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방광-미세결장-장연동저하증후군 환아 부모 임가희 씨
거대방광-미세결장-장연동저하증후군(MMIHS, Megacystis-Microcolon-Intestinal Hypoperistalsis Syndrome)은 ACTG2 유전자 돌연변이가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유전성희귀질환으로, 발생 빈도가 아주 낮아 의료진의 관심을 받기 힘든 난치병이다. 국내 환자 수가 200명이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는 '극희귀질환'인 이 병에 대해 연구하는 의료진도 국내 실제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이 병의 문제는 병명인 '거대방광-미세결장-장연동저하증후군'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우선 방광은 거대해져 소변의 저장·배출이라는 댐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또 대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결장은 극히 작아져 있고, 맹장을 사이에 두고 결장과 연결된 소장은 연동운동을 잘 못하는 까닭에 음식물의 소화·흡수·배출 모두가 어렵다. 소변, 대변의 배출은 물론 영양에도 문제가 초래되는 병이란 뜻이다.
이런 까닭에 거대방광-미세결장-장연동저하증후군을 앓는 아이의 부모는 하루에도 몇 차례 아이의 방광 안에 긴 관을 넣어 소변을 빼줘야 한다. 또 수술로 아이의 장을 배로 빼내 인공항문이라는 불리는 장루에 연결한 상태인 까닭에 음식물, 소화액 등이 든 장루를 매일 관리해줘야 하고 장루를 가는 일도 해내야 한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음식물의 소화·흡수도 어렵기 때문에 혈관을 통해 영양분도 공급해야 하는 까닭이다.
거대방광-미세결장-장연동저하증후군 환아는 장기간 혈관 내로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병원에서 중심정맥관을 몸에 삽입하게 되는데, 환아 부모는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영양 성분'을 삼시세끼와 유사하게 공급하기 위해 중심정맥관에 특수영양 성분이 담긴 수액을 연결·공급하는 것에 더해, 이틀 간격으로 아이의 몸 상태에 맞춘 특수조제수액을 병원에서 받아오는 일까지 도맡아 해야 한다.
올해 8월 세 돌을 맞는 거대방광-미세결장-장연동저하증후군 딸아이를 둔 임가희 씨(39세)의 하루는 아침 7시 30분 아이의 수액기계를 맞추는 일로 시작된다. 그 다음은 아이의 방광에서 소변을 빼주고, 장루를 확인한 다음 젖병을 물려주는 것이다. 또 여느 아이처럼 9시 50분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아이를 씻기고 옷을 입히고 가방을 챙긴다. 여느 아이와 다른 것이 있다면 중심정맥관에 연결된 수액줄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대방광-미세결장-장연동저하증후군을 앓기 때문에 그녀의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 것이 또 있다. 바로 낮 12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2시간 남짓만 어린이집에 다닐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방광에서 소변을 빼야 하는 것도 있지만, 또래아이들처럼 밥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특수분유를 먹어야 하고 동시에 중심정맥관을 통해 수액을 주입받아야 하며, 장루도 빼줘야 하기 때문이다.
임가희 씨는 "2시간동안 아이가 물을 공급받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탈수가 올 수 있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수액을 연결해줘야 한다"며 "또 음식을 먹지 못하는 질환이지만 배고픔은 느끼기 때문에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오면 밥을 찾아 젖병을 입에 물려줘야 된다"고 말했다. 또 "젖병을 통해 들어간 게 소화·흡수되지 못하고 고스란히 나오고 담즙 같은 소화액, 가스도 엄청 많이 나와 장루도 싹 비워줘야 한다"고 했다.
오후 2시 그녀는 딸아이를 재우고 집을 치운 다음 딸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갈 준비로 다시 분주해진다. 오후 4시쯤 그녀는 집을 나와 아이와 함께 산책을 하거나 카페, 마트 등 어디로든 향한다. 아이에게 좀 더 많은 것을 체험하게 해주고 싶은 '평범한' 부모의 마음의 발로다. 집에 돌아온 저녁 7시 30분이면 다시 딸아이의 중심정맥관에 수액을 연결하고, 관을 삽입해 소변을 빼주고, 장루를 관리하는 일로 그녀는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다.
희귀질환을 앓는 아이도 특별한 삶을 살지만 희귀질환 환아 부모도 때론 특별한 삶을 산다. 삶을 온전히 아이에게 맞춰야 아이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까닭인데, 자영업자인 그녀도, 그녀의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편의점 운영에 더해 프리랜서 연주자로 공연도 다니고 개인 강습도 했던 그녀는 대부분의 일을 접었다. 사업에 집중하던 그녀의 남편도 지금은 자신 몫의 고용인을 추가로 쓰며 관리·감독만 해도 바쁜 일상을 산다.
임가희 씨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뒤에도 잠시 쉬지도 못 하고 집 청소를 하고 집 안을 소독하는데 시간을 쏟아붓는다. 그녀는 "아이가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 수액줄을 달고 있어 항상 청결을 유지해야 해 집을 치우고 소독제로 다 닦는다"며 그러느라 첫끼는 딸아이가 어린이집에 돌아올 쯤인 12시에 남편이 차린 음식으로 함께 먹는다고 한다. 이틀에 한 번은 더 정신없는 하루가 부부를 기다린다.
바로 서울대병원에서 아이의 영양상태에 맞춘 특수수액을 받아오는 미션을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주에 거주하는 그녀는 아침에 퀵기사를 호출해 서울대병원에서 수액을 받아 전주고속버스터미널로 붙이게 하는 일을 진두지휘한다. 터미널에서 특수수액을 가져오는 일은 그녀의 남편이 맡고 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서울대병원 약사가 직접 조제한 수액의 유통기한이 48시간에 불과한 까닭이다.
또 극희귀질환을 앓기에 병원 진료도 다른 아이에 비해 잦다. 요즘은 8주 간격으로 딸아이와 함께 서울대병원에 진료를 보러 가는데, 아이가 돌무렵 처음 전주집에 왔을 땐 4주 간격이었고 한주씩 늘려간 결과라고 한다. 서울대병원 외에 그녀의 딸아이는 전북대병원에도 다닌다. 아이 몸의 미량영양소까지 다 확인해 그에 맞춘 특수수액을 제조해야 하는 까닭에 특수한 혈액검사를 서울대병원 외래 2주 전에 꼭 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외에 딸아이가 언제 어떤 감염병에 걸릴지 모르고, 심각한 위협인 중심정맥관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 저혈당 등 온갖 문제가 언제 터질지 몰라 부부는 사실 '5분 대기조'처럼 산다. 그럼에도 그녀는 "감사한 것이 많다"고 말한다. 우선 딸아이가 태어나기 전인 2021년 거대방광-미세결장-장연동저하증후군이 국가 지정 희귀질환이 돼 서울아산병원에서 유전자검사로 확진 뒤 바로 산정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도 그 하나다.
또 진단 뒤 정보가 거의 없는 거대방광-미세결장-장연동저하증후군을 열심히 찾다가 한 카페에 올려진 글을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한다. 같은 병을 앓는 또 다른 환우의 엄마는 그곳에 전화번호를 공개해놓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주세요'라고 적어놨다고 한다. 또 서울성모병원 소아외과 정재희 교수가 생후 45일 된 딸아이의 주치의가 되면서 집에서 아이를 케어하는 법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입으로 먹는 것은 영양분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딸이 집에 돌아올 수 있게 서울대병원에 수액치료시스템이 갖춰진 것과, 특수혈액검사를 하기 위해 서울대병원까지 가지 않을 수 있게 전북대병원 의료진이 중간에 도움을 주는 것도 모두 그녀에게는 감사한 것들이라고 한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아이가 태어난 뒤 수입은 크게 줄고 지출은 2~3배로 늘었는데, 빚마저 자산이어서 정부 지원을 제대로 못 받는다는 것이다.
거대방광-미세결장-장연동저하증후군은 국가 지정 희귀질환으로 산정특례가 돼 현재 병원비는 얼마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틀에 한 번 꼴로 드는 서울대병원에서 전주고속터미널까지의 수액 운송비와, 1회 용품인 도뇨관, 장루주머니, 수액줄 등은 모두 부부가 감당해야 하고 이에 대한 정부 지원은 재산과 소득 기준으로 일괄 평가되며 재산 기준에는 대출받은 임대아파트 보증금과 같은 것도 포함돼 불합리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까닭에 희귀질환을 앓는 환우에게 들어가는 총 비용의 일정 비율을 국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변화될 필요가 있다고 그녀의 남편인 이제훈 씨는 말한다. 또 거대방광-미세결장-장연동저하증후군 같이 정보가 거의 없는 희귀질환에 대해 질병관리청이 '희귀질환헬프라인'에 주기적으로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그곳에 그 질환에 대한 커뮤니티를 만들어 환우와 부모들이 소통할 수 있게 지원해주기를 부부는 희망했다.
마지막으로 임가희 씨는 희귀질환과 그로 인한 장애에 대한 사회 인식도 변화될 수 있기를, 희귀질환을 앓고 그로 인한 장애가 있는 사람도 '낭만'과 '사랑'을 아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우리사회가 변화되기를 바랐다. 그녀는 "희귀질환이나 장애는 교통사고와도 같다"며 "(그런 사고를 당했다고 해도) 우리 아이가 어릴 때부터 편견 없이 자랐으면 좋겠고, 남들이 누리는 것은 다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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