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어렵고 면역억제제로는 효과 없어…사망률 18% 중증 질환
‘리툭시맙’ 그나마 효과…부작용으로 폐 망가지면 고스란히 '비급여'
까다로운 급여기준에 번번이 삭감…MRI 촬영 필수지만 본인부담

전체 사망률은 18%, 3년 내 90%의 환자가 사망할 정도로 치명적인 류마티스 분야 희귀중증난치질환이 있다. 바로 'ANCA 연관 혈관염'이다.

'ANCA 연관 혈관염'이란 ANCA(antineutrophil cytoplasmic antibody, 항중성구세포질항체)라는 항체가 혈관에 존재하다가 면역조절의 이상이 발생하면서 혈관벽을 공격하여 염증을 유발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주로 작은 크기의 혈관을 침범하며 폐, 신장, 심장, 신경과 같은 주요 장기를 침범해 손상을 유발하기 때문에 늦게 진단되거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 생명이 위험하고, 폐이식이나 투석, 신장이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희귀질환으로 등록돼 있지 않아 희귀질환 혜택을 받을 수 없으며, 암 환자는 아니지만 고가의 항암제들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까다로운 급여기준으로 인해 효과가 있는 항암제 '리툭시맙'은 상당 부분 비급여로 처방되고 있다. 

대한류마티스학회가 지난 25일 '류마티스 질환 진료 사각지대 대비책은 있는가'라는 주제로 개최한 의료정책 심포지엄에서 '류마티스 희귀중증난치질환 치료의 현실적 어려움'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세브란스병원 류마티스내과 이상원 교수는 ANCA 연관 혈관염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처한 안타까운 현실을 지적했다. 이상원 교수는 국내에서 몇 안되는 ANCA 연관 혈관염 분야 전문가다. 

이상원 교수에 따르면 ANCA 연관 혈관염은 ▲현미경적 다발혈관염(microscopic polyangiitis) ▲웨게너 육아종증(Wegener granulomatosis)으로 불리던 육아종증 다발혈관염(granulomatosis with polyangiitis) ▲척-스트라우스 증후군(Churg-Strauss syndrome)으로 불리는 호산구성 육아종증 다발혈관염(eosinophilic granulomatosis with polyangiitis) 등 크게 3종류로 분류된다. 

현미경적 다발혈관염은 국내 환자수가 1,000명이 조금 안되는 것으로 추정되며 육아종증 다발혈관염은 135명으로 예상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두 혈관염을 합한 환자수가 1,341명이었으며, 그 중 323명의 환자가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ANCA 관련 혈관염을 진단하는 검사 방법은 없다. 숙련된 전문가가 문진과 신체검사, 혈액검사, 영상검사, 조직검사의 결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진단한다. 때문에 이를 진단하기까지 적지 않은 노력과 시간이 소요된다. 

이상원 교수는 "암이나 종양 같은 경우 영상 검사를 통해 진단할 수 있지만 ANCA 연관 혈관염은 다양한 분류기준을 적용해야 하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들이 요구된다"면서 "환자 외래평가를 통해 활성도, 손상도, 기능 정도를 평가하는데 한명당 20분 정도 걸리고 6개월에 치료가 잘되는지 복잡한 가이드라인을 갖고 평가해야 하는 진단이 쉽지 않은 질환"이라고 설명했다. 

세브란스병원 류마티스내과 이상원 교수
세브란스병원 류마티스내과 이상원 교수

이 교수는 그러나 "기본적으로 부신피질호르몬(스테로이드)과 면역억제제(싸이클로포스파마이드 등)를 처방하지만 중증일 경우 항암제를 써야만 낫는데 항암제를 쓰는 비율이 높다보니 약제에 대한 부작용 비율이 굉장히 높은 편"이라며 "세브란스병원 코호트에 따르면 3년 이내 사망하는 비율이 90% 이상이다. 폐에 출혈이 있는 환자들의 경우 상태가 나빠지면 폐렴이 악화돼 리툭시맙이 보험적용이 안된다. 그렇게 되면 한달에 450만~500만원 가량의 약값을 환자가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급여기준에 대한 현실적인 적용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고용량의 스테로이드 등 표준치료에 불응하거나 재발하는 경우 또는 주요 장기를 침범하여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인 경우 리툭시맙을 보험적용 하지만 이같은 급여기준 탓 실제로는 상당 부분이 삭감되고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이 교수는 특히 "해외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리툭시맙 이외 두가지 치료제가 더 있다. 하지만 이들 약제들은 국내에는 들어올 생각을 안하고 있다"면서 "가이드라인에 있는 약물들을 급여로 전환하고 새로운 약물의 빠른 허가와 약가 및 급여기준 정립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질환의 경우 뇌나 심장 혈관에 염증이 있는지 여부는 MRI를 촬영하지 않을 수 없는데 현재 이들 촬영은 다 비급여 행위로 분류돼 있다"면서 "정확한 진단을 위한 영상 촬영 항목은 급여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러한 현실이 앞으로는 더 가속화될 상황이라는데 있다. 류마티스 분야 희귀중증난치질환에 ANCA 연관 혈관염 이외에도 한랭글로불린혈증성 혈관염, 성인형스틸병, 루푸스, 강직성 척추염 등이 있지만 향후 몇년 뒤에는 이들 질환을 진단 및 치료해줄 전문가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현재 목포, 여수, 경주, 김해 등 14개 도시에는 인구 20명당 류마티스내과 전문의가 단 한명도 없다. 김포, 춘천, 강릉, 의정부 등 15개 도시에는 20만명당 3명 이하에 불과하다. 

류마티스학회 윤종현 의료정책이사에 따르면 신규 류마티스내과 전문의수는 2022년 17명, 2023년 14명, 2024년 단 5명에 불과하다. 분과전문의 시험 예정자조차 2025년 10명, 2026명 5명이다. 2027년에는 의대정원 사태로 전공의 배출이 안돼 지원자가 한명도 없다. 

윤 교수는 "현재의 지원정책이 술기나 검사 중심으로 이뤄지다보니 정책지원에서 소외되기 일쑤고 환자교육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면서도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진료비 탓에 경영에는 도움이 안되다보니 류마티스내과를 지원하려는 의사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이날 윤 교수는 '필수의료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류마티스 질환'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10조 이상 투입되는 지역 필수의료정책패키지에 류마티스 질환에 대한 지원 부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며 "중증희귀질환분야에 대해서는 공공정책수가를 신설해 해결해주겠다고 했지만 중증희귀질환에 류마티스 질환은 포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윤 교수는 "류마티스질환은 대부분 만성 희귀중증난치질환이다. 조기진단 및 정확한 치료가 되면 장애를 예방할 수 있다"면서 "의료개혁 및 필수의료 지원정책에 류마티스내과 지원방안을 포함하는 것은 물론 희귀중증난치질환의 특성에 맞는 맞춤 대책과 가칭 류마티스질환 관리위원회를 설립해주길 바란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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