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칭 ‘내분비희귀질환재단’ 설립 추진…2032년 창립 50주년 비전 일환
정윤석 이사장 “급여 범위 확대 등 환자 위한 대외적 활동 강화하겠다”
“제 환자 중 대퇴골 골절로 걷기조차 어려운 환자가 있었어요. 온갖 검사를 다해봤지만 원인을 찾지 못한 채 저에게 오셨는데요. 유전자검사를 해보고 저인산효소증(Hypophosphatasia)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저인산효소증은 아스포타제 알파(asfotase alfa)라는 치료제가 있지만 성인은 건강보험이 안되다보니 1회 주사에 수백만원, 주1회 1년이면 1억원이 넘는 약값이 들어가요. 효과는 매우 좋아요. 하지만 이 비싼 약값을 부담할 수 있는 환자가 얼마나 될까요. 눈앞에 치료제를 두고도 돈 때문에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환자들, 이들에 대한 국회, 언론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대한내분비학회 이사장에 취임한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정윤석 교수가 최근 기자와 만나 강조한 말이다.
정윤석 교수를 찾아온 50대 환자는 특별한 이유 없이 대퇴골이 골절됐다고 했다. 검사란 검사는 다 해봤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고. 정 교수는 30대에 아무런 이유 없이 치아가 빠졌었다는 이야기에 주목했다. 환자에게 유전자검사를 권했고, 검사결과 그는 저인산효소증으로 확진됐다.
저인산효소증은 조직비특이적 알칼리인산분해효소(tissue non–specific alkaline phosphatase) 유전자 돌연변이로 발생하는 골대사 희귀질환이다. 유병률은 100만명당 1.2명. 일반적으로 영아 및 소아에서 발현되지만, 증상이 발현된 때 진단을 받지 못하거나 유전자 변이로 나타나는 질환인 만큼 성인이 되어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젊은 연령에서 치아소실과 비타민 B6 증가 등의 징후를 보인다. 성인의 경우 대부분 중년기에 진단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명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원인도 모른 채 반복되는 골절로 보행장애는 물론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다보니 삶의 질이 매우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정 교수의 설명이다.
치료제로는 아스트라제네카의 ‘아스포타제 알파(asfotase alfa)’가 있다. 아스포타제 알파는 주산기, 영아 및 청소년기에 발병한 저인산효소증 환자의 치료를 위해 승인된 약제로, 골무기질화(bone mineralization)에 걸리는 시간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소아기(주산기, 생후 0~6개월 영아기 및 생후 6개월~만18세 청소년기)에만 장기간 효소 대체 요법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다.
정 교수는 “아스포타제 알파 주사제의 경우 성인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1회 수백만원을 내고 주 1회, 1년 정도 맞아야 한다. 1년이면 약값이 1억원 이상이다. 그런데 1억원 이상 약값을 지불할 수 있는 환자가 얼마나 되겠냐”면서 “치료제가 있음에도 돈 때문에 쓸 수 없다보니 환자나 가족들에게 더 고통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결국 정 교수는 환자의 약값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해외 논문을 리뷰, 투약 간격을 조절하기로 했다. 일정기간은 주 1회 투여하되 뼈가 붙고 나면 2주나 한 달에 한 번으로 유지요법을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정 교수에 따르면 생명을 위협하는 골대사 희귀질환도 있다. 진행성골화성섬유이형성증(Fibrodyplasia ossificans progressiva·FOP)이 그것이다. FOP라고 불리는 진행성골화성섬유이형성증 발병률은 200만명 당 1명이다. 근육 피로, 경미한 외상, 근육 주사 또는 인플루엔자 유사 바이러스 질병 후에 나타나는 경우가 흔하며 엄지발가락 기형이 가장 많다. 20~30대 젊은 나이에 심폐 합병증으로 사망할 수 있다. 연조직(힘줄, 혈관 등)의 골화로 심장 근육이 굳어져 숨을 쉴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치료제로는 2020년 미국 FDA 승인을 받은 RARγ 효능제인 팔로바로텐(palovarotene)이 있다. 이는 레티노이드 신호전달 경로와 레티노산수용체감마(retinoic acid receptor gamma·RARγ)의 활성화를 통해 연골 형성 및 이소성 연골 내 골화(heterotopic endoꠓchondral ossification·HEO)를 억제한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프랑스 제약기업인 입센 코리아가 도입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저인산효소증이나 진행성골화성섬유이형성증은 그나마 치료제라도 있지만 치료제가 없는 질환들도 많다. 골형성부전증(Osteogenesis imperfecta)이나 골화석증(Osteopetrosis) 등이 대표적이다.
골형성부전증은 골이 매우 약해 쉽게 골절되는 유전성 질환으로 2만명 당 1명 꼴로 발생한다. 질병관리청 희귀질환 통계에 따르면 2006년 기준 약 285명의 환자가 등록돼 있다. 2019년 신규 등록자수는 남녀 각각 24명으로 총 48명이다.
발생 기전은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제1형 콜라겐(type I collagen)의 유전자(COL1A1과 COL1A2)의 하나 혹은 그 이상의 결함에 기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블루 스쿨레라(청색공막)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며, 근본적인 치료방법은 아직 없다. 골절의 횟수를 감소시키고 장골의 변형과 척추후측만을 예방하며, 통증을 완화해 환자들의 운동 기능 제한을 최소화시켜주는 방법이 대체적으로 활용된다. 이를 위해 약물 치료, 수술적 치료, 물리 치료 등의 통합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골화석증은 파골세포의 이상으로 골 흡수작용의 손상이 특징인 임상증후군이다. 골흡수의 감소로 골밀도가 증가함에도 골절이 쉽게 발생한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암이나 희귀질환에 산정특례제도가 도입돼 있고 최근 들어 유전자검사에 선별급여가 적용돼 환자들의 부담이 50% 줄어든 것은 다행”이라고 했다. 질환별로 보면 환자수가 적어 건강보험 재정 소요가 크지 않은 것은 맞지만 모든 희귀질환을 보장하려다 보면 재정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내분비학회는 내분비희귀질환재단 등 사회공헌재단을 설립해 희귀환자들이 약값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이는 지난해 내분비학회가 창립 40주년을 맞아 발표한 ‘2032년 창립 50주년 비전’에도 포함돼 있다. 정 교수는 이사장 임기 2년간 희귀질환 환자들을 지원하는 사회공헌재단 설립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재단 설립을 통해 내분비계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지원할 수 있는 기금을 조성,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연간 약제비를 일정 부분 지원해주거나 재단이 제약사와 협의해 일정기간 무료로 지급해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했다.
특히 현재는 소아로 급여가 국한돼 있는 저인산효소증과 같은 치료제의 급여범위를 성인으로 확대, 보다 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대외적으로 목소리를 내겠다고 언급했다.
정 교수는 “임기 2년간 내분비학회가 환자들을 위한 사회공헌 사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자 한다”며 “의사들이 잘할 수 있는 것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다. 하지만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사회와 연결해주고 정책적으로도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 이같은 역할을 내분비학회가 하겠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 전세계 유전성 망막질환 치료제 개발 활발…문제는 ‘접근성’
- 이탈리아 제약사 '레코르다티', 국내 희귀질환 치료제 시장 진출
- [헬스로그 명의] 고난도 신경모세포종 치료 성적, 70%까지 끌어올렸다
- 농구스타 김영희씨 별세…그가 앓던 희귀질환 말단비대증은 어떤 병?
- 뼈가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골다공증’ 공포
- 신경내분비 종양, 전이 잘 된다?…'신경내분비 종양' 오해와 진실
- 갈색세포종 환자의 ‘테이블 데스’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 서울아산병원, 美 뉴스위크 병원 평가서 세계 29위·국내 1위 랭크
- 암협회, 21일 '암 예방의 날' 맞아 암 경험자 위한 콘서트 개최
- 다케다제약, 희귀난치질환 가족과 함께 하는 엔젤스푼데이 개최
- "희귀질환 맞지만"…국가 정책 지원 첫 관문 '희귀질환 지정' 구멍 드러나
- 암도 아닌데 걸리면 10명 중 4명은 5년 내 사망한다는 ‘이 병’
- [칼럼] 몸 속에 ‘인’이 부족하다? ‘저인산혈증’이 가져올 변화들
- [칼럼] 2만분의 1 극희귀질환 'X-염색체 연관 저인산혈증’
- 저인산효소증 앓고 있는 환자들 뭉쳤다…'저인산효소증환우회' 발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