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아웃’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들 사직도 잇따라
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 “환자 수용 여부를 떠나 위험”
응급실 일반의 채용 포함 대책 “政, 자꾸 희망 꺾고 있어”
응급의료체계에 경고등이 켜졌다. 중부권 허리 역할을 하는 대전·충청권 권역응급의료센터들의 위기가 수도권 응급실로 번졌다. 응급실 위기는 전공의들에 의존했던 대학병원 응급실부터 뒤흔들고 있다. 전공의 집단사직 이후 응급의료 현장을 묵묵히 지켜오던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번 아웃’으로 스러지면서 응급실 파행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의·정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의 사직도 잇따르고 있다. 과거 인턴과 전공의를 포함해 4~5명으로 운영되던 응급실은 남아 있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1명으로 버티고 있다. 이는 응급실 내 병상 축소로 이어졌다. 병상이 있어도 ‘전문의 부재’로 환자를 받을 수 없는 현실이다. 반면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감소했던 응급실 내원환자는 최근 들어 다시 늘고 있는 추세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이 최근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응급의료기관 408곳 중 인력 부족 등으로 응급실 병상을 축소한 곳은 지난 2월 23일 기준 6곳에서 7월 31일 24곳으로 4배 증가했다. 반대로 응급실 내원 환자는 지난 2월 58만여명에서 3월 46만여명으로 소폭 줄었다가 7월 55만여명으로 다시 늘었다.
그러나 앞으로 전망은 더 어둡다. 현장에 남아 있는 대다수 응급의학과 전문의들도 사직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에 따르면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90%는 “떠날 생각”을 갖고 있다. 대학병원 응급실 붕괴는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병상이 있어도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없어 치료 받지 못하는 응급환자가 늘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응급실 붕괴는 서울과 수도권도 예외는 아니다. 전국 수련병원 100여곳이 모두 문제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중 90% 이상은 떠날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도권 응급실에서 혼자 근무하고 있다는 이 회장은 “환자가 10~15명만 되도 제대로 받을 수가 없다. 환자 수용 여부를 떠나 정말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다.
서울과 수도권 대학병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A교수는 “최근 순천향대천안병원을 시작으로 서울까지 위기가 올라왔다. 전공의들이 빠지면서 교수들이 더는 버틸 수가 없는 것”이라며 “처음에는 2~3개월이면 되겠지 생각했지만 6개월이 넘어가면서 번 아웃이 됐다”고 말했다.
A교수는 “다른 과는 외래 등에서 환자를 줄일 수가 있지만 응급실은 오는 환자들을 자체적으로 줄일 수 없지 않나. 전광판에 병상이 비어 있으니 119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이송해 오지만 현장에서는 받을 수 없으니 구급대원들과 마찰도 발생하고 있어 답답하다”고 했다.
정부가 응급실 일반의 채용 시 인건비를 지원하고 난동 환자에 대해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응급실 대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응급의료 현장에서는 “답답하다”며 한숨만 내쉬고 있다.
이 회장은 “정부가 누구랑 논의하고 내놓은 대책인지 모르겠다. 누가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답답하다”며 “사직 전공의들이 대학병원 응급실로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아마 일반의를 뽑으려 해도 지원자가 없을 거라고 본다. 일반의가 응급실에 온다고 응급의료 환자 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몇 달 전부터 응급실은 붕괴하고 있었다. 그나마 몸으로 막아준 사람들이 있어 이 정도 버틴 것”이라며 “그런데 정부가 자꾸 희망의 의지를 꺾고 있다. 나아질 희망이 없는 무의미한 상황을 버텨낼 의지도 더 이상 남질 않았다”고 했다.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