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지역 혈우병 치료 파수꾼 화순전남대병원 백희조 교수
4월 17일은 세계혈우인의 날…"보다 나은 치료환경 조성되길 바라"
4월 17일은 세계혈우병연맹(World Federation of Hemophilia, WFH)이 지정한 ‘세계혈우인의 날’이다. WFH은 매년 4월 17일을 세계혈우인의 날로 지정하고 혈우병과 선천성 출혈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고 있다.
2025년 세계혈우인의 날 캠페인 슬로건은 ‘모두를 위한 치료–여성과 소녀도 출혈을 겪는다(Access for All: Women and Girls Bleed too)’로 “오늘날에도 출혈 장애를 가진 여성과 소녀들은 여전히 진단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 출혈 장애 공동체는 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과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유전자치료제까지 개발돼 있을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통해 출혈 없는(Bleed-Free)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혈우병 치료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관심 밖 대상이던 여성 혈우병에 대한 인식 개선에 세계인들이 나서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는 혈우병 환자들이 응급상황에 이용할 수 있는 상급병원이 제한돼 있다.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더 심하다. 광주·전남 지역의 경우 심각한 상황에 처한 혈우병 환자들이 갈 수 있는 곳은 화순전남대병원 뿐이다. 화순전남대병원이 광주·전남 지역 혈우병 환자들을 지켜주는 파수꾼인 셈이다.
지난 2004년 화순전남대병원 설립 당시부터 현재까지 소아암 및 혈우병 환자들을 보살피고 있는 소아청소년과 백희조 교수를 만나 혈우병 치료 환경의 변화에 대해 들었다.
- 혈우병 치료환경이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국내 혈우병 치료환경을 평가한다면. 이러한 달라진 치료환경은 치료 목표에도 변화를 가져오는지도 궁금하다.
혈우병(hemophilia)은 X염색체에 있는 유전자의 선천성, 유전성 돌연변이로 인해 혈액 내의 응고인자(피를 굳게 하는 물질)가 부족하게 되어 발생하는 출혈성 질환이다. 혈우병 표준치료법은 응고인자를 보충해주는 것이다. 과거에는 반감기가 짧은 응고인자제제가 대부분이었는데 몇 년 전 반감기 연장제제가 나오면서 주사(응고인자를 보충해주기 위한) 횟수가 줄어들었다. 또 이전에는 건강보험 급여로 한번에 처방 받을 수 있는 약이 제한적이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급여 기준이 상향돼 한번에 처방 받을 수 있는 약의 개수가 늘어났다. 그런 점 등을 볼 때 과거보다 혈우병 치료환경이 좋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혈우병 치료의 기본은 예방이다. 돌발성 출혈이 생겼을 때 응고인자제제를 투여해 관절 출혈의 횟수를 줄이고 관절을 건강하게 유지해 삶의 끝까지 영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치료 목표라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WFH에서는 혈액 내 응고인자 농도를 3~5% 정도로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재정의 한계 때문에 중증 혈우병 환자들의 응고인자 농도를 1% 이상 유지토록 하고 있다.
- 현재 광주·전남 쪽에서 혈우병을 진료하고 있는 곳이 화순전남대병원과 한국혈우재단 광주의원 밖에 없는 건지.
그렇다. 혈우병 약은 약국이 아닌 병원에서 관리를 해야 하는데 환자수가 많지 않다보니 병원에서는 관리하는 게 쉽지 않다. 소모가 안되면 폐기 처분을 해야 하는데 혈우병 약제가 고가인 편이어서 (환자들이)일부 병원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혈우병은 광주의원처럼 센터 중심으로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혈우병 응고인자로 예방 요법을 하는 환자들은 한달에 한번 병원에 들러 약을 타 가는데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또한 관절이 안 좋은 환자들은 재활 치료를 해야 하는데 3차 병원은 날마다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닐뿐더러 환자대기 등으로 인해 진료를 받는 게 수월하지 않다. 따라서 평상 시에는 1차 병원인 혈우재단 광주의원을 다니다가 심각한 출혈이 생기거나 하면 1차에서 해결이 안되기 때문에 3차 병원인 화순전남대병원을 이용한다.
- 심각한 출혈이라는 건 어떤 경우인가.
뇌출혈이 생겼다든지 장출혈이나 위장간출혈이 생겼다든지, 척추 내 출혈이나 목, 입, 눈 주위, 아니면 근육 중에서도 일부 출혈이 생겼을 때를 말한다. 혈관이나 신경을 누르게 되면 마비가 올 수도 있는데 해결이 안되면 영구 마비가 될 수도 있어 오랫동안 그런 부분에 심각한 출혈이 생겼을 때는 3차 병원에서 적극적으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
- 혈우병 환자들은 다니던 병원이 아니면 응급실에서 잘 받아주지 않는다고 하던데.
혈우병을 치료하는 병원들이 많지 않은 것처럼 혈우병 약은 모든 병원에 다 있지 않다. 약이 없기 때문에 환자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혈우병 환자들은 집에 응고인자제제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응고인자제제로 예방요법을 한다는 것은 혈우병 A 환자의 경우 반감기가 짧은 것은 일주일에 3번, 반감기가 긴 것은 일주일에 2번을 맞는다는 것으로, 환자들은 대개 한달분을 미리 타 가기 때문에 4주분(8~12회)을 갖고 있게 된다. 출혈이 생기면 다음주 분으로 미리 막는 건데 이처럼 출혈이 있을 경우에는 약을 더 처방해줄 수 있기 때문에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한 번 맞고 병원을 가거나 주사를 맞을 상황이 아니면 응고인자제제를 가지고 병원에 가서 맞도록 교육하고 있다. 그것조차 안된다면 갖고 있던 약제를 챙겨 3차 병원으로 가야 한다. 문제는 그 사이에 출혈이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집에서 한번 주사를 맞고 병원을 가는 게 좋다.
- 군대에 가서 혈우병인지 알게 되거나 가족력이 없는데도 혈우병이 발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혈우병의 3분의 1은 돌연변이로 인해 자신대에 처음 발생한다. 누군가는 처음 발병을 해야 그 다음세대에 유전이 되지 않겠나. 군대 갔다가 알게 된 것은 경증이거나 중등도였다가 군대를 가서 알게 된 경우일 확률이 높다. 군대에 가기 전까지는 부딪히거나 해서 출혈이 생기더라도 지혈이 늦는다고만 생각했다가 군대에 가서 격한 훈련을 받다가 다쳐 출혈이 생기면서 지혈이 안돼 진단 받게 되는 경우다.
- 세계혈우병연맹이 올해의 슬로건을 ‘모두를 위한 치료–여성과 소녀도 출혈을 겪는다’로 정할 정도로 여성 혈우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혈우병은 X염색체 열성유전을 하기 때문에 여성은 혈우병 보인자인데 혈우병에 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혈우병은 X염색체 유전이니까 여성들은 보통 보인자라고 얘기를 한다. 그런데 여성의 X염색체 2개 중에서 하나만 이상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러 가지 복잡한 것들이 있지만 그건 제외하고 이야기를 하면 응고인자 수치 40%를 기준으로 해 40%보다 아래면 여자여도 혈우병이라고 하고, 40%보다 높다면 보인자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런데 보인자 중에도 응고인자 수치가 낮으면 증상이 있을 수 있다.
- 혈우병 치료제도 종류가 다양한 것 같다.
혈우병 약제들은 크게 응고인자제제와 비응고인자제제로 나눌 수 있다. 응고인자제제는 부족한 응고인자를 보충해주는 요법인데, 이는 혈액에서 유래된 것과 유전자재조합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혈액에서 유래된 응고인자제제가 표준 반감기제제라면 반감기 연장제제는 유전자재조합으로 만들어진다. 국내에서 비응고인자제제는 헴리브라가 유일하다. 헴리브라는 응고인자 보충이 아니라 단클론항체(Monoclonal antibody)가 혈액응고인자 8번의 역할을 대신해주는 약제다. 모든 약제는 다 쓸 수 있는 조건이 정해져 있다. 응고인자 약제도 외래에서 중증도인지, 중증도가 아닌지에 따라서 줄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 있고, 헴리브라 같은 경우에도 줄 수 있는 적응증이 있다.
- 현재 출시돼 있는 혈우병 약제들 가운데 가장 고가약은 헴리브라인지, 급여도 가능한 만큼 환자들 입장에서 쓰고 싶어할 것 같은데.
헴리브라의 경우 쓸 수 있는 조건이 정해져 있다. 투약 시작 전 6개월 동안 출혈 횟수가 6번 이상이거나 뇌출혈이든 장출혈이든 심각한 출혈이 있었던 이력이 있어야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래도 헴리브라의 경우 처음에는 항체가 있는 환자들에 대해서만 급여가 적용됐다가 비항체 환자에게도 급여가 확대돼 혜택이 늘어난 상황이다. 다만 헴리브라가 좋은 약이긴 한데 응고인자제제를 맞아야 하는 상황이 있기는 하다.
- 헴리브라의 경우 평상시에 예방 요법으로 쓰다가 수술을 한다거나 과다 출혈이 예상될 때는 응고인자 제제를 써야 한다고 하던데 이를 말하는 건지.
대개 응고인자를 맞게 되면 맞는 순간에는 응고인자 피크가 대폭 올라가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응고인자 피크가 다시 내려가게 된다. 이렇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기간을 반감기라고 하며 가장 아래로 떨어지는 수준이 1% 이하가 되지 않도록 응고인자제제를 주기적으로 주입해 주는 게 응고인자로 가능한 예방요법이다. 헴리브라의 경우 비응고인자제제라 혈액응고 수치로는 얘기할 수 없지만 지혈 수준으로는 응고인자 1%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인 13~15%를 유지하기 때문에 예방요법으로 좋은 약제다. 다만 수술을 한다거나 과다 출혈이 생겼을 때는 응고인자제제를 추가로 맞아야 한다.
- 내년에 국내 도입될 예정인 치료제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안다.
내년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는 약제들은 응고인자 제제가 아닌 헴리브라처럼 비응고인자제제, 항트롬빈 억제제, TFPI 억제제 등이다.
혈액은 응고인자와 과응고방해인자가 균형을 이루게 된다. 그동안은 응고인자의 부족으로 지혈이 안되는 경우 부족한 응고인자를 보충해줘 균형을 맞춰왔다. 하지만 현재 도입이 예정돼 있는 약제들은 응고인자가 아닌 응고방해인자를 줄여 균형을 이루게 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혈우병 A, B 구분하지 않고도 쓰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약제들이 실질적으로 적용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으로 본다. 허가는 물론 건강보험이 적용돼야 사실상 환자들에게 쓸 수 있는데 허가 후 보험 적용까지 꽤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 혈우병 치료환경이 좋아지기는 했으나 임상 현장에 있으면서 좀 더 개선되면 좋겠다 싶은 게 있다면.
전임의 시절부터 현재까지 되돌아보면 약제를 처방할 수 있는 횟수도 늘어나고, 용량도 늘어나고, 새로운 약제들도 전부 다는 아니지만 일정 기준 하에 보험급여도 가능하게 되는 등 개선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WFH에서 중증 혈우병 환자들의 혈액 내 응고인자 농도 기준을 3~5% 정도로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혈액 내 응고인자 기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 사실 얼마전까지 WFH도 1% 이상으로 권고해왔다. 그에 맞춰 우리도 1%로 기준이 맞쳐진 것이다. 치료환경이 달라지면서 WFH에서 기준을 3%로 올린건데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재정의 한계 때문에 여전히 응고인자 농도 기준이 1%다. 재정 한계 때문에 3%로 올리는 게 어렵다면 중등도 환자 중에서 중증 환자처럼 출혈이 자주 생기는 표현형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만이라도 커버를 해주면 좋을 것 같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혈우병은 예방요법이 매우 중요하다. 의료진이나 학회에서도 노력하겠지만 중등도 환자들의 삶의 질이 보다 좋아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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