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과학연구소 김영진(진단검사의학과) 인체유래물은행장

인체자원 기증의 대표적인 것은 헌혈이다. 기증된 헌혈 혈액은 비록 보관기간이 제한적이지만, 즉시 환자에게 투여하여 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대한수혈학회지에 실린 <코로나19 유행기간 헌혈 인식과 대한적십자사 대응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헌혈 참여의 주된 이유는 ‘정기적인 참여(32.1 %)’, ‘헌혈 참여 요청(20.9 %)’이었으며, 미참여자 대상 설문에서는 ‘헌혈할 생각이 있었지만 시간이 없어서(22.8 %)’,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출 및 약속을 자제해서(18.3 %)’ 등의 비율로 나타났다. 이런 조사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 상당수는 생명 나눔에 대한 의미와 가치에 공감을 표하며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2019년 질병관리청 제대혈 기증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에서는 35.9%가 ‘기증 의향이 없다’고 응답을 했고, 그 이유로는 ‘가족 제대혈 보관을 위해(25.5 %)’, ‘기증의 필요성을 못 느껴서(21.8 %)’, ‘제대혈이 무엇인지를 몰라서(20.0 %)’, ‘기증절차가 번거로워서(18.2 %)’ 등이었다. 이런 부정적 결과를 보면 아직은 제대혈 기증에 대한 홍보가 절대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체유래물 기증 막는 제도 개선 필요

하지만 2021년 12월 실시한 <제대혈 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 10명 중 8명이 ‘제대혈 기증은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를 보면 난치병 연구와 치료를 위해 꼭 필요하고 귀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음에 공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내 조혈모세포 이식이 필요한 이식대기자가 2020년 6월 기준 5,118명인 것을 감안한다면 출산 후 버려지는 태반과 제대혈 기증을 위한 적극적인 홍보와 기증문화 확산이 필요하다. 제대혈을 기증할 수 있는 시기는 출산 후 바로 그때뿐이다. 매년 출생아 수가 급감하는 현실에서는 이 시기의 인체자원 기증은 더욱 중요진 것이다.

한편, 미래의학의 한 축인 정밀의료 실현을 위해서 유전정보를 포함한 임상정보, 인체자원 확보 및 인체유래물 은행은 민간 차원에서도 구축되어 운영되고 있다. 생명윤리법 제2조 제11호에 따르면 ‘인체유래물이란 인체로부터 수집하거나 채취한 조직, 세포, 혈액, 체액 등 인체구성물 또는 이들로부터 분리되는 혈장, 혈청, 염색체, DNA, 단백질 등’을 말한다. 병의원에서 질병의 진단을 위해 혈액을 채취하고, 진단검사를 한 후 통상적으로 2주후 폐기되는 잔여검체는 보건복지부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하여 2017년, 2021년 ‘잔여검체 이용에 관한 가이드라 인’을 안내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잔여검체 제공 관련 내용을 서면으로 고지해야함은 물론, ‘환자가 거부의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잔여검체를 인체유래물은행에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구두로 설명해야 한다는 의무고지 사항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물론 민감한 개인 정보는 반드시 익명화되고 보호되어야 하며, 생명윤리법상 서면동의 면제 요건이 전향적으로 완화된 측면도 있으나 진료현장에서 적용하기에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존재한다. 요즘 들어서는 개인정보를 악용하는 사례들로 인하여 필요한 경우에도 개인동의를 하기가 꺼려지고, 선의의 기증 조차도 주춤하게 만드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상업적 목적이 아닌 공익을 위한 의학연구가 제한 받는 규정은 재고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배아연구 등 윤리적 측면을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분야를 제외하고는 의학적 연구에 허용되는 ‘Negative system’ 도입도 절실해졌다. 매년 시행하는 국가건강검진 수검자 중 정상 판정 받는 사람이 45% 정도이며, 이들이 버려지는 잔여검체를 기증한다면 국가적으로도 유용한 인체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2020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721명중 620명(86 %)이 ‘연구를 위해 잔여검체를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신의료기술개발 등 의료적 가치 높아

신약개발에 필수적인 신약 임상시험, 의료기기 신제품 개발에서의 임상적 성능시험에서 질환자의 검체도 필요 하지만, 임상시험에서는 정상인 대조군 검체가 반드시 필요하다. 코로나19 진단키트 개발에 잔여검체가 기여한 바가 큰 것은 이미 언론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인체유래물은행에 안정적으로 보관된 인체유래물은 신의료기술개발에 있어 검증도구로 활용될 뿐만 아니라, 의료자원의 재활용, 의료폐기물 처리 감소로 환경적 측면에서도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

초개인화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많은 우리의 이웃들은 여전히 사회적 나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연말이면 구세군 자선냄비, 사랑의 체온계 행사가 이뤄지고, 고아원이나 양로원 등 사회복지기관에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거나, 독거노인 및 소외이웃에게 연탄을 전하는 등의 행사가 진행된다. 하지만 일상에서 무관심하게 버려졌던 ‘인체유래물 기증’이라는 작은 실천 역시도 의료적 측면에서 누군가에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인체유래물 기증에 대한 물질적 보상은 없지만, 작은 관심과 기증문화가 귀중한 생명을 살리고 의료발전에도 기여한다는 자부심,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그마한 보람이 아닐까 싶다.

 인체유래물은행장
 인체유래물은행장

SCL 서울의과학연구소 부설 인체유래물은행(SCL 바이오뱅크)을 이끌고 있는 김영진 은행장은 연세대 원주의과대학을 졸업한 진단검사의학 분야의 권위자이다. ㈜라이프코드 의학연구소 부사장 및 연구소장, 국내 CRO 대표기업인 LSK-Global PS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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