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홍 소아청소년과 교수, 지난 9월 심평원 급여기준소위원회 참여
전문 의료진으로 위원회 위원들에게 'PFIC' 미충족 의료 수요 설명
장간순환 막혀 간 망가지는 PFIC에 영유아 간이식 막을 신약 등장
PFIC신약 '빌베이', 환아 성장장애 초래하는 소양증 억제 효과 입증
국내 허가 '소양증 PFIC'에만 나…소양증 없이 간 망가지는 환아 有
허가부터 문제…간손상·소양증 하나만 문제여도 신약 쓸 수 있어야
약 급여 지속, 간손상·소양증 지표 하나만 개선돼도 가능한 환경 必
극심한 가려움 때문에 생후 12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주 조그마한 아이에게 대수술인 '간이식수술'을 할 수밖에 없는 희귀 간질환이 있다. 우리 몸에서 음식물의 소화·흡수에 깊히 간여하는 '담즙'의 장간순환이 막혀 간이 망가지고, 이로 인해 극심한 소양증(가려움증)을 유발해 성장발달에 문제를 초래하는 유전성희귀질환 '진행성가족성간내담즙정체증(PFIC, Progressive Familial Intrahepatic Cholestasis)'이 그것이다.
국내 두 자릿수 환자가 예측되는 극희귀질환 PFIC은 유전자 돌연변이 탓에 담즙 배출에 관여하는 단백질 문제로 초래되는데, 이제까지 병으로 인해 '간이 망가졌을 때'나 '간이 아직 망가지지 않아도 아이가 극심한 가려움으로 성장장애가 초래되고 일상을 이어갈 수 없을 때'의 유일한 대응 무기는 아이의 작은 간을 떼어내고 다른 사람의 간을 넣어주는 '간이식' 이외엔 없었다. 수술 뒤 평생 면역억제제를 써야 하는 '간이식' 말이다.
PFIC에 새 치료법이 등장한 것은 지난 2021년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입센의 IBAT(Iieal Bile Acid Transporter, 회장 담즙산 수송체) 억제제 ‘빌베이(성분명 오데빅시바트)'가 허가된 것이다. IBAT억제제는 말 그대로 장에서 재흡수를 통해 담즙이 계속 순환되는 것을 막아 간손상을 막는 약제로, 혈액 중에 돌아다니는 담즙산(Bile Acid) 농도를 직접적으로 떨어뜨려 주기 때문에 가려움도 해결해준다.
이제까지 PFIC은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해서 '새로운 차원의 병'을 얻는 것과 다름 없는 간이식수술만이 대안이었는데, 매일 먹는 약으로 간손상을 막고 가려움증을 해결할 길이 열린 것이다. 국내에서 혁신성을 인정받은 빌베이는 지난 2023년 보건복지부 ‘허가-평가-협상 병행 시범사업’ 1호 품목으로 선정돼 지난해 8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고, 곧 급여를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대에 올랐다.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고홍 교수는 그 일환으로 지난 9월 열린 심평원 급여기준소위원회 회의에 참여해 PFIC과 현재 PFIC 미충족 의료 수요, 빌베이가 메울 수 있는 미충족 의료 수요 영역에 대해 약 1시간 30분을 설명했다. PFIC으로 잠 못 이루고 괴로워하는 아기들의 치료환경이 크게 변화될 것이라는 그의 기대는 곧 깨졌다. 그의 말이 끝난 뒤 심평원 직원이 정리해 발표한 내용이 전문 의료진인 그의 의견과 많이 달랐던 것.
고홍 교수는 "그때 드는 생각이 '요식행위였구나'라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더니 그만 나가달라고 해서 회의실을 나왔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그를 회의실 밖으로 안내한 심평원 직원을 붙잡고 "빌베이 급여 기준이 그렇게 결정되면 안 된다"고 말했지만, 그 직원은 자신은 권한이 없다고 답한 뒤 다시 회의실로 돌아갔다. 그 다음날부터 고홍 교수는 이제껏 심평원에 10여통의 전화를 600여분간 했다고 한다.
심평원이 급여기준소위원회에 정리해 발표한 대로 빌베이 급여 기준이 결정되면 신약이 있음에도 결과적으로 속수무책으로 간이식수술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PFIC 환아들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고 교수 추정에 따르면, 당시 심평원 안대로 빌베이 급여 기준이 정해지면 PFIC 환자 10명 중 1명만이 급여로 약을 쓸 수 있고, 나머지는 간이 나빠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간이식을 하거나 연간 2억~3억 원을 내고 빌베이를 써야 한다.
사실 고 교수는 빌베이 국내 허가에서부터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빌베이 국내 허가는 소양증이 있는 생후 3개월 이상 PFIC 환자에게 쓸 수 있게 돼 있다. 고홍 교수는 "빌베이 연구의 최종 목표가 소양증 개선이었기 때문인데, 유럽은 소양증과 관계 없이 허가돼 PFIC 진단만 되면 쓸 수 있다"며 "미국은 연구 문헌을 참고해 보수적으로 소양증이 있는 PFIC 환자에게 허가했는데, 우리나라도 결국 미국을 따라 간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나 빌베이는 PFIC 환자의 소양증만 개선하는 약이 아니라, PFIC 환자의 간 손상을 막아줄 수 있는 약이기도 하다. 고 교수는 "소양증이 있는 PFIC 환자만 쓸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은 문제가 있다"며 "간은 나빠지지만 소양증이 없는 PFIC 환자도 있다. 간손상을 막을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을 못 쓰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 당면한 문제는 빌베이 급여인데, 고흥 교수는 "이대론 용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유전자형에 따라 현재 9개 형으로 나뉘는 PFIC 중 심평원 안에서 빌베이 급여는 1형·2형 PFIC 환자만 가능하다. PFIC 중 1형·2형이 가장 증상이 심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1형·2형 PFIC 환자 모두에게 빌베이 급여 치료가 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 이들 중 혈액 내 담즙산 농도가 100μmol/L 이상(정상 수치 0~6.0μmol/L)이면서 중등도 이상의 소양증이 있을 때에만 빌베이를 급여로 쓸 수 있게 돼 있다는 것이다.
빌베이 급여 첫 문턱을 넘기도 어렵지만 더 문제는 급여 문턱을 넘은 환자의 급여 지속 기준이라고 고 교수는 지목한다. 고홍 교수는 "현재 빌베이 급여 지속을 위한 재평가 기준이 간손상 지표와 소양증 지표 모두를 개선해야 하는 것으로 돼 있다"며 "혈액 내 담즙산 농도가 70% 이상 감소하면서 소양증 척도 점수가 같이 떨어질 때에만 급여 치료를 지속할 수 있고, 나머지는 약을 중단해야 한다"고 짚었다.
모든 약은 환자마다 반응이 다른데 심평원 안대로이면 약효가 분명한데도 약을 끊어야 하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고 교수는 "혈액 내 담즙산 농도가 개선되는 것 자체도 간손상 억제를 보여주므로 PFIC에 치료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지금 심평원 안대로면 소양증 정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약을 끊어야 한다. 또 소양증이 크게 개선돼도 간손상 수치가 심평원이 설정한 기준 대로 떨어지지 않으면 약을 못 쓴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고홍 교수는 "건강보험 재정 압박이 있더라도 치료가 꼭 필요한 PFIC 환아는 약을 쓸 수 있게 해줘야 간이식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며 "다른 것이 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빌베이 급여 지속 기준이 간손상이나 소양증 중 한 가지만 개선돼도 쓸 수 있게 설정돼야 어렵게 얻은 치료 기회를 쉽게 잃지 않는다. 이렇게 바꿔도 10명 중 2명의 환자만 빌베이를 쓰는 격인데, 이마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