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종양내과학회 안중배 이사장, 모든 암 급여치료비 5%에 의문 제기
치료 효과 별 차등 급여 비율 적용 제안…“암 치료에 선별급여 확대를”
국내 암 진단·치료 시스템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 국가암검진시스템의 도입으로 한국인에게 다발하는 위암은 항암치료가 필요 없는 1기 상태 진단율이 70%에 육박한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위암 5년 생존율은 2015~2019년 기준 77.5%까지 올라갔다. 이는 2001~2005년과 비교할 때 19.5%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대한종양내과학회 안중배 이사장(세브란스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은 이것만 봐도 국내 암 진단·치료 시스템이 글로벌에서 상대적인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역설했다. 무엇보다 지난 10년간 국내 암 치료환경이 눈에 띄게 발전했다는 안중배 이사장에게 무엇이 변했고, 올해 더 나은 암 치료환경을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들어봤다.
- 국가암검진시스템으로 조기 암 발견율이 올라갔고, 암 치료 기술의 발달로 치료 성적도 향상됐다. 국내 암 환자에게도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을 듯하다. 어떤 변화들이 보여지나?
암종 별로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관찰된다. 2022년 하반기 세브란스병원에서 종양등록사업 25년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국내 암 전체 치료 성적만이 아니라 국내 4기 암 치료 성적도 예전에 비해 월등히 개선됐다. 말기 대장암(결장암 및 직장암 4기) 5년 생존율은 1995~1999년 15.6%에서 2010~2014년 24.2%로 향상됐다. 고령 암 환자의 치료 성적도 크게 올라갔다. 대장암 진단 당시 80세 이상 고령의 5년 생존율은 1995~1999년 21.6%에서 2010~2014년 41.6%로 과거에 비해 고령 암 환자도 2배 가까이 5년 넘게 산다는 이야기다.
암의 조직학적 변화도 관찰된다. 폐암은 과거에는 담배와 관련된 편평상피암이 많았는데, 요즘은 선암이 많다. 이번 보고서에서 보면 1995년 전체 폐암에서 편평상피암과 선암의 비율이 각각 38.4%, 29.4%였는데, 2019년에는 편평상피암과 선암의 비율이 각각 16.7%, 68.5%로 큰 변화가 있었다. 또한 20~30년 전만해도 크론병 등과 같은 염증성장질환으로 인한 대장암 환자가 거의 없었는데, 최근에는 굉장히 많아졌다. 너무 많은 변화들이 있어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 최근 암 치료 환경이 엄청나게 변한 것 같다. 항암신약들이 쏟아져 나오고 로봇수술기도 4세대까지 업그레이드 됐다. 방사선 암치료 기술도 크게 발전했고, 2023년에는 세브란스병원에 중입자치료기도 들어온다. 또 전국의 암병원에 다학제시스템이 도입됐고, 1회 투약 비용이 5억원에 달하는 백혈병·림프종 치료제 킴리아에 건강보험도 적용된다.
최근 10년 간 특히 많이 달라졌다. 우리나라 의료시스템 안에서 이 모든 게 다 가능해진 것 자체가 너무 신기할 정도로 국내 암 치료 환경이 좋아졌다.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ext Generation Sequencing·NGS) 검사만 해도 우리나라처럼 건강보험을 통해 100만원도 안 되는 비용으로 할 수 있는 곳이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전 세계에서 선도적으로 이뤄지는 암 치료 대부분이 이제 국내에서 가능하다. 또 조금이라도 더 나은 치료가 이뤄질 수 있게 계속 변화되고 있다.
서울, 글로벌 임상시험 랭킹 1위 도시…"임상시험, 새 치료 기회"
- 국내 암 진단·치료 환경은 글로벌에서 뒤지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한종양내과학회 이사장으로서 평가했을 때 어느 정도의 위치쯤 된다고 보나?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개인 입장에서는 불편한 점이 있을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조기 암 검진이 가능하고, 모든 암 환자가 의료기관 접근이 가능하다.
국가 별 의료시스템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비교하는 게 말이 안 되기는 하지만, 미국과 유럽 모두 우리나라와 같은 수준의 국가 암 진단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고 의료기관의 접근성도 우리나라만큼 높지 못하다. 미국은 의료서비스 수준이 높지만 우리나라에 비해 너무 비싸고 계약된 보험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의료서비스도 천차만별이다.
국내 암 치료 성적이 크게 올라간 것은 전 국민 의료보험 시스템 속에서 모든 국민이 검진을 받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에서 이런 시스템을 갖춘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또 해외 학회를 나가보면 국내 암 전문의를 보는 시선이 10년 전과 확연히 차이가 있다. 국내에서 이뤄지는 임상시험도 크게 늘었다. 서울은 전 세계 도시 중 글로벌 임상시험 점유율 랭킹 1위 도시다. 도시 별로 따졌을 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임상시험을 많이 하는 주요 병원이 서울에 다 있다. 이처럼 외국에서 신약이 개발돼도 한국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국내 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기회가 더 많아졌다.
임상시험은 의사 입장에서 연구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치료다. 그만큼 새로운 치료 기회를 암 환자에게 더 줄 수 있다는 게 임상시험의 제일 중요한 포인트다.
- 여러 암 치료 기술이 국내 도입됐지만 급여로 편입되지 못해 환자들이 돈이 없어 치료 기회를 잃는다는 의사들과 환자들의 목소리가 높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암질환심의위원회(암질심)에 참여해 보면 폐암 전문의는 폐암에 대해, 유방암 전문의는 유방암에 대해 각기 제 분야의 항암신약 급여에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건강보험 재정이 한정돼 있다 보니 정부가 모두 급여를 해줄 수는 없는 상황이다.
처음 암질심 회의에 참석할 때는 대장암 전문의로서 다른 암종 전문의와 똑같이 대장암 치료제 스티바가, 론서프 급여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회의에 계속 참석하면서 암 전문의로서 조금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면역항암제 스티바가는 약이 나온 지 10년 됐어도 보험 급여가 안 된다. 이유는 그 약을 썼을 때와 안 썼을 때 차이가 2개월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건강보험 재정에서 이 정도 차이의 약효를 내는 약제들이 모두 급여되기는 어렵다.
물론 병원에서 말기 대장암 환자들은 스티바가가 급여가 안 돼 힘겨워 한다. 스티바가는 비급여로 한 달에 300만원 정도의 약값이 드는데, 의사 입장에서 환자에게 평균 2개월 더 살 수 있는데 한 달에 300만원을 내고 써보라고 말하기 굉장히 어렵다. 그럼에도 ‘스티바가를 안 쓰면 대장암 환자에게 큰 일이 나느냐’라는 생각을 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답이 나온다. 이 약은 마지막 단계의 약이다. 암 전문의가 환자처럼 생각해 목소리를 내면 객관성을 잃을 수 있다.
그래서 거기서 조금 다르게 생각해봤다. 왜 암 치료 급여는 전부 다 5%일까. 암 환자 급여가 꼭 5%여야만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딱 고정을 해놓으니까 5%에 다 못 맞춘다는 생각이 든다. 약효가 조금 입증된 약은 50%만 급여가 돼도 환자 입장에서는 2배 더 쓸 수 있다. 이런 접근은 안 되는 건지 의문이다.
- 암 치료 효과 별 급여 비율을 차등 적용하자는 것인데, 많은 암 전문의들이 이런 의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최신 암 치료 기법들이 계속 나오고 있고, 모두 고가 치료이다 보니 암 전문의들이 환자의 최신 치료 접근성을 높이려는 차원에서 대체로 그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암 치료 효과 별 차등 급여 비율을 적용하는 안 외에 최신 치료에 대한 접근성을 더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암질심에서 나름 객관성을 가지려고 하는데 종종 헷갈리는 것들이 있다. 분명 심사 원칙이 있는데 약간 의아할 때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폐암에서 올해 3월 면역항암제 키트루다가 1차 치료제로 급여를 받았다. 건강보험 재정에 엄청나게 큰 부담이 되는 결정이다. 그런데 키트루다는 폐암보다 고빈도 MSI(Microsatellite Instability-High) 대장암에서 훨씬 더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인다. 폐암 환자보다 고빈도 MSI 대장암 환자가 더 적은데도 고빈도 MSI 대장암 환자에게는 급여가 현재 안 된다.
같은 약이라도 제약사는 전략적 선택으로 급여 심사에 올릴 항목을 정하기도 한다. 급여가 안 되는 것이 더 이익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심의에 올라오지 않는데 급여 심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건강보험 재정이 제한적인 데다 급여 진입에 여러 가지 역학 구조가 작용해 결국 사안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결국 모두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 정부의 암 연구 지원이 최근 많이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국내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한 암 연구 분야가 있다면?
과거보다 암 연구 지원이 많이 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외국보다 우리가 훨씬 못 할 거다. 우리나라가 강한 연구 분야는 임상연구다. 글로벌 제약사에서 우리나라와 연구를 많이 하는 분야도 다국가 대규모 임상연구다. 연구 데이터의 질이 좋기 때문이다.
국내 암 분야에서 의미있는 데이터는 다학제적 다기관 연구를 통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한 의료기관에서 여러 과가 참여하고, 그 연구가 여러 의료기관에서 동시 진행되는 연구 형식이다. 여러 과, 여러 기관에서 참여하기 때문에 굉장히 진행하기 어려운 연구지만, 거기서 제일 큰 데이터들이 나온다. 현재 이 분야 연구에 지원이 많지 않다. 이 분야에 대한 연구 지원이 활발했으면 한다.
"근거 없는 약 때문에 근거 분명한 암 치료 놓치지 말아야"
- 국내 의료기관의 암 치료 시스템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예민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각 전문의가 제 분야의 전문성을 갖고 진료를 볼 수 있게 제도적 보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소화기내과 전문의가 항암치료를 하는 게 가능하다. 의사 면허가 있으면 모든 진료 영역을 볼 수 있게 허용돼 있는데, 전문 분야에 대한 인정이 이뤄질 수 있게 제도 보완이 있었으면 한다. 그것이 암 환자에게 더 나은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
또 요즘 암 치료는 다학제 진료를 하는데, 이 다학제도 특정 과 상관없이 의사 4명만 모이면 다학제가 인정되게 되어 있다. 외과 의사만 4명 들어와도 다학제가 되는 것이다. 다학제다운 다학제가 될 수 있게 각 전문 분야의 무슨 과 전문의가 포함돼야 한다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 의료소비자들이 요즘 굉장히 똑똑해졌다. 하지만 일부 암 환자들 중 잘못된 암치료 접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암 환자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암 환자 입장에서는 답답하니까 여러 가지 접근을 하는 것 같다. 건강보조식품을 먹는 게 대표적일 것이다. 또 사회 이슈가 됐던 개구충제 사건과 같이 근거 없는 치료를 시도하려는 경우도 있다.
잘못된 식품이나 약을 먹으면 이를 대사하는 간에 부담이 돼 간기능이 나빠진다. 그러면 항암치료를 못 하게 된다. 근거 없는 치료 때문에 근거가 분명한 치료를 놓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 올해 암 치료 분야에서 정책적으로 보완이 됐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암 치료에 있어서 급여 적용이 적절하지 못한 경우 사회적 요구도를 평가해 본인부담률을 정하는 '선별급여'에 대해 정부가 조금 자율성을 부여하고, 지금 보다 확대했으면 좋겠다. 또 하나는 최신 연구에서 데이터가 나와 시도해 볼 수 있는 치료제에 한해 환자가 동의하면 오프라벨(약의 허가범위 외 사용)로 치료하는 게 더는 불법이 되지 않게 개선됐으면 좋겠다.
지금은 대장암에서 허가받은 약이 아니면 불법이 돼 버린다. 암 환자에게는 그것이 마지막 소원이 될 수 있는 데 그것을 법으로 막고 있다. 연구 결과에 근거해 전문의가 판단하고, 환자가 동의했을 때는 불법으로 규정을 안 했으면 한다.
- 암 생존율이 높아지면서 암 환자의 삶의 질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때문에 환자의 삶의 질이 괜찮은 상태일 때 효과 높은 치료를 하는 방향으로 치료전략이 짜여져야 한다는 의중이 모아지고 있다. 의료현장에서 이것이 얼마나 반영되고 있고, 앞으로 지금보다 더 개선될 여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암 치료는 초반에 더 확실한 치료를 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좋은 치료를 앞에서 하는 방향으로 국내 치료 방향도 바뀌고 있다. 실제 대장암 치료는 현재 1차, 2차 치료 때 가장 좋은 치료제를 쓰고 있다.
최근에 면역치료제 등 여러 치료제들이 나와 근거가 만들어지면서 좋은 치료제들이 1차 치료제로 바뀌었다. 현재는 치료 차수가 뒤일 때 쓸 수 있는 약제들도 근거가 쌓이면 초반에 쓸 수 있는 약으로 옮겨갈 것이다. 근거가 쌓일 때까지의 기다림은 필요하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