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희귀질환 등 중증질환 치료환경 이대로 괜찮은가?②  
신약 나와도 제도적·경제적 이유로 여전히 고통 속에 머물러

면역항암제·원샷 유전자치료제·중입자 방사선 치료기 같이 첨단 생명과학 기술의 발달로 암·희귀질환 등 중증질환 치료 가능 영역이 하루하루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각종 제도와 규제, 건강보험 재정이라는 벽에 막혀 여전히 암·희귀질환 등 중증질환 환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머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코리아헬스로그는 국내의 암·희귀질환 등 중증질환 치료환경 현실을 집중 조명하고 그에 대한 해법을 찾아봤다. - 편집자 주

① 20억원 초고가약, 건보 적용…명암 짙은 중증질환 치료환경
② 필수치료 사각지대에 선 환자들…임상시험 끝나는 게 두렵다 
③ 돈이 있어도, 없어도 ‘최적치료’ 못 받는 의료체계 개선 필요

암·희귀질환 등 중증질환을 앓는 환자들 가운데 의료사각 지대에 서서 신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생명과학 기술의 발달로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신약이 나와 있다고 해도 어둠은 걷히지 않는다. 제도적, 경제적 이유로 신약을 사용할 수 없어 여전히 고통 속에 머무는 환자들이 허다한 게 현실이다. 사진=게티이미지
암·희귀질환 등 중증질환을 앓는 환자들 가운데 의료사각 지대에 서서 신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생명과학 기술의 발달로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신약이 나와 있다고 해도 어둠은 걷히지 않는다. 제도적, 경제적 이유로 신약을 사용할 수 없어 여전히 고통 속에 머무는 환자들이 허다한 게 현실이다. 사진=게티이미지

암·희귀질환 등 중증질환을 앓는 환자들 가운데 의료사각 지대에 서서 신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생명과학 기술의 발달로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신약이 나와 있다고 해도 어둠은 걷히지 않는다. 제도적, 경제적 이유로 신약을 사용할 수 없어 여전히 고통 속에 머무는 환자들이 허다한 게 현실이다.  

미국·유럽·일본에선 쓰는데…국내선 허가 신청도 안 돼

두 종류의 항암치료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암 진행을 막을 수 없는 방광암 환자에게 써볼만한 신약이 2019년 나왔다. 이들 방광암 환자에게 질병 진행 또는 사망 위험을 39% 줄이는 효과가 입증된 아스텔라스의 넥틴-4 표적 항체약물접합체 ‘엔포투맙 베도틴’이 그것이다. 이 약은 미국·일본·유럽에서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같은 허가당국의 허가를 득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식약처 허가를 획득하지 못해 아직 쓸 수 없다. 엔포투맙 베도틴에 대한 허가 신청을 제약사가 내년을 목표로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방광암 4기 환자 이모 씨(62세)에게 이 약은 현재 상황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약인데, 국내에서 쓸 수 없어 이 씨는 치료 효과를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세포독성항암제를 쓰며 쓸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암은 재난처럼 이 씨에게 찾아왔다. 지난해 겨울 끝 무렵 갑자기 혈뇨가 나와 병원에 갔다가 의료용 렌즈로 방광 속을 들여다보는 방광경 검사와 CT 검사를 한 뒤, 방광을 시작으로 림프절과 폐에 암이 전이됐다는 의사 말을 들은 게 재난의 시작이었다.

곧바로 1세대 세포독성항암제 치료를 했고 8월까지 이 치료를 6차례 반복했다. 처음엔 치료 효과가 좋아 희망이 보였다. 그러나 이 씨는 그해 12월 CT 검사를 통해 폐에 전이된 암이 더 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의사는 바로 3세대 면역항암제 아테졸리주맙을 처방했다.

총 6개월간 이 면역항암제 치료를 했지만 불행히도 암은 더 진행되기만 했다. 이 씨는 자신과 같은 환자에게 현재 마지막으로 써볼 수 있는 약(엔포투맙 베도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의사에게 써볼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희귀의약품 지정 3년 6개월 뒤에야 '허가' 문턱 넘어

2020년 가을 정모 씨(58세)는 옆구리에 통증이 생기고 혈뇨까지 나와 병원에서 신장암 3기 진단을 받았다. 그해 12월 암이 퍼진 부위를 떼어내는 신장요관절제술을 시작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했지만 다음해 3월 정 씨의 어깨와 대동맥 주변 림프절까지 암이 전이됐다.

정 씨는 바로 세포독성항암제 치료를 8개월간 받았지만 암은 조금 작아졌다가 다시 진행됐다. 의사는 면역항암제로 처방을 바꿨다. 그것이 지난해 11월이었다. 하지만 암은 허리 근육까지 침범해 올 봄 정 씨는 극심한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때 정 씨는 차세대염기서열 검사를 통해 FGFR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사실과 이 유전자 변이가 있으면 기존 항암제들이 별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유전자 변이에 특화된 약이 세상에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돌연변이에 특화된 신약 '얼다피티닙'은 미국에서 허가돼 정 씨 같은 환자가 혜택을 보고 있었다. 이 약은 2019년 5월 1일 국내 식약처의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지만 그 뒤 3년 6개월이 넘은 이달 24일에서야 국내 허가가 났다. 한국얀센은 현재 이 약의 시판을 준비 중이다. 

당시 이 약이 국내 허가되지 않아 쓸 수 없었던 정 씨는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그럼에도 한 달만에 암이 척추뼈까지 전이됐다. 암으로 인해 약해진 뼈가 부서져 그는 첫 수술 때와 달리 수척해진 몸으로 다시 수술대 위에 올라야 했고, 이제 하루라도 빨리 이 약을 쓸 수 있기만을 바라고 있다.

국내 허가 획득 신약, 연간 1억원 넘는 약값에 그림의 떡

국내 허가를 받은 신약이어도 환자가 손에 쥐기 힘든 약들이 있다. 바로 고가 신약이다. 중중희귀난치성질환 신경섬유종증의 신약 '셀루메티닙'과 X염색체우성저인산혈증의 신약 '부로수맙'처럼 연간 약값이 1억원을 훌쩍 뛰어넘으면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까닭이다. 

신경섬유종증을 앓는 이 군(10세)은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목에 반점이 생기는 것을 시작으로 목, 얼굴, 폐, 복부, 손가락, 발바닥, 발가락, 다리 등 몸 구석구석에 섬유종이 생겼다.

NF1 유전자 이상이 원인인 이 병은 몸 안 구석구석에서 섬유종이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이 군은 태어난 해를 시작으로 매년 많게는 3번, 적게는 2번 병원 수술대 위에 조그만 몸을 뉘어야 했다. 

섬유종이 발바닥에 생겨서 휠체어를 탔던 것이 다리 근육이 약해지는 악순환을 초래해 이 군은 늘상 휠체어를 타게 됐다. 폐에 생긴 섬유종은 한쪽 폐를 망가뜨린 상황이고 머릿속 깊은 곳에 자란 섬유종은 현재의 의료기술로는 수술이 어려워 이 군의 부모는 매일 시한폭탄을 달고 사는 것처럼 가슴을 졸인다.

그나마 다행인 건 3년 전 셀루메티닙 임상시험에 참여하면서 이 군의 몸 안 구석구석의 섬유종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 신약 덕분에 이 군은 대구에서 서울까지 원정 진료 횟수도 줄었고, 대구에서 받는 재활치료 횟수도 주 4회 이상에서 1~2회가 됐다.

문제는 이 약에 대한 임상시험이 끝나면 이 군은 다시 치료받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국내 신속심사 지정 1호 약제인 이 약은 지난해 5월 식약처의 허가를 획득했다. 하지만 30kg 아이에게 매년 1억~2억원의 약값이 소요될 만큼 고가다. 

“약값을 감당 못해 약을 쓰지 못하는 다른 신경섬유종증 환우들로 마음이 아프고, 약이 급여되기 전 아들의 임상시험이 끝나 약을 쓰지 못할까 두렵다.”

이 신약을 끊으면 머릿속 섬유종이 다시 커질 위험이 높아 이 군 부모는 이 약이 하루 빨리 급여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국내 허가 2년 넘게 급여 관문 못 넘어…결국 국회로

X염색체우성저인산혈증(XLH·X-Linked Hypophosphataemia)이라는 유전성희귀질환을 앓는 이 군(9세)은 '부로수맙' 임상시험을 통해 2018년 8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이 약을 투약받다가 약을 끊으면서 다시 병이 조금씩 악화되고 있다. 

XLH는 PHEX 유전자 서열의 돌연변이로 신장에 의한 인산 재흡수를 줄여 뼈를 약화시킨다. 이 때문에 사지기형, 성장지연, 저신장, 골절 위험 증가, 신장 석회화 등의 고통에 시달리며 심한 경우 걷지 못한다.

이 군은 다른 XLH 환자들과 달리 생후 11개월에 빠르게 이 병을 진단 받아 매일 4~5회 인 보충제와 활성 비타민D를 투약하는 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다리가 휘는 일도, 성장부진도 피할 수 없었다.

기적은 이 군이 부로수맙 임상시험에 참여하게 되면서 찾아왔다. 2주마다 한 번 이 약을 피하주사로 투여하면서 휜 다리가 다시 곧게 돌아왔고 성장곡선도 정상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임상시험은 아쉽게도 지난해 끝나버렸고 이 군은 이 약을 더는 쓸 수 없게 됐다. 현재 이 약을 쓰려면 매년 2억원이 넘는 약값을 환자들이 전액 부담해야 한다. 이 약값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거의 없고, 이 군의 부모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로수맙 투약을 끊은 뒤 11개월. 이 군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 군의 어머니는 "잘 뛰던 아이가 이제 맘껏 뛰지 못하고 다시 성장곡선도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20년 9월 부로수맙이 식약처 허가를 획득했는데도, 쓸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로수맙이 식약처 허가 2년 넘게 급여 관문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로수맙이 급여를 통과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급여 관문 중 하나인 '경제성 평가' 때문이다. 이 평가는 현재 쓰는 치료제(인 보충제와 활성 비타민D)와 대비해 경제성을 평가한다. 때문에 부로수맙은 약값이 저렴한 기존 약 대비 비용효과성에서 좋은 점수를 내기 어렵다.

이 질환은 삶의 질을 심각하게 낮추지만, 현행 경제성 평가 면제 대상인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은 아니기 때문에 경제성 평가가 발목을 잡아 급여 관문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때문에 정부는 소아에 한해 삶의 질을 낮추는 질환에 대한 '신약'의 급여 평가에서 경제성 평가를 생략하는 것을 추가로 추진 중이고, 내년 시행 예정이다. 

그러나 성판장이 열려 있을 때 효과를 볼 수 있는 이 약을 더는 그림의 떡으로 지켜볼 수 없는 부모들의 마음은 급할 수밖에 없다. 지난 10월 17일 다른 XLH 환우의 부모가 국회에 "제발 크리스비타(부로수맙)의 건강 보험 적용을 승인해달라"며 국민동의청원을 신청한 이유다. 

이 청원은 한 달도 되지 않아 5만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로 회부됐다. 국민동의청원은 청원 제출 한달 내 국민 5만명의 동의를 얻으면 법안발의와 동일한 효력을 발휘해 해당 상임위로 회부된다. 공이 국회로 넘어가게 된 만큼 부로수맙 급여의 신속 승인이 이뤄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은 생명과 삶의 질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질환을 치료할 신약이 있음에도 제도나 경제 논리에 갇혀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살아가게 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이며, 이제 더는 어찌해볼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어찌해볼 수 있는 일이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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