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분비희귀질환, 그 숨겨진 이야기]
연세원주세브란스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이승현 교수
현재 알려진 희귀질환의 종류는 8,000종 이상이다. 하지만 치료제가 있는 질환은 전체 희귀질환의 5%에 불과하다. 더욱이 희귀질환은 의사들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환자들은 진단방랑을 겪기 일쑤다. 대한내분비학회 산하 내분비희귀질환연구회가 연재하는 <내분비희귀질환, 그 숨겨진 이야기>는 우리가 몰랐던 내분비희귀질환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환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하는 코너로 희귀질환 극복에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편집자주>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질환인 고혈압. 그러나 고혈압의 원인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생활 습관이나 유전적 요인 외에 다른 원인이 숨어있을 수 있다.
전체 고혈압 환자의 7~10%는 ‘일차성 알도스테론증’이라는 질환으로 인해 혈압이 높아진다. 일차성 알도스테론증은 부신에서 알도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되어 고혈압을 유발하는 질환으로,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필수적이다. 문제는 많은 환자가 이 질환을 단순한 고혈압으로 간주해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고혈압 환자 중에서도 3가지 이상의 약물을 사용해도 혈압 조절이 어렵거나, 원인 불명의 저칼륨혈증이 동반되거나, 젊은 나이에 고혈압이 발병했거나, 부신우연종이 발견된 경우에는 반드시 일차성 알도스테론증을 의심해야 한다.
알도스테론은 우리 몸에서 혈압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은 신장에서 나트륨과 물의 재흡수를 촉진해 혈액량을 증가시키고 혈압을 상승시키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부신에 종양이 생기거나 양측성 부신 증식이 발생하여 알도스테론이 과다하게 분비되면, 몸에 나트륨이 과도하게 축적되고 칼륨이 소실되는 문제가 생긴다. 그 결과 혈압이 지나치게 높아질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위험도 커진다.
일차성 알도스테론증의 대표적인 증상은 고혈압과 저칼륨혈증이다. 특히 저칼륨혈증의 경우에는 피로감, 근육 경련, 다뇨증과 같은 증상을 유발하고, 심한 경우 부정맥과 같은 심혈관계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일반적인 고혈압에 비해 일차성 알도스테론증 환자는 뇌혈관질환, 심근경색, 심방세동 발생률이 각각 4배, 6배, 12배 높다. 이러한 심각한 합병증은 혈압 조절의 정도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일차성 알도스테론증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합병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조기 발견과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차성 알도스테론증의 진단은 혈액에서 알도스테론 수치와 알도스테론-레닌 비율(ARR)을 측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후 경구소듐부하검사, 생리식염수 부하 검사, 캡토프릴 유발 검사, 플루드로코티손 억제 검사와 같은 확진 검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진단한다.
확진검사에서 정상인이라면 약제나 생리식염수로 인해 알도스테론 분비가 억제되지만, 일차성 알도스테론증 환자는 알도스테론 수치가 높게 유지되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선별검사에서 혈액 알도스테론 수치와 알도스테론-레닌 비율이 명확히 비정상적이고 저칼륨혈증이 동반된 경우라면 확진검사를 생략할 수 있다.)
알도스테론의 과다 분비가 확인되면, 다음으로는 부신 CT와 같은 영상 검사를 통해 부신 종양이나 증식을 확인한다. 이후, 부신 정맥 채혈을 통해 알도스테론 과다 분비가 한쪽 부신에서만 나타나는지, 아니면 양측성인지 더욱 정밀하게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단순 CT 촬영만으로는 원인 병변의 위치를 오인할 가능성이 약 38%에 달한다는 점 때문이다.
치료는 일차성 알도스테론증의 원인에 따라 달라진다. 일측성 부신 종양이 원인이라면 부신 절제술을 통해 종양을 제거하면 완치가 가능하다. 그러나 양측성 부신 증식이 원인이거나 동반 질환으로 인해 수술이 어려운 환자의 경우에는 약물치료를 통해 관리한다.
약물치료로는 알도스테론 수용체 차단체를 사용하여 과도한 알도스테론의 작용을 억제하며, 대표적으로 스피로노락톤이 사용된다. 치료 후에도 정기적인 관찰과 관리가 필요하며, 특히 수술적 치료를 한 경우가 약물치료를 한 경우에 비해 뇌졸중과 같은 장기적인 예후에 있어 더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차성 알도스테론증은 증상이 일반적인 고혈압과 크게 다르지 않아 환자와 의료진 모두 단순 고혈압으로 오인하기 쉬운 질환이다. 하지만 단순 고혈압보다 훨씬 위험하며,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완치 가능성이 높고 합병증 발생 위험도 크게 줄일 수 있다. 특히 약물로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거나 저칼륨혈증이 동반된 경우라면, 반드시 이 질환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이 질환을 단순 고혈압으로 지나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첫걸음이다.
이승현 교수는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을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내과를 수련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내분비대사내과 조교수로, 골다공증, 부신질환, 당뇨병 등을 치료하고 있다. 대한내분비학회, 대한골대사학회, 대한당뇨병학회, 대한골다공증학회 정회원이며, 대한내분비학회 강원지회 총무, 대한골대사학회 역학위원회, 연수위원회 위원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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