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후 말초신경병증…말초신경 손상 심하면 회복 어려워
항암치료 중이나 항암치료 후 손발이 화끈거리는 듯한 손발저림을 견디는 암 환자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항암치료 합병증 '항암 후 말초신경병증' 신호다. 이 병은 감각 저하나 과민, 균형장애, 칼로 베는 듯하거나 쑤시거나 묵직한 양상의 통증으로 악화될 수도 있고, 심하면 근력이 약해져 운동기능 저하를 초래할 수 있기에 절대 간과해선 안 된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이준희 교수는 유튜브 채널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서 "항암 후 말초신경병증 증상은 일상적인 피로감이나 손발저림과 유사해서 자칫 가볍게 여기기 쉽다. 또 항암치료가 끝나고 수주 또는 수개월 뒤에 증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서 이를 항암제 부작용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의료현장의 현실을 짚었다.
이어 이준희 교수는 "일부 암 환자는 혹시 항암치료가 중단될까봐 증상을 숨기기도 한다"며 "말초신경 손상이 심하거나 오랜 시간이 지난 경우에는 항암 후 말초신경병증 증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항암 후 말초신경병증은 가능한 한 조기에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항암 후 말초신경병증은 국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세포독성항암제의 대표적 부작용 중 하나다. 이 교수는 "특히 시스플라틴, 옥살리플라틴 등의 플래티넘 계열, 파클리탁셀과 같은 탁센 계열, 빈크리스틴 등의 항암제는 신경독성이 강해 '항암 후 말초신경병증'을 잘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항암제 종류 이외에도 항암 후 말초신경병증의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 있다. 항암제를 고용량으로 사용한 경우, 고령 환자인 경우, 당뇨병성신경병증과 같이 말초신경손상이 이미 존재했던 경우 등이다. 또 흡연이나 음주와 같은 생활습관, 유전적 소인도 항암 후 말초신경병증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때문에 항암 후 말초신경병증 위험이 높은 암 환자는 이 병에 대해 인지하고, 증상이 나타났을 때 빠르게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치료 중 손발저림 증상 등이 나타나면 방치하지 말고 즉각 병원에 연락해 빠르게 항암치료 부작용을 관리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같은 조치가 필요한 이유는 이 병이 악화되면 증상이 더 심화되고, 이때는 치료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준희 교수는 "항암 후 말초신경병증은 보통 손과 발끝에 가벼운 감각 이상으로 시작하지만, 항암치료가 진행되면서 저린감 또는 통증이 심해지고 손끝, 발끝에서 시작된 증상이 점차 몸의 중심 쪽으로 확산되는 변화를 보인다. 이외에도 보행장애, 운동기능 저하 등의 다른 신경학적 증상이 동반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항암 후 말초신경병증에서 이같은 변화가 일어나는 이유가 있다. 이 교수는 "신경병증성 통증은 적절한 시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다양한 기전으로 인해 쉽게 만성화될 수 있다"며 "이는 통증 신호 자체가 신경계의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인데, 한 번 만성화된 통증은 치료에 대한 반응이 떨어지고, 예후도 좋지 않은 경과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준희 교수는 "그렇기 때문에 '암 치료를 받는데 손발 조금 저린 게 뭐 대수인가? 우선 항암치료를 견디겠다'며 증상을 숨기면 안 된다"며 항암치료 중 신경병증 증상이 심할 경우에는 항암제 용량을 줄이거나 불가피하게 치료를 일시 중단하는 것도 고려될 만큼 항암 후 말초신경병증이 심각한 항암치료 합병증이라는 점을 짚었다.
항암 후 말초신경병증은 항암치료가 종료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이 서서히 호전되는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연구에 따르면 증상 발생 2년 후에도 약 3분의 1의 환자에서 증상이 지속되기도 한다. 때문에 조기 진단을 통해 치료 적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항암 후 말초신경병증이 만성화되는 확률을 낮출 수 있는 가장 효과적 방법이다.
항암 후 말초신경병증은 항우울제로 분류되는 '듈록세틴' 등을 활용한 약물치료가 현재 주로 이뤄진다. 이 교수는 "듈록세틴은 현재까지 유일하게 효과가 명확히 입증돼 공식적으로 권고되는 치료제"라며 "실제 듈록세틴은 항암 후 말초신경병증 치료에 대해 가장 높은 수준의 근거를 가진 약물로 평가되며 미국임상종양학회 가이드라인에서도 사용을 권고한다"고 말했다.
이준희 교수는 "간혹 '왜 정신과에서 사용하는 항우울제를 처방하냐, 이것이 정신적인 문제라는 뜻이냐'라고 묻는데, 듈록세틴을 처방하는 이유는 이 약이 뇌와 척수에서 통증 신호를 조절하는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에 작용해 신경병증성 통증을 완화하는 효과가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항암 후 말초신경병증 약물치료로 가바펜틴이나 프레가발린과 같은 기존에 잘 알려진 신경병증성 통증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다. 이 교수는 "또한 칼슘과 마그네슘을 정맥주사로 투여하는 방법은 일부 연구에서 증상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결과가 있었지만, 대규모 임상시험에서는 뚜렷한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계를 짚었다.
이외에 스크램블러 치료, 전기자극치료(TENS), 저강도레이저치료 등의 치료도 최근 항암 후 말초신경병증 치료로 주목받고 있다. 이준희 교수는 "이러한 치료는 임상적 근거가 축적되고 있는 단계로 아직 표준치료로 널리 권고되지 않는다"며 "다만 사람마다 반응이 다를 수 있으므로 전문의와 충분히 상의해 가장 잘 맞는 치료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이 교수는 "항암 후 말초신경병증 증상이 오래 지속되더라도 치료를 통해 통증, 불편감을 줄이고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며 "증상이 오래 지속되고 치료 효과가 뚜렷하지 않을 때 지치거나 치료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치료를 중단하지 않고 의료진과 계속 상의하면서 자신의 상태에 맞는 치료법을 찾아 꾸준히 관리해나갈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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