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션트 스토리] 부신백질이영양증모임 김득한 대표
로렌조오일, 특수식품으로 분류…보험 급여 적용 안 돼
유전자치료제 '스카이소나', 美서 허가…국내 도입 절실
로렌조오일병으로도 불리는 '부신백질이영양증'은 ABCD1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초래되는 X-연관 유전성희귀질환이다. ABCD1 유전자는 긴사슬지방산(Very Long-Chain Fatty Acids, VLCFA) 대사에 영향을 미치는 까닭에, 이 병에 걸리면 VLCFA가 부신 피질, 신경계 백질 등에 쌓여 부신기능에 문제가 생기고 신경세포마저 파괴돼 시력장애, 청력장애, 언어장애, 연하장애, 보행장애, 운동소실, 배뇨·배변장애, 호흡장애 등으로의 진행성 악화가 초래된다.
소아·성인 남성에게 주로 생기는 부신백질이영양증은 많은 유전성희귀질환처럼 증상 스펙트럼이 넓다. 일부는 신경세포에 문제 없이 부신기능에만 문제가 초래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개 신경계를 침범해 심각한 병으로 진행된다. 멀쩡하던 사람이 시력·청력에 문제가 생기고 어느 순간 말을 못하고, 나중에는 잘 걷지 못한다. 또 음식도 제대로 삼키지 못해 콧줄을 넣어 영양 섭취를 해야 하고, 소변·대변도 가리지 못해 소변줄을 꽂고 기저귀를 찬다.
또 행동 반경은 점차 줄어 나중에는 와상 상태에서 눈 깜박임만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호흡도 제대로 되지 않아 목에 관을 꽂아 산소 공급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악화된다. 부신백질이영양증을 앓는 두 아들을 둔 부신백질이영양증모임 김득한 대표(49세)는 이 병의 진행을 늦춰준다는 로렌조오일부터 시작해 이 병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알려진 온갖 것들을 전 세계에서 찾아내 두 아들에게 먹였지만 이같은 부신백질이영양증 진행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한다.
처음 이 병을 진단받을 당시 시력장애·청력장애에 더해 약간의 언어장애를 보이는 수준이었던 첫 아들 승건이는 부신백질이영양증 진단 뒤 얼마 되지 않아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6개월만에 보행장애가 찾아왔다. 이후 병 진행은 아주 빨랐다. 6~8개월만에 승건이는 완전히 침대에 누운 채 생활해야 할만큼의 운동소실에 이르렀다. 연하장애, 배뇨·배변장애, 호흡장애도 겹쳐졌다. 영양분 공급을 위한 승건이는 콧줄을 꽂아야 했고, 목에 산소를 주입할 관도 넣었다.
손가락을 까닥이고 눈 깜박임 정도만 가능할만큼 승건이의 병이 악화됐지만 김득한 대표 부부는 승건이와 그렇게라도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그러나 승건이는 부신백질이영양증 진단 3년 7개월만인 2022년 12월 심정지로 부부 곁을 떠났다. 형으로 인해 아무 이상이 없는 상태로 이 병을 진단받은 그의 작은 아들 승우는 형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지금 와상 상태로 누워있을만큼 병이 악화됐지만, 김 대표는 "승우가 잘 버텨주고 있다"고 말한다.
승우는 지난 2019년 병이 조기 진단되면서 특수식이 '로렌조오일'을 형보다 빠르게 복용할 수 있었지만, 로렌조오일로 부신백질이영양증의 진행을 조금 늦췄을뿐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로렌조오일은 초기에만 적용 가능하고 치명적 합병증 위험이 높으며 치료 성공률이 절반 정도로 알려진 '골수이식'을 제외하고 부신백질이영양증 환아의 증상을 늦춰주는 효과가 알려진 '국내 유일한 치료 옵션'이기에 전문의료진들조차 환자에게 섭취를 권유한다고 한다.
김득한 대표는 "로렌조오일은 특수식이로 분류돼 있는데, 사실 희귀질환에서 담당 의료진이 식품을 권유하는 것은 많지 않다. 하지만 로렌조오일이 부신백질이영양증 진행을 늦출 수 있다면서 지금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등의 담당 의료진도 권유하는 상황"이라며 "작년과 올해 신규로 이 병을 진단받은 환아 부모들도 열 몇 분쯤 되는데, 모두 이 병을 검색하다가 로렌조오일을 알게 되면서 로렌조오일에 희망을 건다"고 현실을 짚었다.
그러나 국내 환우들은 로렌조오일을 제대로 섭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 대표는 "로렌조오일이 현재 약이 아닌 특수식이로 분류돼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한 달에 로렌조오일을 필요한 양만큼 먹이려면 150만~200만원의 비용이 든다. 이런 까닭에 가정 형편에 따라 복용량을 다 채워서 먹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희귀질환자 의료비지원사업의 특수식이 구입비 지원에 이 병의 지연제 역할을 하는 로렌조오일이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렌조오일이 국내 도입된 것은 부신백질이영양증 환우 어머니이자 부신백질이영양증모임 첫 대표 배순태 씨의 역할이 컸다. 1986년 그녀의 첫 아들이 부신백질이영양증으로 진단되고, 2년만에 그녀는 아들을 잃었다. 둘째 아들이 부신백질이영양증 진단을 받은 1993년, 그녀 아이들과 같은 병을 앓는 아이를 둔 미국 가족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로렌조오일'이 국내 개봉했다. 이 영화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부부가 로렌조오일을 개발해낸 과정이 담겼다.
배순태 초대 대표는 로렌조오일이 실제 부신백질이영양증 진행을 늦출 수 있고 로렌조오일을 미국에서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듣고 미국 친척을 통해 로렌조오일을 수소문해 구할 수 있었다. 이후 로렌조오일이 의료용식품으로 국내 정식 수입될 수 있게 힘을 써 같은 병을 앓는 국내 환우들의 병 진행을 늦추는데도 기여했다. 또 골수이식에 더한 지연제 도입에 따라 이 병의 조기 진단이 중요해지자 국내 신생아대사이상선별검사에 이 병이 도입되는데도 역할을 했다.
로렌조오일 국내 도입 뒤 특수식이에 대한 정부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 배 초대 대표에 이어 김득한 대표도 부신백질이영양증환우회 차원에서 10년 넘게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아직 정부는 응답이 없다. 그간 부신백질이영양증 치료환경도 글로벌에서 급변했다. 부신백질이영양증 원샷 유전자치료제 '스카이소나'가 미국에서 지난 2022년 9월 허가된 것이다. 문제는 스카이소나가 약 40억원에 달하는 고가 약제이고, 아직 국내에는 도입 계획조차 없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로렌조오일조차 제대로 환우들이 먹기 힘들만큼 희귀질환 '부신백질이영양증'에 대한 정부 지원은 아직 열악하지만, 이 병에 대한 치료 기술은 큰 폭으로 나아간 상황이다. 현재 부신백질이영양증은 국내에서 신생아대사이상선별검사로 조기 진단해 아무 문제 없을 때 환자를 찾을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 있다. 스카이소나를 도입해 부신백질이영양증 발병 전 치료하면 환우들은 평생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도 있다.
이런 까닭에 부신백질이영양증 환우와 가족들은 스카이소나로 치료할 수 있는 국내 환경 마련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김 대표는 "현재 부신백질이영양증에 골수이식이 하나의 치료 옵션이기는 하지만, 골수이식은 초기 환우들에게 제한적으로 가능하고 환우들에게 치명적인 위험마저 있다. 때문에 스카이소나가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며 국내 극소수 희귀병인 부신백질이영양증의 치료환경이 바뀔 수 있게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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