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션트 스토리] 한국중증근무력증환우회 정찬희 회장

중증근무력증은 우리 몸의 신경과 근육의 연결고리인 '신경근육접합부'에 생긴 단백에 대한 자가항체로 인해 근력이 떨어지는 '만성자가면역신경근육질환'이다. 중증근무력증 환자의 스펙트럼은 아주 다양하다. 약물치료만으로 '자가항체'가 잘 억제돼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환우도 있고, 약물치료만으로 자가항체를 잘 억누르지 못해 퇴화한 면역기관인 '흉선'을 절제하는 수술치료까지 더해야 병이 잘 조절되는 환우도 있다.

또 약물과 수술 치료에도 자가항체 억제가 잘 되지 않아 호흡근에 마비가 오는 위급상황 '중증근무력증 위기'에 생명을 위협받기도 한다. 생명의 위협까지는 아니어도 스테로이드·면역억제제 같은 약을 쏟아부어도 자가항체가 잘 억제되지 않으면서 근육이 뇌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환우 의지와 상관없이 직장에서 해고되기도 하고, 병으로 인해 몸 안에 갇힌 스스로를 보며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자발적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칩거에 들어가기도 한다.

2011~2014년 동안 국내 중증근무력증 신규 발생 환자의 연령 분포. 표 출처=연세의학저널 '한국의 중증근무력증 역학'
2011~2014년 동안 국내 중증근무력증 신규 발생 환자의 연령 분포. 표 출처=연세의학저널 '한국의 중증근무력증 역학'

중증근무력증은 전연령에 발생 가능하지만, 사회생활이 활발한 30대에서 사회생활의 정점에서 내려오는 60대 사이에 환자가 집중된다. 중증근무력증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지 않으면 한 개인이 무너지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작은 사회인 한 가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또 중증근무력증 위기로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장기간 치료를 받으면 환자만 힘든 것이 아니다. 환자의 부모, 형제·자매에 배우자, 그 자녀까지 환자와 연결된 모든 가족이 고통받고 경제적 부담에 허덕여야 하며, 이는 고스란히 우리사회가 치러야하는 비용으로 언젠가 돌아온다.

이런 까닭에 치료 가능한 중증난치질환이라면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증근무력증도 사실 치료환경 개선이 충분히 이뤄질 수 있는 상황이다. 최근 국내에 중증근무력증 악화 기전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라불리주맙, 질루코플란 같은 보체억제제, 로자놀릭시주맙, 에프가티지모드 같은 신생아Fc수용체억제제 등 고가 신약이 허가되면서 새로운 치료 옵션이 없었던 중증근무력증 환우들에게 희망이 생긴 것이다. 

문제는 '신약 급여'다. 아직 이들 약제 모두 급여가 되지 않아 실제 기존 약제에 효과를 보지 못보는 중증근무력증 환자가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같은 치료장애 문제에 적극 나서기 위해 올해 4월 19일 한국중증근무력증환우회가 공식 창립했다. 초대회장을 맡은 정찬희 씨(48세)는 "기존 약물을 써도 잘 치료가 안 되는 중증근무력증 환자는 전체 환자(약 1만명)의 약 15%(약 1,500명)"라며 "이런 환자들이 덜 고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중증근무력증환우회 정찬희 회장
한국중증근무력증환우회 정찬희 회장

정찬희 회장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있다. 지난 2011년 눈꺼풀이 처지는 안검하수 증상으로 안과를 전전하다 5개월만에 연고지 병원에서 중증근무력증 진단을 받은 그는 치료에도 2013년 복시가 더해졌다. 그래도 그때는 약물을 조절해가며 직장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2014년 서서히 숨 쉬기 힘들어지면서 그는 스스로 직장을 그만뒀다. 호흡이 힘들어지는 중증근무력증 위기가 오면 죽을 수 있다는 말을 주치의로부터 수차례 들었기 때문이다.   

양치하는 잠깐마저 숨이 차고 침을 뱉어내는 것도 여의치 않아졌을 때 그는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걸어 들어갔다. 입원 뒤 산소치료를 했는데도 산소포화도 수치(정상 범위 95~100%)가 뚝뚝 떨여졌다. 그는 17%라는 수치를 마지막으로 본 뒤 의식을 잃고 그 다음해인 2015년 눈을 떴다고 한다. 3개월간 의식이 없는 채로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오간 뒤 깨어난 그는 우여곡절을 거쳐 국립중앙의료원으로 구급차를 탄 채 전원돼 지금의 주치의 정연경 전문의를 만났다.

당시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선우일남 교수의 소개로 처음 정연경 전문의를 만난 것인데, 그때 그의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중환자실에서 깨어난 지 얼마되지 않아 정신적으로 혼란한 섬망 상태였고, 중증근무력증 위기가 오기 전 대략 65kg이 넘었던 그의 체중은 40kg 아래로 떨어져 있었으며, 목조차 가누지 못할만큼 근력 약화가 심했다. 또 코에는 위로 음식물을 주입하기 위한 튜브를, 목에는 산소를 공급하기 위한 관을 넣고 있었고 소변줄도 차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정 전문의의 치료로 빠르게 회복했고, 지금은 스스로 밝히지 않으면 '중증근무력증 환자'라고 보기 어려울만큼 달라졌다. 대다수의 근력 약화를 초래하는 희귀질환은 한 번 망가진 신체장애를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 하지만 중증근무력증 환우는 팔다리를 쓸 수 없을만큼 몸이 망가져도 회복 여지가 있다. 정찬희 회장이 그 산증인이다. 그는 다시 회복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제대로 된 중증근무력증 치료를 받고, 열심히 재활치료를 한 덕분"이라고 말한다.   

사실 처음 병을 진단받을 당시 찍은 CT에는 흉선종이 분명 있었지만, 연고지 병원에서는 그것을 놓쳤다. 흉선종이 있는 중증근무력증 환자에게 흉선을 제거하는 수술은 정식치료의 하나다. 요즘에는 흉선종이 없어도 아세틸콜린수용체(AChR) 자가항체가 원인인 약물난치성 중증근무력증 환자에게 흉선절제술이 치료의 하나로 쓰인다. 그는 약을 바꾼 뒤 빠르게 회복해 국립중앙의료원 입원 6주만에 부축을 받으며 걸어서 퇴원했다. 2016년엔 흉선절제술도 했다.  

이후 중증근무력증 위기는 다시 정 회장을 찾아오지 않았다. 물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거나 약 부작용 탓에 중증근무력증 증상이 악화되거나 건강 이상이 생기는 이벤트가 없지는 않았지만, 정찬희 회장은 기존 약제로 치료를 지속하며 우리사회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경험은 그가 자신과 같은 문제를 다른 중증근무력증 환우들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어졌고, 온라인 사이트에 전화번호를 공개해 환우들과 경험을 공유하는 일로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정 회장은 대한중중근무력증협회 사무국장을 맡기도 했다. 이는 중증근무력증 네이버 카페와 밴드를 운영하는 일로도 이어졌다. 이러한 경험은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 중증근무력증 환우들의 문제로 그를 이끌었다. 단돈 몇 십 만원이 없어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우들에게는 경제적 지원을 줄 수 있어야 했고, 국내 허가된 신약이 있지만 급여 문제로 신약 혜택을 받지 못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환우들을 위해 나설 단체가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정찬희 회장은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와 연대하는 중증근무력증환우회로 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에 가입하면 그곳의 여러 의료비지원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중중근무력증환우회가 받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중중근무력증환우회에 가입한 환우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거기다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와 함께 중증근무력증 신약 급여 문제에 함께 목소리를 내면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을 목표로 그는 중증근무력증환우회 설립을 준비하고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와 12월부터 국회에 들어가 본격적인 목소리를 낼 계획이었지만, 갑자기 탄핵정국이 조성되고 그에게도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 전해질 수치 불균형이라는 약물 부작용이 생겨 입원치료가 필요해지면서 모든 것이 미뤄졌다. 그래도 올해 중중근무력증환우회는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에서 첫 발을 뗄 수 있었고 벌써 130명의 환우들이 함께 하고 있다고 정 회장은 말한다. 

정찬희 회장은 "지금 중증근무력증 환우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치료환경이 개선되는 것"이라며 "기존 치료에도 약이 잘 받지 않는 환우들은 일상생활이 거의 힘들다. 와상 상태인 환우도 있고, 와상 상태는 아니지만 호흡이 좀 안 좋은 환우도 있고, 호흡은 괜찮은데 밥 먹는 일상생활도 힘겨운 환우도 있다. 이런 환우들의 치료가 좀 더 잘 돼 사회로 복귀할 수 있게 신약 급여가 빠르게 이뤄질 수 있었으면 하고, 이를 위해 할 수 있는데까지 노력해보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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