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션트 스토리] 한국원형탈모환우회 주현재 회장
원형탈모증을 직경 2~3㎝ 크기의 작은 동전 모양 탈모로만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원형탈모증의 실체는 그것이 다가 아니다.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인 '원형탈모증'은 인구 50명 중 1명 꼴로 겪는 흔한 질환이고, 대부분 동전 모양 탈모에서 간단한 치료 뒤 좋아지거나 심지어 치료 없이 회복되기도 하지만, 아무리 치료해도 점차 탈모가 진행되는 중증 원형탈모증 환자도 2023년 기준 국내 17만8,000명에 이르는 게 현실이다.
중증 원형탈모증은 한 가지의 형태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처음 동전 모양 탈모가 시작된 부위에 동시다발적으로 탈모가 진행되는 '다발성 원형탈모증'도 있고, 한쪽 귀에서 다른 쪽 귀까지 뒤통수 라인을 따라 탈모가 생기는 '사행성 원형탈모증'도 있으며, 그물 모양처럼 머리 전체에 탈모가 초래되는 '망상형 원형탈모증'도 있고, 머리카락만이 아니라 눈썹·음모 등 우리 몸의 털이 모두 빠지는 형태의 '전신 원형탈모증'도 있다.
중증 원형탈모증의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소아·청소년처럼 어릴 때 원형탈모증이 시작될수록 나쁜 예후를 보인다는 것이다. 한국원형탈모환우회 주현재 회장(46세)도 초등학교 4학년 때 작은 동전 모양 탈모로 시작해 채 6개월도 되지않아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는 형태의 중증 원형탈모증으로 진행됐고, 사춘기 때 호르몬 변화로 머리가 조금 다시 났다가 빠지는 과정이 반복됐지만 결과적으로 머리카락을 모두 상실했다.
이런 중증 원형탈모증의 특성 탓에 원형탈모환우회가 지난 2017년 대한모발학회 주도로 만들어지게 됐다. 주현재 회장은 "아이들 원형탈모증이 치료가 잘 안 되다보니 환아나 부모가 심리적으로 굉장히 힘들어하고 심지어 가정이 무너지기도 한다"며 "이런 원형탈모증 환아와 가족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교수들이 이런 상황을 지켜보다가 모발학회를 중심으로 도와줄 방안을 고심하게 됐고, 그 결과물이 환우회였다"고 말했다.
당시 모발학회 부회장이었던 강동경희대병원 피부과 심우영 교수에게 진료를 보고 있던 주 회장이 원형탈모환우회를 이끌 리더로 지목됐다. 초등학생 때부터 원형탈모증 환자로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야 했지만 삼육보건대학 교수로 잘 살아나가고 있는 그를 지켜본 심우영 교수가 원형탈모증 환아와 부모를 대상으로 한 강연을 몇 차례 그에게 요청했고, 이것이 그가 환우회를 이끌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이다.
원형탈모증으로 오랜 시간 고통받아온 주현재 회장도 원형탈모증 탓에 불행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면 초라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원형탈모환우회를 이끄는 일을 맡게 됐다고 한다. 원형탈모환우회가 만들어진 뒤, 대학병원 탈모 전문 교수진들은 진료 중 우는 중증 원형탈모증 아이와 부모를 속수무책 지켜보는 대신 "희망축제를 가보라"고 권할 수 있게 됐다.
희망축제는 원형탈모환우회가 매년 연초 가장 공들여 여는 행사로, 중증 원형탈모증 환아와 부모의 심리적 어려움을 해결하고 오해가 많은 탈모 치료법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나누는 장이다. 사실 처음 원형탈모환우회가 만든어진 초창기 '희망축제'에서의 희망은 중증 원형탈모증이 치료될 수 있다는 의미 보다 중증 원형탈모증이 치료가 잘 되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에 가까웠다.
그러나 요즘 원형탈모환우회의 '희망축제'의 희망은 중증 원형탈모증이 치료될 수 있다는 의미로 확연히 바뀌어 가고 있다. 주 회장은 "처음 원형탈모증환우회장을 맡게 됐을 때만해도 중증 원형탈모증 치료에 희망이 보이지 않았는데, 요즘은 희망이 보인다"고 크게 변화되고 있는 원형탈모증의 치료현실을 짚었다. 지금도 원형탈모증 치료환경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지만, 밀레니엄 이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밀레니엄 이전 원형탈모증은 '병'이라는 인식조차 없었고, 원형탈모증이라는 병명을 듣는 것도 쉽지 않았다. 주현재 회장은 "1990년대에는 '원형탈모증'이라는 얘기도 없었고, 주변에 나처럼 탈모가 진행되는 사람이 없어 '질환'이라는 생각조차 못 했다"며 "중학교 때 아버지가 병원에 한 번 가보자고 해서 동네의원에 갔던 적도 있었지만, 의사도 '모르겠다'고 해서 그 이후 병원에 가지 않고 온갖 민간요법에 의존해야 했다"고 말했다.
요즘 원형탈모증은 잘 알려져 있어 진단은 잘 되고 있지만, 사실 중증 원형탈모증일 때는 치료가 쉽지 않다. 스테로이드나 발모제 '미녹시딜'을 바르는 1차 치료와, 다이페닐사이클로프로페논(DPCP, Diphenylcyclopropenone)이라는 화학물질을 머리에 바르는 2차 치료 '접촉면역요법'에 실패하면 스테로이드제제에 면역억제제 '사이클로스포린'를 추가하는 식의 치료가 이뤄지고 있지만 효과가 아주 높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중증 원형탈모증에 치료 효과를 입증한 한국릴리의 JAK억제제 '올루미언트(성분명 바리시티닙)'가 지난 2023년 국내 도입됐고, 2024년에는 화이자제약의JAK억제제 '리트풀로(성분명 리틀레시티닙)'가 잇따라 국내 허가되면서 치료환경이 크게 개선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올루미언트와 리트풀로 모두 건강보험 급여가 되지 않아 중증 원형탈모증 환자들이 쉽게 쓸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주 회장은 "신약 임상시험을 할 때 우리 환우들이 많이 참여했고, 확실히 효과를 많이 본 것으로 안다. 아직 보험 급여가 되고 있지 않은데, 비급여로 신약을 쓰는 중증 원형탈모증 환우가 꽤 많다"며 "원형탈모증은 심리적으로 우울증을 많이 야기하고 자살충동도 초래할만큼 힘겨운 병이다. 현재 신약들에 보험 적용이 추진되는 것으로 안다. 절망스러운 순간들이 있지만 환우들이 희망을 갖고 잘 견뎌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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