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4시간 이상 오직 한 가지 일만 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이 일을 하면 1년에 단 사흘 밖에 쉬지 못한다. 제대로 잘 수도, 먹을 수도 없고 아파도 안 된다.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 이들의 이름은 '중증 소아청소년 환자 의 보호자'다.

지난 2020년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민선 교수가 중증 소아청소년 환자 보호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돌봄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하자 사회는 경악했다. "2020년 대한민국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냐"는 탄식이 나왔다.

조사에 참여한 보호자 82.9%가 1년에 단 나흘도 쉬지 못한다고 답했다. 보호자들은 아이 간병에 하루 평균 14.4시간을 쏟았다. 이들이 쓸 수 있는 개인 시간은 단 2.4시간에 불과했다. 수면시간은 5.6시간에 그쳤다. 그나마도 토막잠을 잤다. 환자를 돌보느라 72.9%가 다른 자녀나 가족을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단 하루라도 이들을 대신할 사람이 없다. 보호자 87.6%가 대체할 간병인이 없다고 했다. 활동보조인 제도가 있지만 소아 환자를 맡겠다는 사람은 구하기 어렵다. 또 원칙적으로 활동보조인은 석션이나 위관영양을 할 수 없다. 그나마도 6세 미만은 제도 이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미비한 제도와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하루 "재난을 겪어내야 하는" 중증 소아 환자 가정을 위해 오는 10월 국내 첫 단기 돌봄(respite care) 전문 시설이 문을 연다. '서울대병원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도토리하우스)'다. 지금까지 가정이 감당한 돌봄 부담을 완화하고 "보호자에게 쉼을 제공한다"는 목표로 설립했다. 넥슨재단과 보건복지부가 지원한다.

'국내 첫 시도'라는 말처럼 단기 돌봄은 우리 사회에 아직 생소한 개념이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이 소아청소년 의료 체계에 단기 돌봄을 기본적인 기능으로 둔 것과 비교된다. 서울대병원은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가 단기 돌봄이 자리잡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이에 지난 25일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김민선 교수를 만나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 설립 의미와 앞으로 활동 방향에 대해 들었다.

- 돌봄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의료기관 입장에서 우선순위로 두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서울대병원이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이하 도토리하우스)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소아완화의료와 소아재택의료 사업을 하면서 환자 가정 대상으로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보호자들이 '쉼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어머니 상(喪)을 못 챙겼다는 분도 있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싶은 극단적인 사례지만 중증 질환 어린이가 있는 가정에서는 일상이다. 막연하게 알고는 있었지만 당사자를 만나고 설문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 도토리하우스가 어린이는 물론 '보호자'에도 방점을 둔 이유가 이 때문인지.

아이를 돌보느라 보호자들은 스스로를 돌볼 여건이 안된다. 입원 상담을 하면 부모들이 '그럼 저도 그때(아이가 입원한 동안) 수술 좀 받고 오겠습니다'라고 한다. 보호자가 쉴 수 있는 시간은 아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뿐이다. 완화의료와 재택의료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중증 소아 환자 가정에 정말 필요한 건 '쉼' 그 자체였던 거다. 처음 이걸 깨닫고 너무 속상했다. 방법이 없을까 연구하고 해외 사례를 찾다가 우리도 소아 의료 분야에 '단기 돌봄'을 도입해야겠다 싶었다.

- 이런 필요와 요청에 보건복지부와 넥슨재단이 나서면서 도토리하우스는 병원과 정부, 기업이 함께 하는 프로젝트가 됐다.

정말 감사하게도 일이 잘 풀렸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다. 먼저 장애아동 지원 사업을 하는 넥슨재단과 연결돼 100억원을 지원받았다. 정부에 민관 합동 사업을 제안해 중증소아 단기입원서비스 시범사업을 만들고 어린이병원 예산으로 25억원이 나와 국내 첫 번째 단기입원 전문 시설을 세우게 됐다. 처음 넥슨재단에 말한 비용은 50억원이었는데 규모가 커지게 됐다. 오는 10월이면 문을 연다.

- 소아 의료는 '만년 적자'에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도토리하우스 운영 비용이나 인력 현황은 어떠한가.

복지부 시범사업이 생기면서 의료 상담을 포함해 수가가 들어왔다. 이번에 시작한 어린이 공공진료센터 사후보상 시범사업 대상에도 포함됐다. 하지만 행위별 수가를 기준으로 하고 사후보상은 의료적인 영역만 적용되므로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물품 지원은 병원 후원금에 의지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병원에서 어느 정도 적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 아직까지는 서울대병원만 가능한 사업 같다.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서울대병원이니까 가능한 사업이긴 하다. 그래도 이런 시설이 최소한 권역에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본다. 지방에 있는 분들이 다 서울로 올라올 수는 없으니까. 일본은 현립·시립 어린이병원에 기본적으로 단기 돌봄 병상이 있다. 우리도 이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본다.

물론 도토리하우스나 이런 단기 돌봄 시설이 모든 소아 돌봄 문제를 해결하리라 보진 않는다. 다만 지금 상황이 너무 심각하니 조금이라도 짐을 덜어주자는 거다. 폭풍 앞에 선 사람에게 우산이라도 잠깐 씌워준다는 데 의미를 찾고 있다.

- 그래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뭐라도 하자'는 뜻에서 정말 큰일이라 생각된다.

아주 기본적인 부분이다. 최소한 사람답게는 살 수 있어야 한다. 중증 질환을 앓는 아이가 있다는 건 가정에 천재지변이 닥친거나 마찬가지다. 아이는 소중하고 사랑하지만 아이를 돌보면서 온 가족이 천재지변을 감수한다. 언젞자 '집에서 생긴 일은 집에서 알아서 해결해'라고 할 것인가.

- 국내 첫 번째 사례인만큼 준비하는 입장에서 부담도 컸을 것 같다.

도토리하우스는 소아 의료 분야에서 간호간병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첫 번째 시도다. 급성기 환자를 맡아 '신속한 처치와 빠른 퇴원'을 목표로 하던 입장에서 도토리하우스는 완전히 전환된 업무를 하는 셈이라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소아 간호는 특히 어렵다고 여겨지는 분야다. 그래도 도토리하우스에서 아이들과 교감하면서 소아 간호 분야 분위기에 변화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간호사가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인력을 보강하고 꾸준히 지원해야 한다.

- 최근 소아청소년과를 중심으로 환자·보호자와 의료진이 빚는 마찰이 집중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도토리하우스도 피할 수 없는 문제일텐데.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프로토콜을 만들고 있다. 물론 마찰이 아예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민원을 제기할 수도 있다. 개선점을 찾고 정말 바꿔야 하는 건 바꿔나가야 한다. 그런데 재택의료를 하면서 느낀 게 어느 순간 부모와 동료의식이 싹튼다는 것이다. 도토리하우스에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도토리하우스가 의료 체계는 물론 의료진과 가정 모두에게 전환점이 될 듯하다.

그럼 참 좋겠다. 더 나아가 우리 아이들을 대변하는 역할까지 하고 싶다. 돌봄이 왜 필요하냐는 물음에 도토리하우스가 답이 됐으면 한다. 어떻게 돌보고 무엇이 필요한가 사례를 모으고 데이터를 만드는 역할도 해야 한다.

또 도토리하우스를 매개로 의료진과 자원봉사자, 활동가, 후원자 모두 소아 의료와 돌봄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사회적 인식 확산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아이를 돌보면서, 봉사하면서, 후원하면서 아이들의 삶에 동참하는 셈이다. 

완화의료를 처음 시작할 때는 저와 사회복지사 둘이서 했다. 그러다 정식으로 소아완화의료팀이 생겼고 소아재택의료팀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제 도토리하우스팀을 꾸리게 됐다. 조금씩 조금씩 소아 의료에 관심을 갖고 힘을 보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