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국 첼시앤웨스터민스트병원 안톤 포즈니악 박사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ART)의 발전으로 HIV 치료의 초점이 '장기적 안전성'으로 이동하고 있다. ART 치료를 통해 HIV 감염인의 기대 수명이 비감염인과 유사한 수준으로 증가했고, 고령화되는 감염인의 비율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20대에 진단받아 ART 치료를 시작한 HIV 감염인은 평균 50년 이상 치료를 지속해야 한다. 이에 진료 현장에서는 바이러스 억제 효과뿐만 아니라, 고령화에 따른 동반질환 관리와 약물상호작용(DDI)을 함께 고려해 치료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HIV 치료 및 동반 질환 약제 선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상지질혈증은 HIV 감염인에서 나타나는 동반질환 중에서 가장 우려되는 질환 중 하나로, 미국 보건복지부(DHHS)는 최근 죽상동맥경화 심혈관질환(ASCVD) 관리를 위한 권고안을 발표하며, HIV 치료 과정에서 동반질환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해당 권고안의 바탕이 된 3상 임상시험 연구(REPRIEVE)에서는 스타틴제제가 ASCVD 위험도가 높은 HIV 감염인의 주요 심혈관계 사건(MACE) 위험을 낮출 수 있음이 확인됐다.
이에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는 국제에이즈학회(IAS) 회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유럽에이즈임상시험네트워크(NEAT-ID) 회장을 맡고 있는 영국 런던 첼시앤웨스터민스트병원 안톤 포즈니악(Anton Pozniak) 박사를 만나 HIV 치료 최신 지견, 동반 질환 관리의 중요성, HIV 약제 선택 시의 고려 사항 등에 대해 들었다.
- 그동안 어떤 연구 활동과 역할을 수행해왔는가?
영국에서 HIV 감염 발생이 처음 보고되기 전인 1982년부터 HIV 연구를 시작했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약 2년 동안 짐바브웨에 머무르며 연구를 진행했는데, 당시 아프리카 지역에서 HIV 발생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었다. 이후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런던에서 HIV 진료와 함께 연구 활동을 하고 있으며, 탄자니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HIV 검사 및 치료에 관한 연구(Test & Treat Project)를 총괄하고 있다.
- 오랫동안 HIV 연구와 진료를 이어 오셨다.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HIV 감염 추이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HIV 유행(epidemic)은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많은 국가에서 HIV 감염 관리가 잘 이루어지면서 지난 10여년 간 신규 HIV 감염인 수가 약 60% 정도 감소했지만, 기존에 HIV 진원지로 알려진 아프리카를 포함해 북아프리카, 중동, 동유럽 및 러시아연방 등의 지역에서는 여전히 신규 HIV 감염 발생률이 높은 상황이다.
또, 치료를 받으면서 생존하는 HIV 감염인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실제 매년 발생하는 신규 감염인 수에서 사망자 수를 제외해 살펴보면 생존 HIV 감염인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약 4,000만명 정도가 HIV 감염인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이 중 약 75%는 치료를 받고 있지만 나머지 약 900만~1,000만명은 미치료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 한국의 경우 아직 20~30대 HIV 감염인 비율이 가장 높지만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60세 이상 고령 감염인의 수가 2배 이상 증가했다. 해외에서는 고령 HIV 감염인의 건강 및 동반질환 관리를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가?
국가별로 차이는 있지만 유럽 전반에서 50세 이상 고령 감염인의 비율은 20% 정도이며, 젊은 감염인의 비중이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 영국에서는 50세 이상 감염인의 비율이 더 많아진 상황이다. 이는 ART 치료를 통해 관리가 잘 이루어지면서 HIV 감염인들이 더 오래 생존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과 같은 국가들에서 고령으로 넘어가는 감염인 인구가 상당히 증가하고 있다.
- HIV 감염인의 기대수명 증가와 고령화를 고려할 때 HIV 장기 치료 방향에 대한 최신 글로벌 컨센서스는 무엇인가?
전 세계 주요 가이드라인에서는 2세대 통합효소억제제(InSTI)를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돌루테그라비르와 빅테그라비르 성분 약제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데, 이는 복용 시 효과가 매우 우수하고, 내성 장벽이 높아 내성이 잘 발생하지 않으며, 다른 약물과의 상호작용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이 에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동반 질환 관리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했으며, 정해진 레지멘(치료법) 이외에는 의사의 재량에 의해서 자유롭게 약제 선택이 이뤄지고 있다.
2세대 InSTI 중 ‘빅타비(성분명 엠트리시타빈·빅테그라비르·테노포비르 알라페나미드)’의 경우, 주성분인 테노포비르 알라페나미드(이하 TAF)가 신장과 뼈에 대한 영향이 낮기 때문에 뼈나 신장 기능에 이상이 있는 감염인에서도 처방이 가능하다. B형 간염 동반 감염인의 경우 돌루테그라비르와 라미부딘(3TC) 병용요법(이하 돌루테그라비르/라미부딘 요법)은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TAF 성분을 포함한 치료제를 처방해야 하며, CD4+ T세포 수치가 낮거나 바이러스 농도(viral load)가 높은 감염인에게도 돌루테그라비르와 라미부딘 병용 요법은 많이 처방되지는 않는다.
- HIV 감염인의 동반 질환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HIV 감염인에서 흔 나타나는 동반질환은 비감염인과 유사하지만, 그 중 심혈관계 질환과 정신 질환 발생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이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감염인의 라이프스타일이나 빈곤 상태, 흡연 여부 등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HIV 감염 때문에 불안과 우울감이 증폭돼 질환으로 악화될 수도 있다. 또, 림프종과 같은 일부 희귀암도 HIV 감염인에서 발생률이 좀 더 높은 상황이다. 과거에는 HIV 감염과 특정 암의 발생률이 관련성이 낮다고 여겨졌으나, HIV 감염인들이 고령화됨에 따라 해당 견해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상황이다.
HIV 감염인에서 나타나는 동반질환 중 (의료현장에서) 가장 많이 걱정하는 질환은 이상지질혈증이다. 영국의 경우 전체 HIV 감염인의 약 40%가 이상지질혈증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지질 수치 문제로 인해 HIV 치료 전략과 접근 방식을 변경해야 할지 고민하는 경우도 많다.
- 최근 미국 DHHS에서 HIV 감염인 대상 ASCVD 예방 및 관리를 위한 스타틴 사용과 ART 치료 권고안을 새롭게 발표했다. 새로운 권고안의 바탕이 된 REPRIEVE 임상 연구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권고의 배경과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REPRIEVE 임상은 미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다양한 국가의 HIV 감염인 7,6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대규모 연구로, 효과가 충분히 입증돼 조기 종료됐다. 주요 결과를 살펴보면, 40~75세 사이에 경도 및 중등도 ASCVD 위험도를 가진 HIV 감염인에서 스타틴제제(피타바스타틴)을 사용했을 때 주요 심혈관계 사건(MACE) 위험을 35%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REPRIVE 임상 결과에 따르면 ASCVD 위험도가 불과 5% 이상인 HIV 감염인에게 스타틴제제를 복용하게 했더니 100명을 치료해야 1명의 MACE 발생 가능성을 막을 수 있는 수준에서 55~56명을 치료하면 1명의 MACE 발생 가능성을 막을 수 있는 수준으로 사건 발생 가능성이 크게 감소했다. 이는 10% 이상의 ASCVD 위험도를 가진 비감염인에게 스타틴 치료를 했을 때와 비슷한 치료 혜택이다.
해당 임상 결과를 바탕으로 영국을 포함한 유럽에서는 40~75세 경도 및 중등도 ASCVD 위험을 가진 HIV 감염인에서 ASCVD 관리를 위해 스타틴 치료를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미 유럽에서는 HIV 감염인의 고령화에 따라 2010년부터 스타틴 사용이 늘어나고 있었는데, REPRIEVE 임상 결과에 따른 적극적인 스타틴 치료 전략의 결과는 내년 정도에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 HIV 감염인에서 이상지질혈증이 우려될 경우 2세대 InSTI를 또다른 2세대 InSTI로 변경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단백질분해효소 억제제(PI)의 경우 증강제를 첨가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지질 수치 관련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기존에 PI로 치료를 받고 있던 감염인들도 2세대 InSTI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인데, 2세대 InSTI로 스위칭했을 때 지질 수치가 안정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연구에서 확인됐다.
이러한 이유로 PI 제제를 사용하다가 2세대 InSTI로 스위칭하는 방향은 고려해 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같은 2세대 InSTI 제제인 빅타비와 돌루테그라비르/라미부딘 요법 간 스위칭은 고려하지 않을 것 같다. 스위칭을 통해 감염인이 얻을 수 있는 치료 혜택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REPRIEVE 임상 결과에서도 확인된 것처럼 스타틴 치료를 통해 ASCVD 위험을 35% 낮추는 전략이 HIV 치료제를 바꿔서 지질 수치를 1~2% 낮추는 것보다 더 효과적임은 자명하다. REPRIEVE 임상 결과를 근거로 주요 글로벌 가이드라인에서도 권고한 것처럼 스타틴 치료를 통해 ASCVD를 관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빅타비의 경우, 5년 장기 연구 데이터를 보면, 총콜레스테롤 대비 HDL 콜레스테롤 비율이 별다른 변화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대규모 연구에서 빅타비와 돌루테그라비르/라미부딘 요법 치료를 받고 있던 감염인들을 대상으로 144주차에 약제를 서로 스위칭했을 때 영향을 살펴본 결과, 빅타비로 스위칭한 군에서는 내성이 전혀 보고되지 않았고, 돌루테그라비르/라미부딘 요법으로 스위칭한 군에서는 1~2건 정도의 내성 발생이 보고됐다. 돌루테그라비르/라미부딘 요법에서 빅타비로 스위칭했을 때 감염인들이 겪고 있던 오심과 같은 이상반응이 상당히 감소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대사 이상이나 동반질환과 관련된 지표에서 유의미한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 빅타비의 장점 중 하나로 꼽히는 관용(Forgiveness) 효과가 실제 의료진과 HIV 감염인 입장에서 어떤 치료적 이점을 줄 수 있는지 궁금하다.
연구 결과, 관용 효과로 인해 HIV 치료제를 일주일 중 4일밖에 복용하지 않아도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는 상태가 유지되는 것을 확인했다. 다만, 이는 면밀한 모니터링 하에서 이뤄진 실험으로, 절대로 환자들에게 그러한 빈도로 복용해도 된다고 권하지는 않는다. 관용 효과는 예를 들어 어떤 환자가 진료실에 와서 여행을 가기 전 약을 깜빡하고 챙기지 않았다며 걱정할 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시 약을 복용하면 된다고 안심시킬 수 있는 정도의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복약 순응도가 떨어졌을 경우, 돌루테그라비르/라미부딘 요법보다는 빅타비가 더 미검출 효과를 유지하는 데 있어 좋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 장기 효과와 안전성 측면에서 빅타비로 치료를 받고 있는 HIV 감염인의 예후와 만족도가 어떠한지 공유 부탁드린다.
빅타비는 특정 내성 변이를 보유한 감염인의 치료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FTC(엠트리시타빈) 내성을 가진 감염인에게 효과가 우수하다. HIV 감염인에서 FTC 내성은 상당히 흔하게 발생하는데, 과거에는 FTC 내성이 발생하면 약제를 바꾸거나 다른 기전의 치료제를 사용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지만, 지금은 빅타비를 하루 1회 투여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게 다.
내성 변이에도 효과가 있다는 점이 중요한 이유는, 예를 들어 라미부딘에 내성이 있는 환자에게 돌루테그라비르/라미부딘 요법을 투여한다는 것은 사실상 돌루테그라비르만 투여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그러한 복용이 괜찮은지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약물 상호작용과 관련해 누군가는 결핵(TB) 치료제와 함께 복용하는 경우를 우려할 수 있지만, 최근 연구 결과 빅타를 하루 두 번 복용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음이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외에는 우려할 만한 약물 상호작용은 없다.
때문에 내성 변이를 겪고 있거나 이로 인해 복잡한 병용 요법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에게 이 약으로 바꿔서 하루에 한 만 먹으면 된다고 권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또 빅타비 5년 장기 연구 결과, 높은 효과뿐만 아니라 단일정으로 정제 크기가 작아 편의성 측면에서도 감염인들의 선호도가 높았다.
- 새로운 HIV 약제들이 개발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투약 주기를 늘린 약제도 등장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라 보는지 궁금하다.
일부 환자들이 매일 정제를 복용하는 것을 꺼릴 때 장기지속형 제제가 좋은 옵션이 될 수 있다. 다만, 장기지속형 제제는 정맥주사제로, 주사제의 경우 병원 내원 후 보건의료 전문가에게 맞아야 한다. 주사제를 제때 맞지 않을 경우 내성 문제가 발생할 위험도 있다. 영국에서는 출시 전 제품이 동정적 사용 승인을 통해 일부 환자들에게 공급되고 있으며, 노출 전 예방 요법으로도 검토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주사제나 장기지속형 제제가 기존의 치료제를 모두 대체할 것이라 보기는 어렵고, 여러 가지 옵션들이 혼용되어 다양한 치료 요소 중 하나로 공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한국의 HIV 감염인과 의료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제 HIV는 천식, 당뇨 등 만성질환처럼 약을 복용하면서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질환이 됐다. 강조하고 싶은 점은 약을 꾸준히 제대로 복용해야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HIV 감염인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한국의 의료진들에게는 지금까지 보다 나은 HIV 감염 치료를 위해 전념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주길 부탁한다. 또한, 감염인 커뮤니티를 비롯해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협업해 HIV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줄이고, 다른 만성질환과 동등하게 여겨질 수 있도록 인식 개선에 힘써 주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HIV 감염인들의 목소리가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HIV 감염인이라는 사실만으로 가족을 이루고 인간관계를 맺는 것,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차별받아야 할 이유는 절대 없다고 전하고 싶다.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