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션트 스토리] 단장증후군환우회 허문영 회장 인터뷰
단장증후군, 장 짧아 음식 먹어도 충분히 소화·흡수 못 해
수액주사 매일 맞지 않으면 생명유지 어려운 환자들 있어
선천성 단장증후군만 '희귀질환' 지정…후천성, 지원 전무
"선천성·후천성 상관 없이 수액치료 필요한 환자 지원을"

단장증후군(短腸症候群, short bowel syndrome)은 장이 짧아 음식을 먹어도 소화·흡수를 제대로 못해 최악은 생리적 아사(餓死)를 초래하는 병이다. 단장증후군의 증상 스펙트럼은 다른 희귀질환처럼 매우 넓은데, 어떤 단장증후군 환우는 매일 수액주사로 영양분을 24시간 공급하지 않으면 저혈당·전해질 부족으로 치명적 상황에 놓이고, 어떤 환우는 처음 얼마간 수액치료를 필요로 하지만 차츰 단장 상태에 적응해 음식 섭취를 늘려 수액치료 없이 먹는 것만으로 생명 유지를 할만큼 개선되기도 한다.

현재 단장증후군은 태내에서부터 장내 혈류 흐름이 좋지 않거나 장이 제대로 발생하지 않는 '선천적 단장증후군'과, 생후 장내 혈류 흐름이나 장내 회전 이상, 장 자체가 썪어서 수술로 장을 잘라낸 '후천적 단장증후군'으로 크게 나뉜다. 그러나 선천성이나 후천성은 단장증후군 환우의 증상 스펙트럼을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다. 이런 까닭에 단장증후군 전문 의료진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상관 없이 단장증후군 환자는 동일 증상·진단법·치료법·자연경과·질병부담 등을 겪는다고 말한다. 

문제는 현재 단장증후군 환우에 대한 처우가 선천성이냐, 후천성이냐로 나눠진다는 것이다. 후천성 단장증후군보다 극소수인 '선천성 단장증후군'은 국가가 지정한 '희귀질환'이어서 건강보험 급여 항목의 검사·치료를 받을 때 급여 비용의 10%를 내는 '산정특례' 혜택을 받는다. 이 덕분에 선천성 단장증후군 환우는 경제적 여건에 덜 영향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수액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후천성 단장증후군은 국가 지정 희귀질환이 아니어서 이같은 산정특례 혜택을 지금 받지 못한다. 

단장증후군 환우의 생명줄인 '수액치료' 비용만 한 달에 200만~300만원이 드는데, 이것을 선천성 단장증후군 환우는 10%만 부담하는데, 후천성 환우는 그 10배인 100%를 현재 부담한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은 최근 몇 년간 있어왔다. 단장증후군 환우·가족이 일부 껴있는 선천성거대결장부모모임 '거대결장' 같은 온라인카페에서 단장증후군 환우·가족이 이야기를 나누며 보건복지부, 국회 등의 문을 두드리는 시도가 있었고 글을 통해 여기저기 단장증후군 치료현실도 알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에서 이같은 단장증후군 환우·가족의 글을 본 것인지 2023년 환우·가족에게 개별적으로 연락을 해와 불합리한 상황을 같이 개선해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이를 통해 지난 2024년 2월 단장증후군 환우·가족의 첫 온라인 미팅이 성사됐고, 이 미팅이 단장증후군환우회가 공식 출범하는 계기가 됐다. 단장증후군환우회는 지난 7월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됐다.

단장증후군환우회 초대 단체장을 맡은 허문영 회장(41세)은 "선천성·후천성에 따라 환우 처우가 갈리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환우와 가족이 복지부에 전화하고 국회의원에게 메일을 보내는 것에 대해 온라인카페에서 논의하고 여기저기 글을 올리며 해결책을 모색하던 때였다"며 "더 많은 의견이 모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던 찰나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에서 연락이 왔고, 이를 계기로 환우회가 만들어져 국회 토론회,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단장증후군 치료현실을 적극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단장증후군환우회 허문영 회장 
단장증후군환우회 허문영 회장 

단장증후군환우회는 선천성이든, 후천성이든 상관 없이 모든 단장증후군에 희귀질환 지정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생명줄인 '수액치료'가 장기간 필요한 단장증후군 환우에게는 선천성이든, 후천성이든 상관 없이 희귀질환 지정이 이뤄져 산정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건강 약자에게 필수의료 지원을 강화한다는 산정특례 본래 취지 대로 단장증후군 최약자인 장기간 수액치료를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환우들이 안정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정부도 이같은 단장증후군 치료현실에 공감해 꽤 오래 전부터 선천적 단장증후군은 아니지만 생후 1개월 이내 후천적 단장증후군이 된 환아에 한해 선천적 단장증후군으로 인정하고 산정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관용해 왔다. 지난 2018년 7월 태어난 허문형 회장의 아들 A군은 현재 단장증후군으로 산정특례 혜택을 받고 있는데, 사실 A군도 태어날 때부터 단장 상태였던 것은 아니다. 세상에 태어난 지 한 달 남짓, 갑자기 발병한 괴사성장염으로 장을 잘라내면서 A군은 단장 상태가 됐다. 

갑자기 양수가 터져 허 회장의 뱃속에서 임신 27주만에 나와 1kg에 불과한 극소저체중아였던 A군은 당시 서울대어린이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 머물고 있었다. 태어날 때보다 270g의 체중이 더 붙은 때였는데, 작은 몸에 찾아온 괴사성장염으로 A군은 총 길이 약 90cm의 소장 중 약 80cm를 잘라내야 했으나 다행히 처음부터 산정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허문영 회장은 "당시 기준(생후 한 달 내 후천적 단장증후군)에 아슬아슬하게 들어 산정특례 혜택을 받게 돼 이 혜택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고 했다.   

이런 까닭에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수액치료'가 필요한 모든 단장증후군 환우가 산정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제도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허 회장은 강조했다. 다행인 점은 단장증후군 환우, 의료진, 의학회,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등이 나서면서 단장증후군 치료현실이 보다 깊고 넓게 알려지며 생후 1년 이내 후천적 단장증후군 환아까지 선천적 단장증후군으로 비공식적으로 인정돼 산정특례 혜택을 받는 경우가 최근 는 것과, 여기에 더해 질병관리청 주도로 제도적 개선도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허문영 회장은 "모든 단장증후군 환우에게 정맥영양제제(TPN) 수액치료가 필요한 게 아니다. (선천성·후천성이든 상관 없이) 수액치료가 꼭 필요한 환우 모두에게 혜택이 갈 수 있게 정책이 세밀하게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더불어 병원 밖에서 수액치료를 하면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단장증후군 환우가 거주 지역 병원에서 안정적으로 치료를 받으며 건강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치료환경 조성도 필요하다고 허 회장은 덧붙였다. 현재 이같은 체계를 갖춘 국내 병원은 서울대병원 단 한 곳뿐이다.

365일 24시간 수액치료를 하는 단장증후군 환우 중 수액 의존도가 전체 영양공급량의 30% 미만으로 떨어지면 하루 3시간이라도 수액을 중단해볼 수 있고, 이같이 하루 수액 중단 시간이 더 늘려지면 매일 수액주사를 맞아야 하는 단장증후군 환우도 퇴원해 유치원, 학교, 직장 등을 다닐 수 있는 '홈TPN'을 시도해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대병원만 홈TPN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수도권 이외 단장증후군 환우가 홈TPN이 가능해도 거주 지역의 한계로 퇴원을 못하고 입원해 있는 실정이다.

또 인체 영양상태가 불량한 단장증후군 환우는 매달 혈액검사를 통해 몸속 미량 양양소까지 확인해 환자 맞춤으로 TPN을 제조해야 하기 때문에 병원 약국에서 TPN을 별도로 제조하고, 이같은 병원 조제 TPN은 제약사에서 만드는 TPN과 달리 유통기한이 48시간에 불과하다. 물론 환우의 영양상태가 안정되면 제약사 조제 TPN으로 변경 가능하지만, 홈TPN을 처음 시도하는 환우에게는 먼 이야기인 까닭에, 수도권을 넘어서는 단장증후군 환우의 홈TPN 치료권은 지정학적 이유로 제한되고 있다.  

허 회장은 "홈TPN을 위해서는 퇴원해도 이틀에 한 번 서울대병원에 와야 한다. 한 단장증후군 환아 엄마는 집이 경기도 여주여서 환아를 차에 태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이틀에 한 번씩 서울대병원에 TPN을 타러 온다"며 그나마 홈TPN을 할 수 있는 것은 운이 좋은 경우라고 짚었다. 사실 서울대병원 이외에 다른 병원에 홈TPN시스템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장증후군 환우가 다른 병원에서 홈TPN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받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허문영 회장은 "서울아산병원도 홈TPN시스템이 있는데, 7명으로 홈TPN시스템 대상 환자 수를 제한하고 있어 단장증후군 환자들이 포함되기 어렵다. 환자 수 제한이 풀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중앙병원인 '서울대병원'을 제외하고 다른 병원에서 홈TPN시스템을 잘 갖추려 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단장증후군 환우별 맞춤으로 TPN을 조제하는 일은 업무 로딩이 큰데, TPN을 조제하는 것에 대한 수가는 전혀 없기 때문에 적자를 보면서 홈TPN시스템을 늘리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단장증후군 환우들이 지정학적 위치에 상관 없이 국내 어디에서든 안정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국내 수가제도가 의료행위 별 수가제를 기본으로 채택한 것에 맞게 병원 약사의 TPN 조제 행위에 대한 수가도 추가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사실 단장증후군에는 짧은 장 내 흡수율을 올리는 GLP-2 유사체 '가텍스(성분명 테두글루타이드)'라는 신약이 국내 허가돼 있지만, 단장증후군환우회는 억 단위 비용이 드는 신약의 급여 보다 안정적 수액치료 환경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허 회장은 "가텍스가 '수액치료가 필요한 단장증후군 환우' 모두에게 수액주사를 끊을 수 있다는 보장을 해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TPN이 가장 확실한 방법인 까닭에 TPN으로 안정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가장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수액치료를 해도 대한민국 평균 키·체중에 도달하기 힘들고, 유치원·초등학교에 가도 하루 수십번 설사를 해 기저귀를 떼지 못하기도 하며, 음식을 먹는 것에 거부감이 커 음식을 앞에 두고도 못 먹는 단장증후군 환우를 위한 배려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희귀질환 '단장증후군'에 사회적 배려가 전무해 환우들이 여러가지 면에서 뒤쳐지기 쉬운 상황에 놓여있다. 이런 까닭에 단장증후군 외에 다른 질환이 더해져 장애진단을 받는 단장증후군 환우가 단장증후군만 있어 장애진단 대상이 아닌 환우에 비해 운이 좋다는 말이 단장증후군 환아 부모들 사이에 나오고 있다. 허문영 회장은 "웃픈 현실"이라며 "장애가 있어서 특수교육 대상자가 된 단장증후군 아이는 대안이 생기는데, 그게 안 되면 결국 홈스쿨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수액주사를 맞는 단장증후군 환우는 TPN을 연결하는 중심정맥관 관리를 아무리 잘 해도 1년에 적어도 한 번은 중심정맥관감염으로 2~3주간 입원치료를 해야 하는데, 입원치료로 환아가 결석해 교육에서 뒤쳐지는 일을 막기 위해 단장증후군 자체로 장애 지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단장증후군환우회에서 나오고 있다. 허 회장은 "장애 지정을 받으면 교육 일수가 일반 교육 일수와 차이가 있다"며 "교육환경에서 단장증후군 환아들이 뒤쳐지지 않기 위해 장애 지정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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