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분비희귀질환, 그 숨겨진 이야기]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내분비내과 임정수 교수
현재 알려진 희귀질환의 종류는 8,000종 이상이다. 하지만 치료제가 있는 질환은 전체 희귀질환의 5%에 불과하다. 더욱이 희귀질환은 의사들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환자들은 진단방랑을 겪기 일쑤다. 대한내분비학회 산하 내분비희귀질환연구회가 연재하는 <내분비희귀질환, 그 숨겨진 이야기>는 우리가 몰랐던 내분비희귀질환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환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하는 코너로 희귀질환 극복에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편집자주>
최근 복부 CT를 이용한 건강검진을 하는 경우가 늘면서 부신에서 우연히 발견된 종양, 즉 부신우연종을 주소로 내분비내과에 내원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부신우연종은 부신질환을 시사하는 특이 증상 없이 영상에서 우연히 발견된 1cm 이상의 부신 종괴를 말한다.
부신우연종의 빈도는 전체 인구의 5~7% 가량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증가되어 노년층의 7~10%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은 호르몬을 분비하지 않는 양성 종양이지만 이 중 일부는 악성 종양으로 발견되기도 한다.
2022년 10월에 만난 55세 남자 환자도 부신종양이 우연히 발견돼 병원에 온 분이었다. 5년 전부터 고혈압, 3개월 전 당뇨병을 진단받고 외부 병원에서 진료를 보던 중 우연히 발견된 저칼륨혈증으로 신장내과에 와서 추가적인 검사로 복부 CT를 했는데, 오른쪽 부신에 2.9cm 가량의 결절이 발견돼 내분비내과로 의뢰된 환자였다.
CT에서의 종양은 양성 부신샘종에 가까운 소견을 보였고 호르몬검사를 통해 일차성 알도스테론증과 고코티솔혈증을 동반하는 호르몬 분비 샘종의 가능성이 높아 수술적 절제를 권유했는데 수술 후 조직병리 결과에서 놀랍게도 부신피질암이 진단됐다. 이 환자는 다행히 조기에 부신피질암을 발견한 덕분에 수술 후 현재까지 재발 없이 잘 지내고 있으나 모든 환자들이 이 환자처럼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부신피질암은 매우 드문 내분비 악성 종양으로, 전체 부신우연종의 0.4~4% 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문헌에 따라 많게는 5~8%로 보고되기도 한다. 부신피질암의 발생률은 매년 백만 명당 1~2명으로 어린 아이를 포함한 전 연령대에서 발생할 수 있으며, 최대 발생 연령은 40세에서 50세 사이로 남성보다 여성(55~65%)에서 더 흔하다.
대부분의 부신피질암은 산발적으로 발생하지만 드물게는 다발내분비샘신생물(Multiple Endocrine Neoplasia, MEN) 1형, Li-Fraumeni, Beckwith-Wiedemann 증후군 등을 포함한 다양한 유전 질환과도 관련이 있다.
부신피질암 환자의 50~60%가 호르몬을 과다 분비하는 기능성 종양인데 가장 흔한 형태는 고코티솔증(hypercortisolism)이며, 쿠싱증후군과 유사한 증상, 즉 달덩이 같은 얼굴, 복부비만, 고혈압, 당뇨, 부종, 여드름, 생리불순, 다모증 등의 다양한 소견을 보일 수 있다. 반면 호르몬을 분비하지 않는 비기능성 종양의 경우 크기가 커지기 전에 별다른 증상을 못 느낄 수도 있다.
2020년에 발표된 우리나라 25개 병원에서 부신피질암을 진단받은 환자 204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던 연구에 따르면, 부신피질암 환자들의 연령 중앙값은 51.5세였으며 여성이 53.9%로 역시 남성보다 우세했다.
진단 당시 초기 증상에 대한 데이터가 있던 188명의 환자 중 154명(81.9%)이 증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가장 흔한 증상은 복통(40.2%)이고 그 다음으로는 만져지는 복부 종괴(33.9%), 부종(23.4%), 피로감(21.9%), 체중 감소(14.4%)의 순서였다. 복부 CT에서 발견된 종양 크기의 중앙값은 약 8.5 cm로 보고되었다.
일반적으로 부신피질암은 CT에서 불균질한(heterogeneous) 소견과 함께 일측성의 10cm 정도로 매우 큰 종양으로 발견되며 이후 빠르게 성장하는 등 매우 공격적인 특성을 보인다. 고코티솔혈증 외에 안드로겐 등 다른 스테로이드 호르몬의 자율 분비도 자주 동반되는 바, 모든 부신피질암 환자에서 호르몬 과다에 대한 종합적인 검사를 시행해야 한다. 특정 스테로이드 분비 패턴, 예를 들면 성호르몬과 코티솔이 같이 분비되거나 남성에서의 에스트라디올 수치 상승은 부신피질암을 강하게 시사하는 소견일 수 있다.
주된 치료는 원발 병소에 대한 수술적 제거인데, 종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완치의 유일한 기회가 되고 향후 예후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암이 림프절이나 신장 등 주변 장기에 국소적으로 침윤되었을 경우에도 수술로 제거 가능한 부위를 최대한 절제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간, 폐, 뼈 등의 주변 장기로 전이된 경우에는 항암화학요법 등의 전신적인 치료 방법이 필요하다. 수술 후 마이토테인(mitotane) 치료는 재발 위험이 높은 환자에서 추천되며 마이토테인으로 인한 부신기능저하증이 발생할 경우 하이드로코티손(hydrocortisone)을 이용한 호르몬 보충 요법이 필요하다.
또한 수술 후에도 주기적인 영상 검사와 생화학적/호르몬 검사를 통한 모니터링을 시행해야 한다. 방사선 치료의 경우에는 부신피질암에서의 효과나 전체 생존율에 미치는 이득이 분명하지 않아 일부 환자에서 국소 재발을 예방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고려한다.
부신피질암의 생존 기간은 대략 3~4년 정도로 알려져 있어 다른 암에 비해 예후가 좋지 않은 암에 속한다. 임상적으로 불량한 예후와 연관된 인자로는 종양의 크기, 진행된 종양 병기, 고코티솔혈증, 고령 등이 있다.
유럽 부신종양 연구 네트워크(ENSAT)에서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종양의 병기에 따라 치료 결과에 차이를 보이는데 1기는 65~82%, 2기는 58~68%, 3기의 경우 41~55%였으나 (생존율이 약간 개선되었다고 하더라도) 4기는 여전히 10~20%에 머물러 있다. 앞에서 소개한 우리나라 연구에서 부신피질암의 관해율은 48%, 5년 전체 생존율 추정치는 64.5%였다. 또한 무재발 생존기간 중앙값은 46개월, 5년 무재발 생존율 추정치는 44.7%로 보고됐다.
최근 유전체학의 발전으로 부신피질암의 분자 예후 마커에 대한 연구가 가능해지고 면역항암제의 일종인 펨브롤리주맙(pembrolizumab), 렌바티닙(lenvatinib)과 같은 표적항암제, 방사선 치료와의 병용요법 등 다양한 임상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나 워낙 희귀한 암종이다 보니 다른 암에 비해 진단 및 치료에 대한 연구가 아직 부족하고 치료 약물의 종류가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부신피질암 환자의 관리는 여전히 쉽지 않은 영역이다. 드물지만 위의 환자 증례처럼 작은 종양 크기에서 일찍 발견되어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좋은 예후를 보일 수 있으므로 조기 진단 및 치료의 중요성은 더 더욱 강조된다.
따라서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시행하는 것과 더불어 부신우연종이 발견되거나 부신 스테로이드 과잉을 시사하는 다양한 증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 저칼륨혈증 등의 이상 검사 소견을 보이는 경우에는 내분비내과에 내원해 정확한 진단 검사를 받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아울러 MEN 1형이나 뇌하수체, 부갑상선, 췌장 및 부신암의 가족력이 있을 경우 이에 대한 유전 상담 및 검사를 조기에 시행하는 것도 필요하겠다.
임정수 교수는 연세대 원주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내과 전공의 및 내분비내과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현재 연세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정교수로 재직 중이며, 내분비내과장 및 당뇨병센터소장으로서 부신 및 뇌하수체 질환, 골다공증, 갑상선, 당뇨병 등 다양한 내분비질환을 진료하고 있다. 대한내과학회, 대한내분비학회, 대한골다공증학회, 대한당뇨병학회, 대한비만학회, 미국내분비학회, 미국골대사학회 정회원이며, 대한내분비학회 학술/수련/고시/법제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그외에도 대한내분비학회 산하 희귀질환연구회 위원과 대한골다공증학회 부총무, 학술/수련위원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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