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 홍종원 교수 "정부 정책 실망…전공의에 면목 없어"

사직서를 제출한 세브란스병원 성형외과 홍종원 교수는 자신을 찾는 환자들을 위해 직접 '안내문'을 적었다. ⓒ청년의사
사직서를 제출한 세브란스병원 성형외과 홍종원 교수는 자신을 찾는 환자들을 위해 직접 '안내문'을 적었다. ⓒ청년의사

대한성형외과학회 수련이사인 세브란스병원 성형외과 홍종원 교수가 병원과 학회를 떠난다. 지난달 25일 사직서를 제출한 홍 교수는 자신을 찾는 환자들을 위한 '안내문'을 써 병원에 게시했다. 이식과 재건 성형 분야에서 24년 종사하며 후배를 가르치고 환자를 돌본 교수로서 마지막 인사다.

홍 교수는 지난 5일 청년의사에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맺어온 환자들에게 예의라 생각해 글을 적었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국내 손·팔 이식 합법화 후 첫 성공 사례를 남기는 등 이 분야 발전에 애써왔다.

안내문에서 홍 교수는 "학창 시절 남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치열하게 고민했고 의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때 고민을 소중히 간직해 성격과 재능에 가장 맞는 성형외과를 전공하고 안면외상과 선천기형, 특히 재건성형에 지난 24년 종사했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해 수도권과 비수도권 전공의 배정을 갑자기 조정한 것을 비롯해 전공의 수련·교육에 대한 이해 없이 진행되는 정부 정책은 홍 교수에게 실망감만 줬다. 이번 의과대학 정원 증원은 그 연장선상이다. 환자 생명과 직결된 재건 수술을 집도하면서 성형외과 전반을 향한 사회의 오해도 그를 힘들게 했다.

홍 교수는 "26개 전문학회에서 전문성과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들은 지난해 교육의 질을 고려하지 않은 전공의 정원 정책 진행을 보며 너무 큰 실망을 느꼈다. 이번 전공의 사직을 겪으며 세브란스병원 전공의 수련1차장으로서도 학회 수련이사로서도 내 전공의는 물론 전국의 전공의를 볼 면목이 없다"고 토로했다.

홍 교수는 "한 달 후에는 전공의 수련1차장과 학회 수련이사직을 내려놓는다. 세브란스병원 역량으로만 가능했던 수부 이식은 물론 14년간 준비한 안면 이식도 중지한다. 가장 사랑하는 극오지 남극에서 지난해까지 연구한 확장현실(XR) 기반 원격수술과 협진 연구도 여기서 중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분한 사랑을 준 환자와 보호자, 믿고 따라준 모든 분께 감사와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며 "아울러 가장 아끼는 가족 같은 전공의들의 미래를 온 진심을 다해 응원한다"고 글을 맺었다.

다음은 홍 교수가 환자를 향해 적은 글 전문.

안내문

지난 2월 전공의 사직 이후 외래와 수술을 줄이지 않고 유지하였으나 24년 3월 말 사직원을 제출한 바, 4월까지 예정된 수술과 외래환자 진료만을 우선 진행하게 된 점 양해 말씀드립니다. 당분간 상담과 의학자문, 응급수술을 위한 신환 외에 기타 수술이나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신 신환분들께도 양해의 말씀드립니다.

학창 시절 남을 위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 치열하게 고민하였고 그 고민 끝에 학교 선생님, 경찰, 군인, 의사 중 의사를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때의 고민을 소중히 간직하여 제 성격과 재능에 가장 맞는 성형외과를 전공하게 되었고, 안면외상, 선천기형, 특히 제가 좋아하지만 가장 힘든 재건성형에 지난 24년간 묵묵히 종사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3명의 환자분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많은 수부 이식을 시행하게 되었고, 신경외과·이비인후과와 함께 가장 어렵고 사람을 살리는 두경부 재건, skull base 재건 등을 하여 여러 환자분들 그리고 가족분들과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의대 정원보다 전공의 수련과 교육의 질에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의대 정원 이전에 작년, 교육의 질 고려없는 전공의 정원 정책 과정을 보면서 26개 전문학회의 전문성과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들의 실망감이 너무 컸습니다. 그리고 이번 전공의 사직을 보면서 병원의 전공의 수련 1차장으로서, 학회의 수련이사로서 내부로는 나의 전공의들, 외부로는 전국의 전공의들을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정책의 다양한 의견도 있겠으나, 그 과정이 과학의 명제를 증명하는 과정만큼도 안되어 scholar로서의 괴로움도 컸습니다. 또한 전문과목의 성형외과와 진료과목의 성형외과에 대한 사람들의 혼돈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재건인 미용수술에 대한 사회의 왜곡도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지난 7년간 수술해부교육센터 위원을 맡으면서 뜻한 바 아프시면서도 치료기관에 육신을 기증하시는 분들, 그분들을 해부하고 교육받는 의대생에서부터 모든 surgeon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아픔도 잠시 접고 모든 교육이 끝날 때까지 1년 이상 기다리신 후에 화장과 함께 2번의 장례를 하시는 가족분들, 이런 모든 것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큽니다. 그러나 육신을 공유한다거나 모자라는 시신을 수입한다는 생각이 참으로 아쉽습니다. 당장 교육 후 해외에서 기증하신 분의 장례식은 저희가 어떻게 해드려야 할지부터가 염려됩니다.

한 달 이후에는 전공의 수련 1차장과 학회의 수련이사직을 내려놓습니다. 아울러 세브란스의 역량에서만 가능했던 수부 이식, 나아가 14년간 준비하고 있는 안면 이식도 여기서 중지하게 됩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극오지인 남극에서 작년까지 연구하였던 확장현실(XR)을 이용한 원격수술·협진에 대한 연구도 여기서 중지될 것 같습니다.

그동안 과분한 사랑을 주셨던 환자분들, 그리고 저에게도 가족 같은 환자 보호자분들, 믿고 따라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와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아울러 제가 가장 아끼는 가족 같은 전공의들의 미래를 온 진심을 다해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홍종원 올림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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