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학회, 학술대회 중 정책세션 열고 고가항암제 급여 개선 촉구
CAR-T 치료제 급여기준 모호…심평원에 명확한 급여기준 요구
급여기준 맞추려 효과 없는 치료 계속해야 하는 현실…자괴감 들어

백혈병, 림프종, 다발골수종 등 혈액암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들이 효과가 좋은 치료제를 빠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고가항암제 접근성 개선을 촉구했다. 이를 위해 학술대회에 정책세션을 최초로 마련하고 의사, 학계, 정부 관계자를 초청해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대한혈액학회 김석진(삼성서울병원) 이사장은 지난 15일 롯데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추계학술대회에서 처음으로 마련된 정책세션에 대한 의미를 설명했다. 

김석진 이사장은 "혈액암 환자들의 경우 기존 약보다 효과가 좋은 치료제의 접근성에 있어 제약이 너무 많다"며 "외국에서는 이미 표준치료의 한 축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도입되지 않았거나 들어왔어도 보험이 안 돼 고비용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약들이 굉장히 많다"고 했다. 

김석진 이사장은 "약이 있는 걸 알면서도 국내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는 이러한 현실적인 장벽이 너무 안타깝다.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을 보며 의료진들도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며 "어떻게 하면 이러한 어려움을 타개하고 개선할 수 있는지 머리를 맞대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허가 및 급여 과정에 대한 정책세션을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들이 가장 문제로 지적하는 부분은 효과적인 치료제를 제때 쓸 수 없는 급여 환경과 모호한 급여기준으로 삭감을 무릎쓰고라도 치료제를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 중 하나가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DLBCL)에 쓰이는 CAR-T(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 치료제다. 

전북대병원 임호영(혈액종양내과) 교수는 CAR-T가 급여 가능해졌지만 급여 기준이 전문가들조차 봤을 때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했다. 

임호영 교수는 "국제가이드라인은 마지막 치료를 마치고 1년 이내에 재발한 경우 CAR-T를 하는 게 우월하다고 돼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두 번째 재발이 있은 후, 즉 세 번째 치료에 사용할 때 급여해주고 있다"면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치료 사이에 병이 진행했다, 두 번째 약제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기준 자체가 굉장히 애매모호하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직접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의사가 보는 반응하지 않는다의 개념과 심평원이 판단하는 반응하지 않는다의 개념간 괴리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임 교수는 '약제에 반응하지 않는다, 병이 진행했다'는 것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지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만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설명을 요청해도 '충분히 치료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응이 없었던 것이니 급여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만 반복적으로 듣고 있다고 했다. 결국 기존 치료제에 반응이 없다는 판단하에 CAR-T 치료제를 쓰면 고스란히  삭감이 이뤄진다고도 했다. 

임 교수는 "제 다발골수종 환자분 중 조혈모세포 이식을 해야 되는 상황이어서 조혈모세포 이식을 했고 이후 유지 요법을 통해 지금은 너무 행복하게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분이 있는데 결국 급여에서 인정을 받지 못해 삭감이 떨어진 사례가 있다"면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했던 일인데 병원에서 어려운 상황에 놓이다보니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보통이 아닌데 이런 것까지 저희가 감당해야 되는지 자괴감을 느낄 때도 많다"고 토로했다.

임 교수는 "학회에서 세계 석학들의 의견을 토대로 심평원에 삭감을 피할 수 있는 명확한 문구를 달라고 요청해놓은 상태"라면서 "더 바라는 것은 세계의 추세대로 두 번째 치료 후 1년 이내에 진행하거나 재발한 경우 림프종에서  CAR-T 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서울아산병원 김혜리(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교수도 "첫째 치료에 안들어 두번째 치료를 시작했는데 두번째 치료 한 사이클(3개 사이클 중)하고 환자의 병이 진행했다면 의사나 환자 입장에서는 치료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런데 심평원에서는 한 사이클만 했기 때문에 충분한 치료가 되지 않았다고 보고 삭감을 한다"면서 "환자가 눈 앞에서 악화되는 것을 보면서도 급여기준을 맞추기 위해 듣지 않는 치료를 두세번 해야 되는 건 말이 안된다"고 했다.

혈액질환에 신약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중증암질환심의위원회를 매번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해 암질심에 혈액분야 전문가들을 더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고형암과 혈액암으로 나누는 방안에 대한 의견도 제기됐다. 

혈액학회 김석진 이사장은 "지난 7월 이주영 의원실과 정책토론회 당시 혈액암 환자들의 신약 접근성을 좀 개선해 달라는 차원에서 혈액암에 전문화된 기구에서 현장에서 필요한 약제를 심사할 수 있도록 건의한 바 있다"며 "재작년부터 계속 심평원에 공문도 보내고 의견을 피력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불가하다는 게 심평원의 입장"이라고 전했다. 

한편, '고가 항암치료약제 도입 및 급여에 대한 다각적 접근'을 주제로 한 정책세션에 참석한 심평원 김국희 약제관리실장은 암질실 분리와 관련 "암종별로 구분하는 게 좋을지 고민을 해봤지만 암질심이 항암제 전반에 대한 평가를 하는 곳이라 구분하지 않고 전문적인 검토가 필요하면 소위원회나 자문위원회를 별도로 운영하기로 했다"며 "더욱이 지난 2월 새로이 꾸린 암질심에는 혈액암 분야 위원을 두명 추가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석진 이사장은 "10기 암질심 위원은 43명으로 이 중 2명이 혈액암 분야에서 추가된 것은 맞지만 현재 총 7명으로 한명은 심평원 소속으로 대학 6명 중 한명은 종양에 더 치우쳐 사실상 5.5명에 불과하다"며 "지난 2년간 혈액암 분야에서 36건, 고형암 분야에서 58건을 심의했다. 전문 분야로 더 들어가면 소아암 2명, 백혈병 1명, 림프종 2명, 다발골수종 3명이다. 이 구성으로 혈액암을 적절하게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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