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분비희귀질환, 그 숨겨진 이야기] 고대안암병원 김경진 교수

현재 알려진 희귀질환의 종류는 8,000종 이상이다. 하지만 치료제가 있는 질환은 전체 희귀질환의 5%에 불과하다. 더욱이 희귀질환은 의사들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환자들은 진단방랑을 겪기 일쑤다. 대한내분비학회 산하 내분비희귀질환연구회가 연재하는 <내분비희귀질환, 그 숨겨진 이야기>는 우리가 몰랐던 내분비희귀질환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환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하는 코너로 희귀질환 극복에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편집자주>

50대 여성이 지속적인 피로감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았다. 혈액 검사 결과 갑상선자극호르몬(TSH) 수치가 조금 높은 상태로 피로감이 심하여 갑상선기능저하증 전단계로 진단하고 약물 치료를 시작했다. 

약물 복용 중 시행한 추적 검사에서 처음부터 눈에 띄었던 낮은 알칼리성 인산분해효소(ALP) 수치가 신경이 쓰였다. 병력을 재확인하는 과정에서 2년 전 외상이 없었음에도 스트레스성 발목골절로 기브스를 했던 병력을 알게 됐다. 비용적인 부담을 고려해 신중히 검토한 끝에 유전자 검사를 권했다. 결과는 ALPL(c.979T>C (p.Phe327Leu)) 유전자 변이가 있는 저인산효소증 (Hypophosphatasia, HPP)이었으며, 다행스럽게도 증상이 경미한 스트레스성 골절만 있었기에 비타민D만 추가 처방했다. 

ALP가 낮은 것이 항상 저인산효소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ALP는 성인의 경우 40~150IU/L를 정상 범위로 하며, 이러한 수치를 무심코 지나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ALP는 골대사를 포함해 여러 장기의 건강 상태를 반영하는 중요한 지표로, 정상 범위를 벗어난다면 다양한 원인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일단 ALP가 낮은 것은 일시적인 것과 지속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ALP 수치가 일시적으로 낮아지는 경우에는 내분비계 이상(쿠싱증후군, 갑상선기능저하증), 대사성 골질환 (골형성부전증이나 무활성 골질환), 혈액 관련 문제(대량 수혈 후나 악성빈혈), 영양 상태의 결핍, 약물(비스포스포네이트, 글루코코르티코이드, 항암제) 등이 주요 원인이다. 따라서 이 환자의 경우 갑상선기능저하증 전단계이나 일단 호르몬 보충요법으로 교정 후에도 지속적으로 낮은지를 확인했다.

지속적으로 ALP 수치가 40미만으로 관찰돼 유전자검사를 권했다. 지속적으로 ALP 수치가 낮은 대표적인 원인으로는 바로 저인산효소증(Hypophosphatasia)과 같은 대사성 골질환이 있다. 이 외에도 Cleidocranial dysplasia(쇄골두개 이형성증)나 양성 가족성 저인산효소증처럼 유전적 요인에 의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저인산효소증(Hypophosphatasia, HPP)은 조직 비특이적 알칼리성 인산분해효소(TNSALP)를 암호화하는 ALPL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한다. ALP 활성이 저하되거나 결핍돼 뼈와 치아의 무기질화가 저하되는 희귀유전질환이다. 이름이 비슷한 저인산혈증과는 다른 병리 기전을 가지며, 발병 시기와 증상의 정도에 따라 주산기형, 영아형, 소아형, 성인형, 치아형 등으로 나뉜다. 

성인의 경우 일반적으로 중년기에 처음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으며, 반복적인 골절, 치아 손실, 만성 통증 등으로 일상생활이 극도로 어려워질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증상이 경미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진단이 어려운 점은 이러한 증상이 비특이적이어서 오진되거나 진단이 지연되기 쉽다는 점이다. 특히 성인 저인산효소증은 골다공증으로 오인되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심지어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는 약물(예: 비스포스포네이트)이 처방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국내에서는 아직 정확한 유병률 데이터가 보고되지 않았지만, 유럽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증 저인산효소증은 약 47만6,000명 중 1명(100만명 당 2명)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국내 인구에 적용하면 약 100명 정도가 중증 저인산효소증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저인산효소증을 임상양상에 따라 중증, 중등도, 경증의 세 가지 형태로 나누어 보면, 중증 형태는 30만명 중 1명 꼴로 발생하고 주로 주산기나 영아기에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경우 심각한 골 무기질화 결핍으로 팔다리가 휘어지고, 흉곽이 작아 폐 발달이 저하되며, 근육 약화로 인해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또한, 신경학적 문제가 동반되는데, 비타민 B6 의존성 발작 등이 특징적이다. 중등도 형태는 2,430명 중 1명꼴로 발생하며, 소아기나 성인기에 발병할 수 있고, 주요 증상으로는 구루병, 반복적인 골절, 저신장, 운동 장애 등이 있다. 두개골 봉합 조기 폐쇄와 두개내압 상승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유치나 영구치가 뿌리째 조기에 빠지거나 근골격계 통증, 골절, 연골석회화와 같은 증상이 동반된다. 경증 형태는 508명 중 1명꼴로 발생하며, 주로 성인기에 나타난다. 관절통, 미세결정 관절병증, 그리고 성인기에 발생하는 골절이 주요 특징이다.

저인산효소증은 생화학적 검사, 신경학적 관찰, 치과적 소견, 유전자 검사를 통해 종합적으로 진단할 수 있다. 먼저, 생화학적으로 ALP 수치가 나이와 성별에 비해 지속적으로 낮은 것이 핵심적인 진단 기준이다. 혈액 내 피리독살-5'-인산(PLP)은 저인산효소증 진단과 중증도 평가에 민감하고 특이적인 지표로, 비타민 B6 보충제를 최소 1주간 중단한 후 측정해야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으나, 연구 목적 외에는 측정이 쉽지 않다. 

또 저인산효소증은 신경학적 증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특히 신생아기에는 비타민 B6 반응성 발작이 skeletal 증상 전에 나타날 수 있어 진단의 단서가 된다. 

두개내압 상승, 두개골 봉합 조기 폐쇄, 기억력과 감정 조절 장애 등의 신경학적 문제가 관찰된다. 치과적 징후로는 3~5세 이전 유치의 조기 탈락이 특징적이며, 치아 뿌리가 완전히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치아의 색깔이 황갈색에서 갈색으로 변하거나, 법랑질과 상아질 형성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도 흔히 나타나며, 이는 질환의 중증도와 관련이 있다. 

유전자 검사는 저인산효소증 진단 확정에 필수적인 과정으로, ALPL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확인하여 진단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경미하거나 비특이적인 증상을 보이는 경우에는 유전자 패널을 분석함으로써 다양한 질환과의 감별 진단도 가능하다. 

저인산효소증의 치료는 환자의 증상과 중증도에 따라 개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대증적 요법으로는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s)를 사용하여 근골격계 통증을 관리하며, 비타민 D 결핍이 있는 경우 적절한 보충을 통해 뼈 건강을 유지하도록 한다. 물리치료와 저강도 운동은 근력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고, 심각한 골 변형이나 골절이 있는 경우 정형외과적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인산효소증의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알려진 것은 효소 대체 요법(ERT)이다. 아스포타제 알파(Asfotase Alfa, 스트렌식)는 TNSALP 결핍을 보충하여 뼈 무기질화를 촉진하고 골절 치유를 돕는 치료제로, 성인 환자에서도 골절 회복 속도 증가, 골 질 개선, 근력 향상 등 유의미한 치료 효과가 임상적으로 입증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국내에서는 소아 환자에게만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고 있어, 많은 성인 환자들이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현실에 처해 있다. 

성인 환자에게 아스포타제 알파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은 단순히 개인적인 어려움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골절과 만성 통증으로 인해 환자들이 생산 활동에 제약을 받거나 추가적인 의료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국내에서도 아스포타제 알파의 보험 급여 범위를 성인 환자로 확대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요즘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희귀질환 환자들이 느끼는 답답함과 어려움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실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도록, 사회 전반에서 희귀질환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더 확대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고대안암병원 김경진 교수
고대안암병원 김경진 교수

김경진 교수는 고려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고대안암병원 내분비내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골다공증을 비롯한 골대사질환 및 부신질환,  희귀질환을 포함한 내분비 질환을 치료하고 있으며, 현재 대한내분비학회 산하 희귀질환연구회 총무를 맡고 있다. 그외에도 대한내분비학회 연구위원회, 보험위원회, 빅데이터위원회, 편집위원회 및 대한골대사학회 역학위원회, 대한폐경학회 골다공증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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