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다니는 사람들' 설립…의료 분야 정보 격차 해소 목표
"의료소비자 합리적 의료선택 돕기 위해 의료인 역할 필요"
사직 후 응급실 근무…"응급의료 붕괴, 사명감으로 해결 못해"
“정부의 의료개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 아닌 의료소비자인 일반 시민이고, 두 번째가 의료계다”
의료소비자 단체 ‘병원다니는 사람들’ 김찬규 대표는 지난 5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진행하며 이같이 말했다. 김 대표는 원광대병원 응급의학과 3년차 전공의로 근무하다 사직했으며 현재 지역 2차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의정갈등을 계기로 의료소비자 단체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얼마 전 정식으로 단체 등록도 마치며 단체를 출범했다. 김 대표를 포함해 간호사, 한의사, 직장인, 작가 5명으로 구성됐다.
‘병원다니는 사람들’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병원을 직장으로 다니는 사람과 아파서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다양한 사람을 포괄하고 싶다는 의지를 담았다.
김 대표는 “의정갈등 사태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은 바로 평범한 국민인 의료 소비자”라며 이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나서겠다고 했다. 의료에 대한 정보 격차를 줄이고 의료소비자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유하는 등 지원하고 싶다고도 했다.
이어 “의사들의 이야기가 진정성 있게 전달되려면 의료소비자의 권익을 대변해야 한다”며 “의료개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일반 시민이다. 의사들은 ‘우리가 망했다’가 아니라 대한민국 의료가 파탄나면 의료소비자가 결국 그 영수증을 받게 될 것이라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政 의료개혁, 의료민영화 정책…의사-환자 관계 파탄"
이날 김 대표가 진행한 1인 시위는 병원다니는 사람들의 첫 활동이다. 이날 김 대표는 정부의 의료개혁이 결국 의료소비자인 국민의 권익을 해치고 민간보험 가입을 유도하는 의료민영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육각형 의료'를 잃고 싶지 않다”며 “대한민국 의료서비스는 쉽고 빠르며 저렴하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모두 현재의 의료서비스가 미래에도 유지되길 바란다. 그러나 정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개혁을 위해 진료를 제한하고 본인부담금을 높이고 있다”고 했다.
이어 “육각형 의료에 익숙한 국민들은 대안을 찾을 것이고 이는 사보험 가입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정부가 전공의를 수련환경에서 이탈시켰듯이 국민을 육각형 의료시스템에서 이탈시켜 민영보험으로 밀어 넣고 혜택은 전부 대형 보험사와 일부 기업만 가져가게 된다”고 말했다.
의료소송의 책임을 의사에게 떠넘기는 방안도 의사와 환자 간 관계를 파탄시킬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과소·방어진료는 불합리한 의료 소송으로 발생한다”며 “의료소비자는 정보 격차가 큰 의료 분야에서 자신을 보호할 방법이 없기에 분쟁 조정을 신청할 수밖에 없다. 불안한 상황에서 정부가 제시한 ‘환자대변인 제도’는 의료소송과 피해 보상을 의사에게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어 “의료소비자 입장에서 의료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발생한 피해에 대한 보상 주체는 의료라는 보험 상품을 판 국민건강보험공단”이라며 “변호사를 붙여줄 테니 의사에게 돈을 받아내라는 방안은 의사와 환자 간 관계를 파탄시키고 소신 진료를 가로막는다”고 주장했다.
"정부 협의체 참석 단체로 성장 목표"
김 대표는 사직 직후부터 병원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설립을 구상해왔다. 그는 “단체 준비에 6개월이 걸렸다. 의정 사태 이후 다양한 사람들을 알아가던 중 의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을 모아 단체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료인으로서 정부 정책을 의료소비자의 눈높이에 맞게 해석해 공유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지원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러나 의료계 단체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의료계의 자성을 촉구하겠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의료소비자들은 합리적인 의료정책을 유지하길 바란다”며 “그러나 의료 정보 격차로 합리적인 방향성에 대한 갈피를 잡기 어렵다. 정부의 의료정책에 대한 해석은 전문가인 의료인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의료소비자를 지원하는 일을 자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계 단체는 아니다. 의사를 최소한으로 하고 간호사, 방사선사 등 의료계 내 다양한 직군과 비의료인으로 단체를 구성할 것”이라며 “의료계 내부자로서 느꼈을 때 대리수술을 종용하거나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에 대한 배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을 느낀다. 대한의사협회에 징계권이 없다는 것도 핑계라고 생각한다. 의료계의 자성을 촉구하는 단체도 필요하다”고 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정부가 의료정책에 대한 합의를 이루기 위해 구성하는 협의체에서 민간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단체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정부가 구성하는 협의체에 참여하는 민간 단체는 보통 환자단체, 소비자단체 등이다. 그러나 소비자단체가 의료에 특화된 것은 아니기에 적절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 역할을 하고 싶다"며 “환자와 의료소비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현장에서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이를 반영하고자 노력하겠다”고 했다.
"응급실서 전원 어려운 현실…개인 사명감으로 해결 못해"
사직서를 제출한 지 7개월이 지난 후 현재 김 대표는 한 지역의 2차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며 하루에 80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그는 전공의 때와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그 때보다 좀 더 “존중받고 있다”는 감정이 든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응급실에서 똑같이 환자를 보고 있지만 전공의 때와 다르게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어려운 일을 털어 놓으면 다들 공감해준다. 일을 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전공의 때에는 ‘힘들다’고 하면 ‘원래 다 그래’라는 반응이었는데 지금은 환자 등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며 “그럴 때마다 환자를 보는 게 삶의 보람이라는 점을 재차 깨닫는다”고 말했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면서 응급의료 현장의 어려움을 체감하고 있다고도 했다.
김 대표는 “배후 진료과가 없어도 일단 응급처치 후에 전원을 보낸다는 생각으로 환자를 최대한 많이 받는데, 처치 후 치료 계획이 결정돼도 전원 받는 병원을 찾기 어렵다”며 “응급의료체계가 무너진 만큼 개인의 사명감과 희생정신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전공의 대표에 대한 본격적인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등 의료계 압박에 대해서는 “전에는 ‘독재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독재가 맞다'고 생각한다. 합리성을 주장할 수 있는 수준을 넘겼다. 이젠 독재에 저항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는 다시 전공의 수련을 받을 계획은 없다며 “다시 수련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될 때 고민해볼 것”이라고 했다.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