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치료 새로운 이정표 세운 엔허투
연구로 'HER2 초저발현'까지 효능 입증
국내에선 '희망과 허망함이 공존하는 약'

전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학술대회 중 하나이자 암 분야에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의 올해 연례회의(2024)에선 '엔허투'와 관련된 이례적인 이벤트가 열렸다.

ASCO는 접수된 초록 중 그 해 가장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연구들을 선정해 암종별로 묶어 'Late Breaking' 세션에 배정하는데, 올해에는 엔허투만을 위한 단독 'Late Breaking' 세션이 진행된 것이다.

해당 세션의 주인공은 엔허투의 3상 임상인 'DESTINY-Breast06 연구'로, 이날 발표를 진행한 밀라노대 및 유럽 종양학 연구소의 주세페 쿠리글리아노 박사는 "당초 초록 제출 기한을 넘겼지만, 학회가 해당 연구의 중요성을 인정해 추가로 별도 세션을 마련해줬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유방암 치료 분야에서의 엔허투의 파급력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엔허투는 이미 DESTINY-Breast03 및 DESTINY-Breast04 연구를 통해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약 15%를 차지하는 'HER2 양성' 환자군에 이어 약 50~55%에 달하는 'HER2 저발현' 환자에서 괄목할 만한 치료 효과를 입증하며, 약 70%에 달하는 유방암 환자들의 치료 성적을 끌어올린 바 있다.

이에 더해 DESTINY-Breast06 연구에선 호르몬수용체 양성(HR+)인 전이성 유방암 환자 중 'HER2 저발현'에 더해 'HER2 초저발현' 환자에서까지 엔허투의 효능을 평가했다.

일반적으로 HR+/HER2-로 구분되는 전이성 유방암 환자에서 'IHC 1+, IHC 2+/ISH-'에 해당하는 HER2 저발현 환자의 비중은 약 60~65%를 차지한다. 또 'IHC 0'와 'IHC 1+' 사이에 있는 HER2 초저발현 환자는 20~25%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HR+/HER2- 유방암 환자의 약 85%가 HER2 저발현 혹은 HER2 초저발현 환자인 셈이다.

DESTINY-Breast06 연구에서는 항암화학요법 치료 경험이 없는 해당 환자(호르몬수용체 양성이면서 HER2 저발현 및 HER2 초저발현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2차 이상 치료에 엔허투와 의료진이 선택한 화학요법(TPC)의 효능 및 안전성을 비교 평가했다.

1차 평가변수로는 HER2 저발현 환자에서의 무진행생존(PFS)이 설정됐다. 엔허투 치료군의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mPFS)은 13.2개월로 대조군(TPC)의 8.1개월과 비교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고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개선을 입증했다. 엔허투로 치료 받은 환자들에게서 대조군 대비 질병 진행 또는 사망 위험이 38% 낮게 나타난 것이다.

2차 평가변수인 HER2 저발현 및 초저발현 환자에서의 PFS 평가 결과, 엔허투 치료군과 대조군의 mPFS가 13.2개월 대 8.1개월로 HER2 초저발현 환자까지 더해도 엔허투의 치료 혜택은 일관됐다.

전체생존(OS)에 대한 평가 결과도 이와 유사했다. 아직 OS 데이터가 40% 정도밖에 성숙되지 않았지만, HER2 저발현 환자군에서 평가된 OS 혜택(HR 0.83)과 HER2 저발현 및 초저발현 환자에서 평가된 OS 혜택(HR 0.81)이 일관되게 나타났다.

또한 해당 연구에서는 사전 설정된 탐색적 분석을 통해 'HER2 초저발현 환자군'에서의 PFS와 OS가 평가됐는데, 엔허투 치료군과 대조군의 mPFS는 13.2개월 대 8.3개월(HR 0.78), 12개월차 OS는 84.0% 대 78.7%로 나타나(HR 0.75) 엔허투는 HER2 초저발현 환자에서도 HER2 저발현 환자에서와 유사하게 일관된 치료 혜택을 입증했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
사진 출처=게티이미지

쿠리글리아노 박사는 발표를 마무리하며 "DESTINY-Breast06 연구는 이전에 1차 이상 내분비요법 기반의 치료를 받은 호르몬수용체 양성이면서 HER2 저발현 및 HER2 초저발현 전이성 유방암 환자에서 엔허투가 효과적인 치료 옵션임을 보여줬다"면서 "엔허투는 DESTINY-Breast04 연구에서보다 더 앞선 치료 차수에서도 HER2 저발현 환자에 화학요법 대비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고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PFS 혜택을 입증했다"고 강조했다.

엔허투에 대한 관심은 국내도 예외는 아니었다. HER2 저발현 환자에 더해 초저발현 환자에서까지 유효성을 입증한 DESTINY-Breast06 연구 결과는 국내 환자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국내에서 엔허투가 HER2 저발현 유방암 환자 치료에 적응증을 획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터라 그 파장은 더욱 컸다.

급기야 ASCO 2024가 채 끝나기도 전인 지난 6월 4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는 엔허투의 보험 급여 대상에 HER2 저발현 및 초저발현 전이성 유방암 환자가 포함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청원인 김 모씨는 "올해 4월 1일부터 엔허투가 일부 환우(HER2 과발현 전이성 유방암)들에게 보험 급여가 적용된다는 소식과 더불어 5월 20일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HER2 저발현 전이성 유방암 치료에도 엔허투가 허가 승인이 이뤄졌다는 반가운 소식을 연이어 접하게 됐다"며 "적극적인 허가 승인 감사하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러나 유방암 환우 및 가족에게 유명한 엔허투 치료제는 희망과 허망함이 공존하는 약"이라며 "항암 효과가 기존의 약제에 비해 월등함에도 불구하고 감당할 수 없는 비용으로 유방암 환우들에겐 여러 가지 면에서 눈물나게 하는 치료제"라고 표현했다.

전체 유방암 환자 중 65%가 넘는 환자들은 현재 엔허투의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어, 감당하지 못할 약값으로 인해 대부분의 유방암 환자들이 기존 약에만 의지하며 근근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청원인은 "(엔허투 치료는) 약값으로만 해마다 최소 1억3,0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며 "(이는) 일반적인 개인 및 가족 소득으로는 결코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라고 덧붙였다.

청원인은 "엔허투는 HER2 저발현 전이성 유방암에 확연한 치료 효과가 입증됐고, 최근엔 승인이 된 치료제"라며 "국가 재정상 또는 타 질환 비급여 암 환자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암 산정특례 본인부담률) 5% 적용이 힘들다면, 본인부담율을 20~30% 일시적으로 부담하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 소득을 가진 유방암 환자와 그 가족들이 최소한의 치료 계획을 세울 수 있는 환경만이라도 부디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환자 본인 부담을 높여서라도 새롭게 획득한 HER2 저발현 적응증에 대한 신속한 급여 확대를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 해당 청원글은 현재까지(4일 오전) 3만9,500명 이상이 동의한 가운데 금일 청원기간이 종료된다.

엔허투는 식약처 허가 전부터 국민청원 단골 주제로 올라오며, 국내 유방암 환자들과 의료진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아온 혁신 신약이다. 그러나 고가의 약제비으로 인해 2022년 9월 식약처로부터 최초 허가를 받은 지 1년 반이 지난 올 4월에서야 급여를 인정 받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엔허투의 급여가가 전세계 최저가로 책정된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 때문에 엔허투의 급여 확대가 단시일 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유방암만 하더라도 대상 환자가 HER2 '양성'에서 '저발현' 환자로 크게 늘어났으며, 그 사이 기존 위암에 더해 폐암 치료에도 적응증이 확대된 만큼 엔허투가 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엔허투 허가와 급여 사이 치료 사각지대에 서 있는 국내 유방암 환자들의 고통을 해소할 복안을 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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