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이 도용자 색출 '무보수 업무 대행'하는 구조
"고의로 본인확인 피해도 속수무책…제도 보완 기간을"
정부가 논란을 산 '해외 직접구입 규제'를 거둬들였다. 제도를 보완하겠다는 이유다. 설명이 부족했다며 당국이 사과도 했다. 이에 비견되는 제도가 있다. 오늘(20일) 시작한 '요양기관 본인확인 강화 제도'다. "전 국민을 불편으로 몰아넣고도" 그대로 시행되지만 보완도 설명도 사과도 없다.
시행 명분은 확실하다. 건강보험 자격 대여·도용을 막겠다는 취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적발 사례가 4만418건이고 환수 규모만 8억여원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시행 효과는 미지수다. 정부 대신 의료기관이 도용자를 걸러내야 하지만 마땅한 색출 방법이 없다. 도용을 제지하기도 어렵다. 의료기관들은 "'선량한 다수 일반 국민'에게 제도 시행 취지를 이해시키는 역할까지 떠맡았다"고 푸념한다.
대한개원의협의회 김동석 회장은 이날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개원가 특히 작은 의원에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고 비판했다. 국가가 할 일을 의료기관이 "10원 한 푼 못 받고 대행"하면서 "도용을 못 잡은 책임까지 지게 하는 한심한 제도"라고 했다.
김 회장은 "이전에는 부정 이용자에게 과징금을 징수하는 방식으로 건강보험을 환수했다면 이제는 부정 이용자를 못 잡은 의료기관에 과태료를 물어 그 돈을 받아내겠다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대한내과의사회 이정용 회장 역시 "범죄 행위를 걸러낼 의무를 의료기관에 지우고 과태료를 문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며 "고의로 본인확인을 회피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용자를 의료기관이 걸러낼 방도가 없다"고 우려했다.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은 경우 모바일 신분증도 가능하지만 실물보다 본인 대조가 어렵고 "시스템 허점을 이용한 사례가 나온다"는 게 개원가 의견이다.
정부는 벌써 모바일 건강보험증 도용·대여 문제가 벌어져 시스템을 점검했다. 비급여 진료 후 14일 내 환급 방식도 제시됐지만 "눈앞의 환자에게 본인부담금을 모두 내고 나중에 돌려받으러 오라고 요구할 수 있는 의사는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마저 거부하는 환자를 돌려보내면 의료기관이 '진료거부'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의료기관으로서는 '다음에는 신분증을 꼭 가져오라'고 선의를 보여야만 하는 상황이 된다. 그러다 '신고 파파라치' 레이더망에 걸릴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이 회장은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신분증 미지참자라도 선의로 진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를 이용하거나 개인적인 불만을 이유로 신고하는 '파파라치' 이용자 등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를 막으려면 "'파파라치 상금'은 두지 말고 신분증 확인 없이 진료한 의료기관은 물론 신분증 없이 의료 서비스를 이용한 환자 모두 처벌하는 쌍벌죄를 도입해야 할 수도 있다"고 봤다.
이 회장은 "시행 전 문제점을 예상하고 보완하는 작업 없이 밀어붙이니 벌어진 일이다. 이렇게 현장과 동떨어지는 제도 허점은 그대로 현장에 짐이 돼 돌아온다"며 "국민도 의료기관도 모두 불편해지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되고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개원가는 '유예기간'이 가장 시급하다고 본다. 부족한 홍보를 이제라도 시작하고 의료기관도 국민도 자연스럽게 제도를 익힐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회장은 "무책임하게 시작한 제도로 국민도 불편하고 의료기관도 불편하다. 최소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기간을 두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고쳐나가며 개선점을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대개협은 여기 더해 과태료도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김 회장은 "정부가 모든 국민이 기본적으로 신분증을 항시 지참하는 환경을 만들고 나서야 시행할 수 있는 제도다. 폐지할 수 없다면 불합리한 점이라도 빠르게 고쳐야 한다"고 했다.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