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식학회, 서울대병원 생체간이식 건수 전년 대비 50% 이상↓
올 2월부터 전공의·전임의 사직 뒤 수술 지연돼 환자 중증도 UP
간암·간경변 환자, 치료 적기 놓쳐 상태 악화돼 간이식하는 현실
이식 후속 치료기간 2주에서 1~2달로 늘어 의료진 번아웃 가속
올해 2월 시작된 의정갈등이 실질적으로 중증질환자의 치료성적을 하락시키고 있다는 의료현장의 목소리가 나왔다. 간암, 간경변을 앓아 간이식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이 의정갈등으로 인해 수술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면서 치료 적기를 놓치고 중증도가 급격히 상승한 상태에서 간이식수술을 받으면서 생존율이 떨어지고 있고, 간이식수술을 받지 못하는 상태로 악화되기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29일 대한간이식학회가 연 추계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김석환 정보위원장(충남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은 "의정갈등이 일어난 2월부터 전공의뿐만 아니라 전임의가 사직하면서 학회 차원에서 전국 생체간이식 증감률을 조사해본 결과, 2023년엔 거의 월별 90건 이상이 이뤄졌지만 2024년에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라며 이같은 현실을 지적했다.
김석환 정보위원장은 "실질적으로 생체간이식수술 건수가 최대로 많이 줄었던 게 (올해 3월) 37%"라며 "실질적으로 이식을 꼭 받아야 되는 환자가 지속적으로 수술이 연기되는 문제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고 의료현장의 현실을 짚었다.
의료기관 별로 따지면 더욱 심각한 곳도 있다. 간이식학회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의 생체간이식 건수는 2023년 3~6월 총 34건이었지만, 올해 동기간에는 16건으로 50% 넘게 줄었다. 전남대병원은 지난해 3월부터 6월까지 1건에서 4건으로 증가하던 생체간이식 수술 건수가 올해 0건으로 셧다운됐다.
간이식수술을 집도하는 대학병원 교수진이 의료현장에 남아있는데, 간이식수술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정보위원장은 "간이식은 외과만이 아니라 내과의 서포트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전체적인 과의 서포트가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외과 의사가 수술을 적극적으로 한다고 해도 후속 관리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 실질적으로 수술 건수를 더 늘릴 수는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경증 수술 환자가 줄고 중증 수술 환자 비율이 늘면서 오랜 시간 진행되는 간이식수술 같은 중증질환수술에 투입할 마취과 의사도 부족해진 점도 현재의 간이식 지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석환 정보위원장은 "이번 설문조사에서 어떤 병원 같은 경우는 생체간이식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기로 한 대학병원도 존재할 정도로 현재 전국적으로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다"며 "서울의 빅5병원 중에서는 생체간이식수술 대기가 6개월 이상 또는 1년 이상 밀려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까닭에 치료 적기에 수술받기 위해 간암이나 간경변 환자들이 서울의 빅5병원에서 간이식수술을 받기를 포기하고 지역에 내려가는 경우도 있지만, 지역으로 가도 간이식을 적기에 받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간이식학회 양광호 균형발전위원장(양산부산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은 "서울처럼 6개월에서 1년 정도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지만, 생체간이식이 로딩이 많은 상황이라 전반적으로 좀 많이 지체되고 있고, 심한 경우 생체간이식프로그램이 셧다운되는 대학병원도 있다"고 짚었다.
이런 까닭에 간이식수술 대기 중 실제로 생명을 위협받는 간암, 간경변 환자도 늘고 있다.
김 정보위원장은 "요즘 중증 환자도 이송이나 전원이 굉장히 어렵다"며 "현재 모든 대학병원에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에 올 수 있는 인원이 거의 다 찼기 때문에 어느 지역 대학병원에서 인력 부족이나 시설 부족으로 인해 더 나은 시설이 있는 병원으로 전원하려고 해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생명을 위협받는 환자가 늘고 있는 상황을 설명했다.
의료공백을 촉발한 의정갈등이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국내 간암, 간경변 환자의 치료성적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석환 정보위원장은 "이 갈등이 계속되면 나중에 통계가 나오겠지만 그에 따른 환자의 생존율이 감소될 수밖에는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고 말했다.
간이식학회 이광웅 회장(서울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도 "생체간이식에 제일 많이 차지하는 부분이 간암인데, 간암 같은 경우는 이식을 못 한다고 해서 당장 죽지는 않지만 적절한 시기에 빨리 받아야 성공률도 올라가고 암이 재발하지 않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암이 진행돼 이식을 못 받는 경우도 있다"며 "이런 환자 사례는 통계에 잡히기도 힘든 숫자"라고 짚었다.
현재의 의정갈등으로 빚어진 생체간이식 수술 지연은 환자의 피해만으로 끝이 아니다. 수술 지연으로 인해 상태가 악화된 상황에서 간이식을 받게 되면서 후속 치료기간이 2~4배 길어져 의료비용을 늘리고 있는 데다, 전공의와 전임의가 빠져나간 자리를 메우고 있는 교수진의 업무 로딩을 더욱 가중해 국내 의료의 지속가능성도 위협하고 있다.
이광웅 회장은 "정상적으로 수술을 했다면 2주만 입원하면 될 것을 상태가 안 좋은 상태에서 수술해 한 달, 두 달 입원하게 되면서 전체적으로 의료비용도 증가하게 되고, 의료진의 탈진 상태가 더 증가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되고 있다"며 의정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 사태가 중증질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지는만큼 이번 사태의 해결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