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유방외과 고범석 교수, 6월 23일부터 단식
"환자·제자들에게 미안하고, 현실 바꿀 수 없어 무력하다"
이미 많은 의사 의료현장 떠나…있는 자원도 활용 다 못 해
“환자들 가장 큰 피해…정부,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해주길”
서울아산병원 유방외과 고범석 교수가 곡기를 끊었다. 벌써 열흘 넘게 물과 소금으로만 버티고 있다. 지난달 23일 오후부터 단식을 시작한 고 교수는 환자들과의 약속은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진료는 물론 수술도 한다. 수술같이 집중력이 필요한 순간에는 커피를 들이켠다.
지난 5일 오전에 만난 고 교수는 수척해보였다. 허리둘레는 약 4인치나 줄었다. 단식 여파로 건강에 이상신호도 감지되기 시작했다. 눈은 침침하고 근육통에 밤잠도 편치 않다. 갑자기 시작된 어금니 통증에 결국 이날 오후 발치를 해야 했다. 그럼에도 고 교수는 “마음만큼은 편하다”고 웃어 보였다.
주변 동료들의 만류도 여전하다. 속상함에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무슨 단식이냐’며 핀잔 섞인 말들도 던진다. 그럼에도 단식을 이어나가겠다는 고 교수의 결심은 확고하다. 의대 정원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으로 오랜 시간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들과 제자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이다.
수개월이 걸려 그를 찾아 온 유방암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하고, 의료 현장을 떠나 돌아오지 못하는 제자들을 보며, 그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한국 의료와 한국 의학교육이 망가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고 했다. 고 교수를 만나 단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들었다.
- 열흘이 다 돼 간다. 몸은 괜찮나.
지금까지는 괜찮다. 환자에게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실수하면 안 되지 않나. 하다 보니 기저에 깔린 피곤함 때문에 계속 누워 있고 싶고 눈도 침침하고 밤에는 자려고 누우면 온 몸이 아프다. 진료 볼 땐 잠이 오면 안 되니 커피 진하게 마시며 버티고 있다. 그런데 급격히 컨디션이 바뀌는 것 같아 다음 주는 (버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상황이 안 되면 수액이라도 맞아야 할 것 같다. 단식 사실이 알려지면서 환자들이 불안해 할까봐 걱정이다.
- 그런데 왜 단식인가. 계기가 있었나.
이번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이들이 고통 받고 있다. 환자는 환자대로 전공의는 전공의대로. 한편으로는 모든 교수들이 사직서를 내고 나왔다면 상황이 끝났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사직서는 냈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변명을 하자면 책임져야 하는 환자도 있고 진행하고 있는 연구도 책임을 져야 하고, 가족도 책임져야 했다.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는 마음이 무거웠다. 어떻게든 정상화 시켜보겠다고 교수협의회비상대책위원회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해결되는 건 없으니…
그러다가 환우 어머니가 삭발했다는 내용의 기사 댓글에 의사들은 자기 몸 아끼려고 삭발도 않고 단식도 안 한다는 내용을 봤다. 삭발은 혐오감을 줄 것 같아서 동참과 공감의 의미에서 단식을 시작하게 됐다. 언젠가 내가 못 움직이는 상황이 되고 극단적인 상황이 되면 진심을 알아주지 않을까. 몸은 힘들다. 그러나 그간 미안함과 무력감이 쌓여서 마음이 힘들었다.
-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무엇인가.
2,000명 증원이 불러올 파국이 너무나 예상되니 그걸 막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거다. 나중의 문제도 아니다. 당장 지금의 문제이기도 하다. 유방외과만 보더라도 유방암 환자만 있는 게 아니다. 검진 환자도 있고 암은 아니지만 위험한 종양을 가진 환자도 있다. 외과 인력이 당장 줄고 수술을 진행하려고 해도 수술방도 절반 정도 줄었다. 오는 환자를 다 받을 수 없어 신규환자도 줄었다. 그러니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지만 많은 의사들이 현장을 떠났다. 영상의학과 교수도,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도 그만둬 검사도 수술도 줄었다. 영상의학과 의사가 줄어드니 검사도 감소했다. 판독을 못하니 CT를 못 찍는 거다. 지금 있는 자원도 활용을 못하는 상황이다. 정말 심각하다. 그런데 그 피해가 환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대한민국 전체가 피해자가 됐다.
- 서울아산병원 교수들이 자발적으로 중증 환자 중심으로 진료를 재편한 이유인가.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놓치고 있는 환자들이 있다. 암이 이미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되고 처치가 늦어지니 예후가 안 좋아진다. 추후 자료가 나오겠지만 올해 암 환자들 같은 경우 예년에 비해 예후가 안 좋을 것이다. 이런 결과들이 뻔히 보이니 화가 난다. 진료실에서 직접 보는 환자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내게 진료 받으려고 4달이나 대기했다는 말을 듣고는 이 상황을 만든 정부에게 너무 화가 났다(고 교수는 한 동안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너무 속상하다. 외과 의사가 된 이유는 문제를 빨리 해결할 수 있는 점이 좋아서였는데 아무 것도 해결 못하고 있는 상황이 되니 화가 나는 거다. 그러니 빨리 정상화가 됐으면 좋겠다. 정부도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 지금도 정상적인 진료가 어렵지만, 내년도 걱정이다. 어떻게 전망하나.
당장 내년에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흉부외과 등을 하려는 이들이 없을 거라고 예상된다. 실제로 한 소아신경외과 교수는 후대가 없어 은퇴하면 소아신경외과 전문의가 없게 된다고 걱정한다. 지금도 ‘퐁당퐁당’ 당직 선다. 정말 겨우겨우 버티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은 것 같다. 의사들을 ‘카르텔’로 생각하고 정리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다. 환자들을 위해 있는 이들이 의사다. 홧자들을 위해 이렇게라도 몸부림 치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