 환자 상태에 따라 신속히 약제를 사용할 수 있게 된 반면,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은 동일 약제를 쓰는데도 여전히 행정 절차에 묶여 있다"며 형평성을 맞춰달라고도 했다.
또 다른 변화가 요구되는 것은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 환우들이 진단 뒤 꾸준히 치료를 이어갈 수 있는 '안정적 치료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사실 신약 도입으로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의 예후가 바뀌었지만, 신약이 나온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 병의 경과가 어떻게 진행될 지 전문의료진들조차 명확히 알지 못한다.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의 예후가 신약 도입으로 좋은 방향으로 바뀐 건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불투명한 미래는 환우들을 힘들게 하기 충분하다.
유 회장은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은 '기약 없는 치료'라는 점이 어렵다"며 "예후를 알지 못해 치료제 투약이 중단됐을 때 이후 상황을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은 면역조절을 담당하는 보체시스템의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데, 예측이 불가능해 그 결과를 예상하기 어렵다"며 "적절한 시기에 치료제를 쓰면 일상생활이 가능하지만 투약이 중단되면 이후 상황을 전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기약 없는 치료는 경제적인 문제와도 연결된다. 유복순 회장은 "경제적 어려움도 크다"며 "건강보험 본인부담상한제 사전 적용을 받아 치료비를 지불하고 이외 금액은 지원을 받지만, 초과 의료비 지급이 보통 늦기 때문에 수입의 대부분을 의료비로 우선 지출하고, 이후 환급을 받는 환우들이 많다. 이 경우에 수입이 일정치 않은 저소득층은 의료비 부담이 매우 크다. 환급을 받더라도 이미 경제적 파산 지경에 이르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은 다양한 장기에 합병증이 생기거나 연관성이 불분명한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도 많아 치료비 부담이 예측불허여서 이같은 특성을 반영한 급여 심사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도 유복순 회장은 강조했다. 유 회장은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은 질환 특성 상 합병증과 질환 간 명확한 연관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며 "때문에 환자에게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증상에 대해 의학적 특성과 임상 경과를 반영한 급여 심사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더불어 고가 신약이 쓰이는 중증난치질환에 대한 보다 정교한 국가 지원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도 유복순 회장은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유 회장은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을 비롯한 모든 희귀질환과 관련해 "단순히 치료제를 쓸 수 있는 환경에 그치지 않고, 전반적인 삶의 질을 지켜주는 희귀질환 돌봄정책이 함께 마련되길 바란다"며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절실한 목소리가 모여 제도를 바꾸는 변화의 시작이 됐으면 한다"는 희귀난치질환 환우로서의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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